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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미각의 이중주

부항댐 출렁다리와 지례 흑돼지의 추억

by 박천수





가을이 아직은 서투른 몸짓으로 나뭇잎의 색감을 빨아내는 지난 어느 날 이른 아침. 왠지 모르게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생각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마침 오늘은 아들도 쉬는 날이니 함께 떠나볼까? 하는 마음으로 아들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오늘 오랜만에 우리 둘만 어디로 드라이브나 할까?”

이외의 질문에 아들은 약간 당황한 기색을 보이는 것 같더니 이내 답장을 보내왔다.

“네. 그렇게 해요. 안 그래도 근교에 바람 좀 쐴까 했는데 잘됐습니다.”

“그럼 어디로 갈까? 너무 먼 곳은 말고.”

“일전에 친구가 시간 나면 김천 출렁다리 한번 가보라고 추천해 주던데 괜찮으시면 한번 가봐요.”

김천 출렁다리는 나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라 기대감과 호기심이 함께 자극해 왔다. 아들의 이야기로는 일전에 만난 친구가 김천 부항댐 출렁다리 여행을 추천해 주면서 주변 경관이 너무 괜찮으니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목적지까지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곳이니 부담이 없어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드라이브 겸 가을 풍경도 눈에 담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래, 출렁다리도 구경하고 오래간만에 지례 흑돼지로 점심이나 먹자꾸나.”

일단 행선지를 김천 부항댐 출렁다리로 정하고 길을 나섰다. 우리는 느긋한 마음으로 성주대교를 지나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가면서 지나는 곳곳의 풍경에서 느껴지는 계절의 감각을 눈으로 마주하며 달렸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그곳에서 맞을 자연환경에 대한 기대는 언제나 삶을 즐겁게 하니까. 여행은 어디로 가던 마음에 추억과 행복을 쌓는 일이니까.




한참을 달려 목적지 가까이 도착하여 길가에 차를 잠시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내들 오토캠핑장과 산내들 공원이 인접해 있고 조금 떨어져 부항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우리는 산내들 공원에 잠시 들려 주변의 낯선 풍경을 휴대폰에 담은 후 부항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부항댐 수문을 가까이서 못 보고 멀리서 차를 타고 가면서 물 흐르는 것만 보았다. 세 개의 수문 중에 두 개의 수문에서 물을 방류하고 있었다. 웅장하진 않았지만 물이 쏟아져 내려가는 모습은 여름의 끝자락을 가볍게 녹이고 있는 듯했다. 곳곳에 서 있는 표지판을 따라서 가다 보니 레인보우 짚와이어를 타는 곳이 눈 안에 들어왔다. 한눈에 보아도 제법 높은 철골 타워였다. 차를 주차하고 가까이 와 짚와이어의 높이를 따라 눈을 움직였다.


짚와이어


국내 인공구조물 최고 높이인 94m의 타워형 짚와이어와 스카이워크, 하늘 그네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도 있어 스릴감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타워의 꼭대기를 바라보니 약간의 현기증이 나는 듯했다. 온 김에 짚와이어를 탈까 말까 망설이다 혹시나 하는 부담감으로 다음 기회로 미뤘다. 잠시 여유를 즐기고자 매점에서 커피 두 잔을 사서 탁자에 앉았다. 짚와이어 타워 반대편으로 부항댐 출렁다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여행을 하면서 한두 번 출렁다리를 건너 본 경험이 있지만, 이곳은 처음이었다. 입구에는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김천 부항면의 여러 관광명소를 안내하는 관광안내도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빨간 모습을 한 일명, '느린 우체통'이 이외의 정감을 불러 일으키며 혼자 외롭게 서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추억을 전하세요. 한달 뒤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전해 드립니다.'라는 안내문과 함께. 여행객을 위한 재미나는 발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엽서라도 한장 써서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잔잔한 가을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 내안에 남을 추억이지만.


부항댐 출렁다리


부항댐 출렁다리는 무료로 운영되고 있었다. 길이 256m의 국내 최장수의 다리라고 한다. 부항댐은 원래 태풍 루사가 지나간 후 홍수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댐이라고 한다. 출렁다리로 가는 길엔 아직은 초록이 완연하게 우거진 풍경에 물까지 닮아있어 댐 전체가 온통 초록처럼 보였다. 출렁다리 입구까지 가는 길은 데크로 조성이 되어 있었다. 출렁다리라는 생각에 데크 길까지 뭔가 출렁거리는 것 같았다. 다리 입구에 정자가 있어서 잠시 그늘막 아래 쉬면서 마음을 가다듬도록 배려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렁다리 앞에 서니 멀리서 봤을 때는 길이가 그리 길지 않은 다리로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훨씬 크고 길어 보였다. 출렁다리는 김천의 새인 왜가리를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하며, 특히 이 다리는 내진설계도 되어 있는 다리라고 했다.



출렁다리를 건너다보면 주변 풍경이 탁 트여서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한눈에 들어오는 댐의 모습이 마치 산수화를 그린 병풍을 펼쳐놓은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계곡 사이에서 바람이 불어 다리 위에서와 밖에서의 시원함의 차이가 달랐다. 출렁다리 중간쯤을 지나다 보면 인공 어류산란장이 다리 아래로 보였다. 이곳의 부유식 인공 어류산란장은 어류의 산란처와 서식처 및 은신처를 제공함으로써 부유식 생태습지의 역할을 하고 동식물 종 다양성 확보 및 수생태계 복원과 수생식물 식재를 통한 수질개선에 있다고 한다. 여기는 바닥에 투명한 유리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어 아래를 바로 볼 수 있었다. 투명한 유리판 위에 서보니 정말 아찔한 감정에 몸이 움츠려지며 짜릿한 전율이 전해 오는 느낌을 받았다.

부유식 인공 어류산란장


출렁다리를 건너다 잠시 서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리 위에서 보는 짚와이어 타워는 구름에 약간 가린 하늘 모습에 어울려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눈으로 보는 멋진 자연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으며 작은 현기증을 느꼈다. 자연은 카메라에 담긴 풍경보다는 실제로 보는 것이 더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니까. 출렁출렁 흔들리는 느낌을 받으면서 아래로 물이 보이는 다리를 건너니 가슴이 서늘해지는 작은 스릴과 서스펜스를 함께 느끼는 것만 같다. 답답한 일상에서 재충전을 하고 싶을 때 이 자연 속으로 와서 리 프레쉬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자유롭게 나다니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하며 주변 산내들 오토캠핑장 등의 시설도 정상적으로 운영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었으면 하는 희망을 건넨다. 흔들 다리를 구경한 후 점심시간도 다 되고 해서 우리는 지례 흑돼지 특화 거리를 향해 차를 몰았다. 흑돼지 하면 제주가 떠오르지만, 이곳도 제주만큼이나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은 왠 만한 식객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니까.


출렁다리에서 바라본 풍광(가운데/짚와이어)


특화 거리에는 골목 여기저기 흑돼지 전문점이라는 간판이 우리를 반겼지만 휴대폰 검색창을 통해 찾은 "○○○원조 지례 삼거리 불고기" 집으로 향했다. 검색창에서 꽤나 유명한 집으로 나와 있었다. 좁고 복잡한 골목에서 살짝 비켜나 주차 공간이 별도로 있어 편하게 주차할 수 있었다. 식당 외관은 약간 시골에 있을 법하게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곳이었지만 무엇보다 이 집은 백종원 3대 천왕에서 방송하기도 하고 오랜 맛집이었는지 연예인 방문 사진도 많이 걸려 있었다. 이 집의 주메뉴는 흑돼지 양념불고기와 소금구이뿐이었다. 자리에 앉아 양념불고기를 주문하니 그날따라 석쇠에 초벌구이 하는 아주머니가 결근하는 바람에 일손 부족으로 양념불고기는 안된다고 하여, 하는 수 없이 소금구이를 주문했다. 고기를 돌판에 직접 구우니 기름이 튀는 것이 장난이 아니었다. 돌판 위에 휴지를 둘러 기름을 흡수하면서 구워진 고기를 먹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일단 이 집에서 먼저 맛보아야 할 것은 ‘소금구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양념불고기를 먹으면 소금구이의 맛을 음미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따라 양념불고기가 안 된다니 어쩌면 행운이었는지 모르겠다. 기름은 이외로 많이 튀었지만 소금구이의 맛은 흑돼지의 이름만큼이나 담백하고 쫄깃하며, 비게 부분에서도 아삭아삭 씹히는 느낌이 날 정도로 육질이 찰지고 부드러웠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를 느낄 수 있으나 이 집에서는 그것을 느낄 수 없었다. 돼지고기의 색깔로 고기의 퀄리티를 판단하는 건 아니지만 초보자가 딱 봐도 껍질이 붙어 있는 비계의 상태와 고기가 맛나 보이는 건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고기를 먹고 난 후 시래기 된장국과 밥으로 마무리를 했다. 시래기 된장국이 입 안에 남아 있는 느끼함과 텁텁함을 단번에 날려주는 것 같았다.


역시 여행도 경관을 즐기는 즐거움 못지않게 식감을 즐길 수 있는 그곳만의 특별한 음식을 먹었을 때 완성되는가 보다. 우리는 부항댐 출렁다리에서 자연이 내 품는 향기를 마시며 삶의 여유를 만끽한 채 찾은 지례 흑돼지의 풍미와 함께 하루를 즐긴 후 귀갓길에 올랐다. 하루 동안, 드라이브를 겸한 짧은 여행이었지만 처음 만난 곳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며 보낸 행복했던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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