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향기, 그리고 맛집
‘코로나 19’로 휴가가 변했다. 아니 멈춰 섰다. 얼마 전만 해도 바다로 계곡으로 떠날 계획을 세웠지만, 바이러스 위험에 갇힌 체 6개월이 넘어가니 움직이지 않는 것도 이젠 면역이 되었나 보다. 7월 중순 경, 가까운 성주 무흘계곡에 잠시 다녀온 이후 정말 휴가다운 완전한 휴가(休家)를 하면서, 지난해 여름 1박 2일(8.5~8.6) 간 여름휴가 차 다녀온 강릉 여행 중에 메모해 둔 기록을 다시 정리하여 쓰면서 2020년 여름휴가를 대신한 추억여행으로 위안받고자 한다.
가는 길, 그리고 솔향과 커피 향
호텔 베란다 창 너머로 경포대 바다가 반쯤 보이는 강릉의 한 호텔 방에서 휴가를 즐긴다. 가족과 함께 즐기는 휴가는 언제나 마음 편하고 행복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자유로움에 온몸은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린다. 지금 이 순간의 휴식을 즐기는 것은 한여름의 무더위를 피해 떠나온 또 다른 나의 특권이기도 하다.
‘대프리카’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대구의 불볕더위를 피해 강원도 강릉을 휴가지로 정했다. 가족이 함께 가는 여행이라 각자가 준비해야 할 옷가지와 먹거리, 생활용품 등으로 출발 전날 오후 내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튿날 새벽같이 일어나 미리 챙겨 둔 가방들을 차에 싣고 오전 7시에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운전대를 잡은 아들이 네비에 강릉 경포대라 찍었다. 목적지 도착까지 시간은 4시간 20분. 조금은 지루한 느낌이 들지만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라 마음은 들뜨고 기대감은 잔뜩 부풀었다.
서대구 톨게이트를 지나 금호 JC에서 중앙고속도로 방향을 틀었다. 고속도로는 평소와 다름없이 교통량이 많지는 않았다. 아침부터 더위가 차량 앞 유리창을 통해 안으로 밀려와 내려앉는다. 에어컨을 켜고도 별로 시원함을 느끼지 못한다. 집에서 출발하면서 챙겨 온 생수를 마신다. 차는 만종분기점까지 계속 같은 길을 쉼 없이 달려야 할 것 같다.
중앙고속도로 주변은 한여름의 짙은 녹색의 물빛을 뿌린 듯 온통 녹음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과거 송충이를 잡으며 식목일 행사에 많이도 참여했던 산의 모습이 몇십 년 만에 이렇게 풍요로운 금수강산으로 변모했다는 생각을 하니 참으로 감개무량이다. 한참을 달려 차는 만종 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로 방향을 바꿨다.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만종분기점을 지나면서 언뜻 ‘밀레의 만종’이 떠오른다. 하루의 일과를 끝낸 농가의 부부가 황혼이 지기 시작한 전원을 배경으로 신의 은총에 감사하며 경건한 기도를 올리고 있는 모습을 그린 명화이기에.
만종분기점을 지나 도로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줄기가 치악산이다. 예로부터 원주를 지키는 군사적 요새로서 멀리서 보아도 산세가 웅장하고 풍경이 아름답다. 특히 치악산의 명찰(名刹) 상원사는 ‘은혜를 갚은 꿩의 전설’로 도 유명한 1000년 고찰로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달리는 차 안에서 그냥 바라만 볼뿐이다.
영동고속도로 접어들자 정체 구간으로 악명 높은 마성터널에서부터 양지터널이 나타났다. 그러나 휴가가 막바지라서 그런지 막힘없이 시원하게 통과하였다. 우리는 만종분기점을 지나 얼마 가지 않아 간단한 식사를 위해 횡성휴게소에 잠시 들렀다. 맛집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횡성휴게소 횡성한우 국밥으로 메뉴를 정하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밖에서는 보이지 않던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우국밥을 주문하자 미리 대량으로 끓여놓았는지 곧바로 나왔다. 그러나 생각보다 조미료 맛이 입맛에 맞지 않아서인지 만족도는 유명세에 못 미치는 것 같았다. 우리는 휴게소를 빠져나와 다시 영동고속도로에 진입한 후 강릉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강릉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 40분경이었다. 강릉 톨게이트를 통과해 강릉 시내로 접어들자 소나무가 도로 중앙분리대를 대신하고 있다. 타지에선 보기 힘든 솔 향을 느끼면서 강릉 시내를 돌아 경포대 인근 바닷가에 자리한 호텔로 향했다. 우린 호텔에 여장을 풀고 각자의 짐을 대충 정리한 후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휴식을 하는 동안 샤워도 하고, TV를 보며 침대에 누워 여독을 풀어본다. 창밖으로 보이는 경포대 바다의 넘실대는 파도를 눈 속에 묻으면서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경포해변 소나무 숲 산책로는 소음기를 머금은 푸른 소나무가 솔 향을 내 품고 있다. 해변 근처에는 성감(性感)을 풍기는 조각상과 함께 소나무길이 해변으로 이어져 있다. 소나무 아래 마련된 벤치에 앉아 가벼운 마음으로 조각상을 감상하다 해변을 바라본다. 코끝으로 밀려드는 솔향을 맡으며 나는 잠시나마 깊은 사색과 명상에 빠져들었다.
빡빡한 일정을 감안하여 솔향을 즐기던 백사장의 휴식을 잠시 뒤로하고 강릉에서 이외로 유명한 ‘커피 박물관’을 탐방하기 위한 여정에 올랐다.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강릉 ‘커피 박물관’은 주변의 자연풍경과 더불어 정취가 흐르는 아담한 모습의 건물로 곳곳에서 커피 향이 묻어나는 듯했다.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물줄기가 폭포를 흉내 내듯 시원한 자연의 소리로 더위를 날려 준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박물관에 들어섰다. 1관은 역사문화관, 2관은 커피 로스터와 그라인더, 3관은 커피 추출 관과 커피잔 컬렉션, 4관은 커피나무 전시관, 5관은 커피 관련 기념품과 함께 시음을 해 볼 수 있는 곳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강릉이 이렇게 커피 도시가 된 첫 번째 이유는 1세대 바리스타 박이추 선생이 로스팅한 원두로 내리는 커피가 유명하면서부터 이 지역에 커피 문화공간이 생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두 번째 이유로는 강릉항 일대에 커피자판기가 들어서면서 데이트 명소가 되었고 이로 인해 다방과 카페가 많이 생기면서 커피로 유명한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인근에 있는 뮤지엄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키스링 마늘빵을 간식 삼아 더위를 식히며 커피 향에 빠져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