갑각류 인간

미련함으로 똘똘 뭉친 세월

by 뮤뮤

'나는 뭐든 잘해야 해. 성공해서 엄마 아빠를 행복하게 해 줄 거야. 돈도 많이 벌 거야. 그래서 가족들이 필요한 게 있으면 다 사줄 거야. 나는 울지 않아. 내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 반드시 그럴 거야. 해낼 거야. 나는 나를 증명할 거야.'


서울에서 충남 D읍의 한 초등학교로 전학 와 시골텃새로 기나긴 괴롭힘을 당하며 매일 되뇌었던 말이다. 나는 내가 가진 문제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때도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5년 내내 말하지 않았다. 집 앞까지 찾아와 내게 못된 짓을 하려던 동급생 아이들을 엄마가 직접 목격하기 전까지는. 그런 시절을 겪어서였는지 아니면 타고나길 그렇게 태어나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누군가에게 공유하는 것에 인색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고통을 잘 견딘다. 웃음은 나누면 배가 되고 아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웃음은 나누면 질투가 되어 돌아오고, 아픔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표현하지 않는다. 웃음은 지우면 될 일이고, 아픔은 혼자 삼키면 그만이다.


신세 지는 것 또한 극도로 싫어한다. 받은 게 있다면 반드시 배로 돌려줘야 한다. 속상한 일이 생기면 제 속이 썩는 한이 있더라도 말하지 않고 참는다. 견딘다. 맡은 일이 있다면 어떻게든 완수한다. 혼자 짊어지기에 너무 힘겹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히스테리와 신경질을 동반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제 일이라 생각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끝을 낸다. 그게 가족 일이라면 두 말할 것 없이 열일 제쳐두고 달려간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법도 알지 못한다. 기대기보다 늘 스스로 버티는 쪽을 택한다. 그래서 뭐든 잘 숨긴다. 감정도, 아픔도, 내면의 취약한 부분도.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내가 결단을 내리고 돌아선 이후에나 알게 된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오래, 깊이 참아왔는지를 말이다. 특정 대상을 향했던 내 마음을 완전히 걷어낸 후에나 나를 돌아봐 주는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이런 문제 해결 방식은 상대에게도 충격을 주지만 무엇보다 내게 너무 큰 흉을 남긴다. 자기혐오라는 흉을 말이다. 이런건 문제 '해결'이라 할 수도 없겠다.


극단적 인간관계는 나의 내면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지금까지 결혼생활도 마찬가지다. 늘 그렇게 퉁퉁거릴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이야기해 봤다면 조금 달랐을까. 한 번 더 설득해 봤다면 괜찮았을까. 너를 변하게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어찌 이리 미련한 걸까.


비단 가정뿐만 아니다. 사람은 어찌 됐든 사람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지속적 관계 유지를 위한 생산적이고도 건강한 방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때론 생색도 중요하다. 지금 내가 너를 위해 얼마큼 희생하고 있는지,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지 미리 알려 내가 너를 잘라내지 않도록,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너도 나를 배려해야 함을 알려야 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갉아먹는 자기혐오의 사슬을 끊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의 관계 맺기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참는 것이 꼭 강인함의 증거는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내 형편없는 속 살을 드러낼 줄 아는 것이 단단한 가면을 쓰고 나를 숨기는 것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하는 것을 말이다. 그건 진정 강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내 밑바닥을 다 드러내 보여도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무한한 애정으로 나를 감싸줄 수 있는 사람, 내가 아무리 강한 척해도 실상은 상처투성이 연약한 갑각류임을 한눈에 알아봐 주는 사람, 그 드넓음 안에서 하염없이 흐트러지고 형편없어지고 싶다. 의지하고 싶다. 지지 받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나도 두 다리 편히 뻗을 내 자리 하나쯤은 가지고 싶은 거다.

그게 솔직한 심정이다.


괜찮은 척하는 게 너무 힘들다.


갑각류 인간으로 사는 건 이제 그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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