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탑의 웅장함과 같이 즐기는 가을꽃 명소
경주의 가을은 늘 풍성하다. 첨성대 핑크뮬리나 대릉원의 단풍도 아름답지만, 가을의 새로운 얼굴을 찾고 싶다면 분황사를 향해보자.
사찰 앞마당에는 3만㎡ 규모의 황화코스모스가 일제히 피어나, 입장권을 끊기 전부터 여행객을 황홀한 풍경 속으로 이끈다.
분황사는 경주시 분황로에 자리한 사찰로, 신라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의 숨결이 서린 유서 깊은 공간이다. 그러나 9월이 되면 담장 밖 꽃밭이 먼저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주차장에 차를 대는 순간부터 끝없이 이어지는 황화코스모스가 황금빛 파도를 일으키며 방문객을 맞는다. 주차와 관람 모두 무료라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선물 같은 공간이다.
가려줄 그늘 하나 없는 너른 들판이지만, 그 덕분에 코스모스는 제각기 키를 뽐내며 가을 햇살을 온전히 받아낸다.
오후가 깊어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 꽃잎마다 주황빛과 노란빛이 더 짙어져 ‘황금빛 바다’라는 표현이 실감 난다. 이 순간을 담으려는 여행자들로 카메라는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린다.
꽃밭에 취해 걷다 보면, 담장 너머로 국보 제30호 ‘분황사 모전석탑’이 고즈넉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신라 선덕여왕 3년(634년)에 창건된 이 석탑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라 석탑이다.
화강암 대신 안산암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쌓은 독특한 양식, 그리고 사자상과 인왕상이 새겨진 정교함은 지금도 웅장하다. 원래는 9층이었으나 임진왜란으로 크게 파손돼 현재는 3층만 남아 있지만, 천년을 버텨온 무게감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낮에는 황화코스모스 꽃밭에서 가을의 화려함을, 해 질 녘에는 모전석탑 앞에서 역사의 경건함을, 밤에는 황룡사지 탐방로에서 사색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곳.
경주 분황사는 화려한 풍경 속에 깊은 역사를 품고 있어, 다른 꽃 명소와는 다른 차분한 울림을 선사한다. 입장료 없는 너그러움과 천년의 이야기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이곳에서, 올가을 가장 특별한 한 장면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