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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촉수가 할퀸 휴가

거제 몽돌 해수욕장에서 겪은 해파리의 습격

by 박천수

여름휴가를 맞아 우리 가족은 진해에 있는 처가 식구와 함께 거제 몽돌해수욕장에 간 적이 있다. 몽돌해수욕장은 넓은 해안이 작은 자갈돌인 몽돌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해수욕장 하면 은빛 모래가 깔린 백사장이 얼른 떠오르지만 몽돌해수욕장은 올망졸망한 모양의 몽돌이 깔려있어 여느 해수욕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해변에 도착하여 상인들이 미리 설치해 둔 비취 파라솔을 대여하여 간단한 여장을 풀었다. 우리는 발바닥에 닿는 몽돌이 지압 효과가 있다는 말에 취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해변을 뛰다시피 쏘다녔다.




해안가에 펼쳐진 몽돌 사이로 잔잔한 파도가 스며들다 달아난다. 파도가 몽돌을 굴리는 소리가 너무 듣기 좋다. 바닥에 깔린 자갈 위로 넘나드는 파도 소리가 아름다워 ‘우리나라 자연의 소리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고 하니 가히 자갈과 파도가 협연하는 훌륭한 자연의 오케스트라라고 해도 덤비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자갈밭에 앉아 파도에 굴러가는 몽돌을 만지작거리던 어린 조카가 슬금슬금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첨벙거리고 있다.


아이들에게 더 넓은 바다는 신기함과 자유로움이 살아나는 훌륭한 놀이터다. 해안가 수심이 얕은 곳에서 몽돌을 밟고 앉아 발로 물장구를 치며 자기만의 피서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몽돌해수욕장에 처음 온 나도 시원하게 펼쳐진 해안 풍경에 빠져들어 한낮의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밀려가는 파도를 따라 수평선으로 눈을 돌리던 그때 어디선가 외마디 비명소리가 파도 소리를 깨뜨리며 들려왔다.

‘무슨 사고라도 발생한 것인가?’ 황급히 머리를 돌려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니 조카아이가 온몸을 흔들어 대며 고통으로 울부짖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발생한 사고에 모두 놀란 표정으로 달려갔다. 아이는 허리를 굽혀 다리를 움켜잡고 엄청난 고통에 온몸을 비틀며 얼굴을 찡그리고 울고 있었다.


“왜 그래, 어디가 아파?”

다리를 이리저리 살펴보니 무릎 아래 한 곳이 붉게 부어있었다. 원인을 찾으며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순간 깜짝 뒤로 물러섰다. 하얀 솜사탕같이 생긴 괴생물체 한 무리가 바닷속을 이리저리 유령처럼 떠다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소름이 돋아나는 오싹한 전율을 느꼈다. 바닷속에는 파도에 밀려 유영하며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해파리가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아마도 해파리의 촉수가 아이의 종아리를 스쳐 간 모양이다. 독성이 강한 촉수가 다리에 박히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졸지에 당한 일이라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응급조치를 위해 아이를 안고 간이 샤워실로 곧장 달려갔다. 심한 통증으로 울고 있는 아이를 진정시키며 한참 동안 바닷물로 다리를 씻겼다. 바다에서 벌레에 물렸을 땐 식염수로 먼저 씻겨주어야 한다는 기억이 한몫을 했다.


해변에 설치한 간이 응급실로 간 것은 사건이 발생한 지 10여 분 정도 경과한 후였다. 해상 안전요원은 1차 응급처치를 신속히 하여 다행이라면서, 상처 부위에 항 비타민 연고제를 발라주면서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름휴가를 보내고자 도착한 몽돌해수욕장에서의 피서는 해파리로부터 습격당한 아픈 추억을 남기며 30분 만에 파도 속으로 잠겨갔다.

안전요원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해파리의 정체는 ‘유령해파리’였다. 최근 몽돌해수욕장을 비롯한 인근 해역에 무리로 출몰하여 피서객과 어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했다. 촉수에 독이 있는 이 해파리가 침을 쏘면 불에 덴 듯 통증이 몰려오고 쏘인 부위가 붉게 부풀어 오르는 홍반성 발진이 일어나고 가려움증을 수반하니 지금 바닷물에는 들어가면 안 된다고 친절하게 일러 주었다. 유령해파리는 파도를 타고 움직이는 모양이 마치 유령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남해 연안에 해파리가 대량 출현하고 있는 현상은 지구 온난화와 환경오염 등에 기인한 인간이 불러온 재앙이 아닐까? 우리의 후손에게 물려줄 지구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은 것부터 몸소 실천하는 습관을 생활화해야겠는 약속을 다짐해 본다. 어쩌면 해파리는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상기후 현상과 자연재해로 이어지는 재난 시나리오를 말 대신 행동으로 경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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