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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수 Sep 03. 2020

강릉 여행 드로잉 2

문화와 향기, 그리고 맛집


#20190805


오죽헌과 초당 순두부   
 



커피 박물관에서 나와 오죽헌으로 향했다. 입구를 들어서자 율곡 이이의 동상이 우리를 반겨준다. 오죽헌은 조선 시대 대학자 율곡 이이와 관련하여 강릉 지역의 대표적인 유적지다. 조선 초기의 건축물로 건축사적인 면에서 중요성을 인정받아 1963년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오죽헌 시립박물관


경내에는 오죽헌을 비롯하여 문성사(文成祠), 사랑채, 어제각(御製閣), 율곡기념관, 강릉시립박물관 등이 있는데. 문성 사는 율곡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며, 몽룡실(夢龍室)은 율곡 이이(李珥)가 태어난 곳이다. 어제각은 율곡의 저서 격몽요결과 율곡이 유년기에 사용하였던 벼루(龍硯)를 보관하기 위한 유품 소 장각이다. 한편 율곡기념관은 율곡의 저서와 신사임당의 유작을 비롯하여 매창·옥산 이우 등, 율곡 일가의 유품 전시관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모범적이고 현숙한 여성 중 한 분으로 존경받고 있는 사임당은 시·글씨·그림·자수에 뛰어난 예술가였다. 그림으로는 산수와 포도를 잘 그렸으며, 풀과 벌레 역시 잘 그렸다. 특히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과 벌레를 그린 초충도(草虫圖)에서는 자연을 허투루 보지 않았던 사임당의 심성과 대상을 정밀하게 묘사해 내는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신사임당 '초충도' / 오죽헌 시립박물관


초충도를 직접 본 숙종대왕은 '오직 풀이요 벌레거늘 모습이 아주 비슷하구나, 부인이 묘사한 것이 어찌 이처럼 오묘할 고.'라는 시를 지었고, 권상하는 '실물과 똑같아 줄기와 잎사귀는 이슬을 머금은 듯하고 풀벌레는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며 감탄하였다고 한다. 오죽헌에서는 초충도의 소재인 오이, 수박, 가지, 맨드라미, 양귀비, 봉선화, 원추리 등을 심어 화단을 조성하였다. 식물들 주위로 벌. 나비. 잠자리. 여치. 방아깨비. 쇠똥구리와 같은 날벌레와 길 벌레가 모여들면 마치 한 폭의 초충도를 보는 듯하여, 화단의 풍경과 그림을 직접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오죽헌은 원래 조선 초기 강릉의 선비 최치운이 지은 것으로 전한다. 그의 아들 최응현에서 외손에게로 상속되어 오다가 1975년 정화 사업 때 강릉시로 이관되었다. 경내에 율곡 이이의 사당인 문성사와 율곡 기념과, 강릉시립박물관과 율곡 인성교육관 등을 지으면 서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율곡 선생이 태어난 ‘오죽헌(烏竹軒)’ 방 옆에는 대나무 숲인데, 줄기의 빛깔이 까마귀처럼 검은색이어서 오죽이라 부르다가 그것이 그대로 집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강릉시립박물관은 강릉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놓은 유물과 민속자료, 옛날 물건 등이 당시의 생활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잘 표현되어 있다.     


오죽헌 대나무 숲


오죽헌을 나와 점심시간도 지난 것 같아 강릉에서 유명한 초당 순두부를 맛보기 위해 차를 몰았다. 초당순두부 마을 입구에 있는 '초당 콩 두부'라는 간판이 걸린 식당 앞에 차를 멈추었다. 유명세 탓인지 벌써 식당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식당 입구에서 인적사항을 기재한 후 번호표를 받아 식당 바깥 탁자에 앉아 기다렸다. 먼저 번호표를 받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당 순두부 맛을 보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았다. 모두 다 허기진 배를 쓰다듬으며 순두부 '맛집'의 대단한 위풍 앞에 고개를 숙이고 기다림의 미덕을 보여 줄 수밖에 없었다.


번호표를 받고 기다린 지 30분이 지난 후에야 종업원의 호명에 따라 겨우 식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메뉴판을 보며 짬뽕 순두부 전골과 두부조림, 순두부백반 4인분, 모두부를 주문했다. 여섯 가지 밑반찬과 함께 도착한 다양한 순두부의 맛을 즐기며 배를 채웠다. 특히 짬뽕 순두부와 몽글몽글 하얀 꽃이 핀 듯한 순두부, 두툼한 모두부는 고소하고 부드러움으로 또 다른 미각을 전해주며 입안을 즐겁게 해 주었다. 바다 향이 가득한 초당마을의 순두부는 수백 년 세월을 품은 맛과 향을 간직하는데 온 정성을 다한다는 장인의 손 맛이 두부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 같았다. 더구나 초당 두부는 천일염으로 만든 간수 대신 동해의 깨끗한 바닷물로 간을 맞춰서인지 두부 맛이 평소 집에서 먹던 두부 맛과 사뭇 달랐다.



문헌에 따르면 초당마을 사람들이 순두부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허균과 허난설헌의 부친 허엽이 집 앞 샘물로 콩물을 끓이고 바닷물로 간을 맞춰 두부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 맛이 좋아 자신의 호 ‘초당’으로 이름을 붙였다고 하며, 두부를 만든 샘물이 있던 자리가 바로 초당동이다.   

 

‘초당’은 조선시대 문신 허엽의 호다. 강릉 부사 시절 허엽이 관청 앞 샘물로 콩 물을 끓이고 바닷물로 간수를 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혀 멀리까지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그때부터 두부를 응고시키기 위한 간수를 바닷물로 이용했다고 전해진다. 허엽은 홍길동의 저자인 허균과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지금도 마을에는 허엽의 생가가 남아 있어 초당 마을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초당마을이 두부 마을로 정착하게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로, 당시 피폐해진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마을 아낙네들은 두부를 만들어 대야에 이고 강릉 시내에 나가 팔아 생계를 이어 나가면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세월이 지나 이제는 여든을 훌쩍 넘긴 할머니들은 일선에서 물러났고 대부분 아들, 며느리가 그 전통을 이어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 다반사라고 한다. 초당마을에는 옛 방식으로 두부를 만들며 전통을 이어 가는 집이 20곳 정도 있으며, 타지 사람들이 이곳에 두부 가게를 차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이 마을 토박이들이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순두부로 허기를 채운 후, 여행으로 피곤해진 몸의 근육도 풀 겸 호텔 내 수영장에 가자는 손녀의 제안이 있어 별수 없이 호텔로 돌아왔다. 아들 내외와 손녀가 3층 수영장으로 올라간 후 나는 침대에 누워 TV를 보면서 나만의 가장 편안하고 자유로운 휴식에 빠졌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눈이 스르르 감기며 잠이 들려는 순간, 수영을 마치고 돌아온 손녀가 부르는 소리에 어설픈 잠이 깼다. 그리고 수영으로 피곤했는지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모두 침대에 곯아떨어져 꿈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계속)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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