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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수 Jul 10. 2020

숟가락에 담긴 세상




우리는 날마다 숟가락으로 따뜻한 세상을 떠먹는다.


지금까지 살면서 중요한 순간마다 음식은 늘 함께 있었다. 삶의 나이테가 둘러진 특별한 날이나 스스로에게 상을 주고 싶은 기쁜 날, 소중한 사람들의 기념일 같은 때 우리는 어김없이 맛있는 걸 먹으러 간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도 한 번씩 떠오르는 그 날의 풍경은 머릿속을 감싸며 눈앞에 선명하게 투영된다. 그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과 먹은 음식에 대한 맛과 향기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각인된다.


먹는다는 것은 원초적인 본능이요 욕구의 해결이다. 옛날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엔 아침저녁 인사말이  ‘식사하셨습니까?’였다. 그만큼 먹는 것이 곧 삶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고통과 서러움 중에 배고픈 서러움이 가장 크다고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이라 했던가.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라도 배가 불러야 흥이 나니 배가 고파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학창 시절 자취하는 친구 집에 같이 간 적이 있다.

하필이면 그때, 밥을 먹은 지가 언제인지 뱃가죽이 등가죽에 달라붙는 것처럼 배가 고팠다. 친구가 큼지막한 양은냄비에 라면 세 개를 보글보글 끓여서 파를 듬뿍 썰어 넣고 묵은 김치와 함께 가져왔다.

우리는 게눈 감추듯 라면을 먹어 치웠으며, 그 순간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더구나 남은 국물에 밥 한 그릇을 말아 숟가락으로 떠먹었을 때의 그 맛은 정말 일품으로 남아있다.




최근 들어 <한끼줍쇼>를 가끔 시청한 적이 있다. 두 국민 MC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저녁 한 끼를 얻어먹는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이다. 저녁 시간 불 켜진 집을 찾아 벨을 누르고 아직 저녁을 먹지 않은 집을 찾아 같이 식사할 것을 허락하면 미션이 끝난다. 그렇지만 낯선 사람에게 선뜻 한 끼를 대접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생각 외로 세상은 따뜻했고 허기진 배를 채워줄 숟가락 하나 얹어주는 여유가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식사를 함께하며 평범한 가정의 소소한 이야기를 듣는 과정 속에서 일상의 행복을 되돌아보게 한다.


지금 우리는 혼밥과 혼술이 일상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한끼줍쇼>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으며, 가족이 함께 식사하면서 풍겨오는 따뜻함과 사랑의 정을 나누는 모습이 얼마나 소중한 행복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쯤이면 따끈한 밥과 국물이 생각난다.

계절이 바뀌면 먹고 싶은 메뉴가 달라지듯이 음식은 우리의 일상과 고스란히 맞닿아 있다. 외롭고 쓸쓸한 날이면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던 사랑이 녹아든 집밥이 생각난다. 순전히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대충 끼니를 때웠던 시절을 떠올리게도 하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분위기 잡으며 먹었던 값비싼 요리가 생각나는 날도 있다. 어떤 음식은 나의 지나온 추억 속 풍경을 기억나게 만들고, 또 어떤 음식은 함께했던 누군가를 떠오르게 한다.


개인주의가 일반화된 사회에서 밥 한 끼의 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행복이다. 오늘도 숟가락에 담긴 따뜻하고 행복한 세상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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