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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수 Jul 15. 2020

숲에서 미덕을 배우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배려




숲은 창문에 비친 또 하나의 수채화다. 계절이 내려앉은 자연의 색채를 두르고 수줍은 듯 얼굴 붉히며 다가선다. 창을 통해 하늘이 눈앞에 와 닿고 숲의 신선함이 가슴으로 밀려드는 상쾌함을 맛보는 일은 일상의 행복이다.

몇 년 전 와룡산 인근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베란다 확장공사를 통해 공간을 넓히고 나니 책상에 앉아서도 고개만 돌리면 산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방을 어떻게 배치할까 생각하다가 전망이 가장 좋은 현관 입구의 방을 나만의 서재로 만들었다. 퇴근해서 돌아오면 언제나 창을 통해 숲을 관망하며 하루의 피곤함을 달래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 이제는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아파트 담장을 따라 늘어선 노란 은행나무 길옆으로 어느 종중의 제실祭室이 자리하여 고즈넉한 옛 멋을 풍기고 있다. 팔을 뻗으면 손에 와 닿을 듯 눈앞에 선 소나무와 떡갈나무 밤나무 등으로 둘러싸인 청회색 물빛의 작은 연못 위로 떨어지는 낙엽은 가을바람을 타고 유희처럼 나붓거린다.


주말 아침, 모처럼 혼자서 와룡산 북편에 자리한 사찰, 성주사와 대각사를 끼고 용두봉을 거쳐 산 정상에 오르는 가장 긴 코스를 택하여 산행을 시작하였다. 해발 300m도 채 안 되는 산이지만 높고 낮은 요철 등성이가 몇 군데 있어 쉽지만은 않은 코스였다. 등산로 곳곳에 쌓인 낙엽을 밟으며 숲이 전해주는 풋풋한 향기와 함께 가을의 끝자락을 만끽하며 숲에 안겼다.




가을 햇살이 화살처럼 나뭇잎 위에 쏟아지고, 소나무와 편백나무 숲에서 뿜어내는 향긋한 피톤치드가 올라가는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리기다소나무 위로 부지런히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청설모는 풍성한 꼬리털에 통통한 몸매와 반지르르 윤기가 흐르는 털까지 겨울잠 준비를 단단히 한 모양새다. 바스락거리는 인기척에 놀란 녀석이 나무 위로 줄행랑을 쳤다.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간 녀석이 움직임을 멈추고 방해꾼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빼꼼히 내려다보는 모습이 앙증맞고 귀엽다. 부담 없이 걸어가는 발걸음 소리가 녀석에게 경계심과 조바심을 불러일으키며 숲의 평화를 깨뜨렸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산을 옆구리에 끼고 살고 있지만 문명에 물든 마음 때문인지 몰라도 숲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와룡산은 유명한 큰 바위가 버티고 있는 산도 아니고 봉우리가 높은 산도 아니지만 언제나 내 삶의 출구가 되어준다.




며칠 전 퇴근하는 길에 구미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친구는 지난해에 갑자기 악화된 고혈압과 당뇨병으로 한동안 고생하며 병원에 다녔다고 한다. 그러던 중 직원의 소개로 모 환경단체에서 운영하는 ‘숲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3개월간의 과정을 마치고 나와 현재는 혈압도 정상으로 돌아왔고 당뇨도 상당히 호전되었다고 한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숲 사랑’이란 동호회도 만들어 지속적인 활동을 전개할 것이라는 친구의 말에 자연과 인간의 공존 관계를 확인하며 새삼 감탄했다. 많은 불치병, 난치병 환자들이 죽음을 선고받고 숲에 들어가 생활하면서 병이 완치되었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 것도 자연이 인간에게 안겨주는 배려가 아닐까 싶다.

 



산 정상에 올라 금호강 건너 붉게 타들어 가는 맞은편 산을 바라보았다. 가을빛에 물든 신비한 풍경이 두 팔을 벌리면 내 품 안으로 들어올 것만 같다. 내 몸은 어느새 숲의 작은 일부가 되어 버렸고 마음도 숲을 닮아가고 있었다. 자연이 채색한 빛깔들은 너무 섬세하고 신비해서 그것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는 눈 대신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내 마음의 문을 열고 그 빛깔이 들어차게 자리를 비우면, 마음속에도 자연의 숲이 우거질 것이다.


사방으로 뻗어있는 숲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마음에 쌓인 모든 고뇌와 걱정이 한꺼번에 사라진 듯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숲은 시보다 고운 언어로 언제나 제 자리에 앉아있는 꽃과 나무와 바위, 그리고 물빛 고운 작은 연못과 이야기한다. 숲은 자신에게 기대거나 안기기를 원하는 모든 생명체들을 그 품에 포근히 안아주며 공존의 미덕을 즐기고 있다. 삶에 지치고 성과에 치인 사람들에게 닫힌 오감을 열게 하고 싱그러운 삶의 고동소리를 새롭게 느끼게 해주는 숲의 가르침을 전하고 싶다.




제인 구달(Jane Goodall)은 그의 저서 <희망의 이유>에서

 ‘우리들의 후손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계는 나무들이 살아 있고 그 사이로 동물들이 노니는 세계, 푸른 하늘이 있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는 세계’라고 언급하며 내일의 세계를 구하는 것은 바로 당신과 나의 일'

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가진 자들이 덜 가진 자의 마지막 하나까지 빼앗는 것이 정당화되어 버린 이 사회가 꼭 배워야 할 숲의 미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산길 따라 군락을 형성한 소나무와 떡갈나무 밤나무 등으로 둘러싸인 청회색 물빛의 작은 연못 위로 떨어지는 낙엽은 가을바람을 타고 유희처럼 나붓거린다. 고향처럼 편안한 숲길을 내려오며 오가는 등산객과 마주치면 “반갑습니다.”로 가벼운 인사를 나눈다. 모두가 밝은 목소리로 화답해주는 모습에서 정겨움과 함께 삶의 온기를 느낀다. 숲의 지혜와 미덕이 각박한 우리의 삶에 가득 채워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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