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물든 강변의 기적
가을이 오면 전남 나주의 드넓은 강변이 분홍빛과 흰빛으로 물든다. SNS 속 사진만 보면 그저 또 하나의 가을 명소 같지만, 이곳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공식 명칭은 ‘영산강둔치체육공원(전라남도 나주시 삼영1길 9-42 일원)’. 본래는 홍수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저류지’, 즉 강물이 넘칠 때 물을 머금는 땅이었다.
그러나 나주시는 이 기능적 공간을 사람과 자연이 함께 숨 쉬는 문화의 터전으로 바꿔냈다. 치수의 땅이 꽃으로 피어난 기적, 그 중심에 지금의 영산강 코스모스길이 있다.
나주시가 영산강 둔치에 조성한 코스모스 단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를 자랑한다. 총면적 12만㎡, 축구장 17개를 합친 크기다.
끝이 보이지 않는 꽃의 바다 사이를 걷다 보면, 이곳이 왜 전국적인 가을 명소로 급부상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단순히 경관을 꾸민 것이 아니라, 홍수 조절을 위한 국가 하천 부지를 평시에는 시민의 휴식처로 개방한 점이 의미 깊다.
영산강유역환경청과 나주시가 협력해 본연의 기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모범적 공공공간 활용 사례를 완성했다. 입장료와 주차료는 모두 무료다.
이 거대한 꽃밭이 진정한 활기를 띠는 시점은 매년 10월 열리는 ‘나주 영산강 축제’다. 2023년에는 28만 명이 다녀갔고, 올해는 개막 첫날에만 15만 명이 몰리며 역대급 흥행을 기록했다.
축제 기간 동안 이곳은 단순한 코스모스 군락지를 넘어 공연, 체험, 먹거리가 어우러진 복합 문화 축제장으로 변신한다. 영산강의 잔잔한 물결과 꽃길, 그리고 음악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시민들은 도시의 일상을 잠시 벗어나 ‘가을의 완성형 주말’을 경험한다.
무엇보다 이 코스모스길의 가치는 ‘홍수터에서 문화터로’라는 변신에 있다. 삭막한 콘크리트 제방 대신 꽃이 피어나는 둔치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새로운 국토의 모델을 보여준다.
한때 범람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던 공간이 이제는 지역의 상징으로 자리하며, 환경과 관광, 지역 경제를 잇는 지속가능한 생태 문화의 장이 된 것이다.
이번 주말, 강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 사이를 천천히 걸어보자. 당신의 발 아래는 한때 거센 강물을 받아내던 자리이지만, 지금은 가을의 향기와 사람들의 웃음으로 가득한 생명의 공간이다.
입장료도, 주차비도 없는 이 넉넉한 꽃길 위에서 나주 영산강이 들려주는 ‘변화의 이야기’를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