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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수 Aug 25. 2020

외로움과 고독, 가까운 듯 먼 듯

고독과 친해지기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지적처럼, 현대사회의 역설 중 하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물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서로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지며 외로움의 상태로 내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연일 ”바쁘다, 바빠 “를 외치며 늘 시간에 쫓기고 늘 무언가로 분주하다. 바쁘게만 돌아가는 일상을 살며 정작 자신을 생각할 소중한 기회와 시간을 잃고 있다. 시간의 주인이 아닌 노예로 전락해 버린 게 오늘을 사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빨리, 빨리! “만 외치며 살다 보니 한 번뿐인 자기 인생은 놓쳐버리고 결국은 탈진 증상으로 삶이 공허하고 무의미한 것만 같은 느낌이 축적되면서 우울증 등에 시달리게 된다. 정신없이 삶에 어쩔 줄 몰라하는 우리에게 외로움과 고독은 너무 가까이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멀어지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 속에 빠져들게 한다.     




나는 한때 외로움과 고독 속에 빠져 감당하기 어려운 허망한 삶 속에서 자책과 괴로움으로 지낸 적이 있었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신성한 병역의무를 위해 논산훈련소에 입소하여 4주간의 신병 교육을 마치고 배치된 경기도 모 전방부대에서 6주간의 후반기 교육훈련을 받고 있을 때였다. 교육훈련 수료식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버지의 부음 소식을 전해 듣고 나는 마치 어느 칠흑 같은 밤 가파른 절벽 앞에 서 있는 것만 같은 현기증으로 몸을 가주지 못할 정도로 심한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에게 잘해 드린 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자식 된 도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만 같은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한동안 스스로를 자책하며 보낸 아픈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남은 자의 외로움이며 자신에게 밀려드는 고독의 산물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내가 그동안 살아온 삶의 여정 속에서 처음으로 세상과 떨어져 홀로 고독과 마주친 날이었다. 나는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 혼자 남은 것 같은 고독 속에 빠졌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고독이 아니라 외로움이었다. 그 당시 주변엔 선배나 동료, 후배 부대원들로 넘쳐났지만 마음은 외로웠다. 이는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을 주고받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세상과 떨어진 것이 아니라 관계의 단절로 인한 외로움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건을 경험한 후부터 나는 외로움을 보내고 고독과 친해지기로 내심 작정했다.




 철학자 틸리히(Tillich)는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은 외로움이고,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은 고독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심리학자 에릭슨(Erikson)은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되거나 흔들리지 않고 자기 삶의 당당한 주인이 된 사람의 '외로움'은 더 이상 외로움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선택해 '나다움'을 찾는 고독한 사람이다.

철학자 '탈리히'와 심리학자 에릭슨이 정의한 외로움과 고독에 대해 부언하면 외로움은  '자신이 원하면서도 다른 사람과 단절되어 있는 상태'로 부정적 의미를 갖고 있으며, 고독은  ‘스스로 혼자 있기를 선택한 자존감 같은 것’으로 긍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최근에는 핵가족 시대의 영향인지 몰라도, 매스컴 등을 통해 ‘혼밥족’이나 ‘혼술족’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이는 전통적인 인간관계의 속성이 사회적 변화에 따라 인간의 본질적 속성과는 정반대 현상인 ‘개인화’가 심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명명한 바 있듯이, 인간이란 사회 안에서 인간관계를 통해 살아야 하지만 인간관계는 영속적이지 못하고 깨지고 변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인간은 외로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요즘은 사무실에서도, 거리를 걸어도, 지하철을 타도 스마트폰을 들고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가 평소에 날마다 마주할 수 있는 일상의 풍경이 말해 주듯이 SNS는 이미 우리의 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에 수많은 팔로어(follower)나 친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왜 그럴까?


SNS에 올라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멋진 모습으로 행복하게 사는 모습만 보여준다. 항상 내가 마음속으로만 동경하던 곳으로의 해외여행을 다니고, 언제나 품격 있는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대부분 유행에 앞서가는  멋진 옷만 걸치고 나온다. 그곳 세상에서는 일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드러내기 때문이다. 결국 SNS 세상은 진실한 세계가 아니라 연출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린 그곳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한다.  


daum image


우리의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은 SNS로 인해 고독의 시간마저 놓쳐버리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고독의 시간을 잠시도 즐기지 못하고 오직 타인을 의식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각자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봤으면 한다.




나는 고독을 즐기고 있는지, 아니면 외로움 때문에 고독마저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 밤은 왠지 고독에 빠져 붉은 와인 한잔을 앞에 놓고, 가을이 손잡고 올 향긋한 냄새를 추억하며 혼자 멋있는 시간을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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