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행위?
술은 우리의 삶에 필요악인가? 나도 술을 마시지만 과거에는 보통 대여섯 명이 모여 술을 마시면 그 가운데 한두 명은 반드시 만취 상태가 되어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혀가 꼬부라진 채로 얼토당토않은 말을 몇 번인가 되풀이하며 큰소리를 치는 것이 다반사였다. 사람이 술을 마시는지, 아니면 술이 사람을 마시는지 모를 지경에 이르면, 이성은 마비되고 정신은 혼미하여 집에는 어떻게 갔는지조차 모르며 이튿날 출근해서 필름이 끊어져 어디서부터는 아무런 기억이 안 난다는 소리를 들은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대학에 다닐 때나 직장생활을 하던 때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무슨 건수를 만들어서라도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으로는 막걸리나 소주를 서로가 돌아가며 한잔씩 내고 하던 시절의 소소한 낭만이었다고 치부해 버리지만 그 당시에 술자리의 풍경은 풍류라는 이름을 빌린 호기가 아니었는가 싶다. 술을 좀 마셔야 뭔가 통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았던 시절이었기에 주량을 자랑이라도 하듯 2차, 3차를 가야 끝을 보며 자부심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통금에 걸려 비틀거리며 골목길을 헤집던 일이, 누군가 형편없이 취해 옆에서 부축해 집까지 데려다주던 일이, 집 앞에 도착해 전신주에 옷을 벗어 걸어놓고 그 밑에서 잠을 잤다는 친구의 일이 지금 생각해 보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요즘도 지인들과 만나면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주량도 덩달아 줄다 보니 그런 기회를 만들지 않을 뿐이다. 특히나 얼마 전 갑자기 들이닥친 건강상의 문제로 고생한 이후부터는 지금까지 거의 술을 마시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술에 관심을 버린 것이 아닌 탓인지 하루가 멀다 않고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어 오는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시청할 때면 나도 모르게 울분이 솟구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음주운전 사고로 우리 가족은 무너졌어요"라는 피해자 가족의 눈물겨운 말을 들을 때면, 음주운전이 가져온 비극에 공감하며 분개하기도 한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음주운전 사고는 가해자 한 사람으로 인해 평온했던 한 가정을 한 순간에 풍비박산 내는 끔찍한 범죄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음주운전 사고에 대해 살인과는 달리 그저 ‘단순 실수’ 정도로 여겨 처벌에도 너무 관대해 온 것이 사실이다. 오죽 해서면 범죄를 저지른 뒤 판사 앞에서 술을 마셔서 심신 미약이었다고 말하면 된다는 드립이나 ‘술 마셨다고 이야기하면 또 솜방망이겠네’라는 말이 생겨났겠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아직도 우리는 ‘술김’에 하는 이야기나 행동은 너그럽게 이해하고 실수라고 인정하며 넘어가는 행동에 익숙해져 있다. 그로 인해 술자리는 남에게 쉽게 말하지 못할 자기의 진심을 털어놓으며 서로 위로를 주고받는 자리였고, 감추어 둔 고민과 울분을 토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성토의 자리가 되기도 했다.
술 문화는 세계 어느 나라든 지 가지고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는 뭔가 다르게 더 각별하고 다양하고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만나는데 술을 먹지 못하면 제로라든지, 술을 안 마신다는 사람에게 분위기 좀 맞추라고 눈치를 준다든지, 술도 안 마시면 무슨 낙으로 사냐?'라는 식의 질문을 한다든지, '주량이 얼마나 되는지, 맥주는 술이 아니라던지’ 하며 술이 세다는 것을 뿌듯하게 여기며 자랑처럼 이야기하는 분위기는 언제부터 형성된 것일까? 생각해 보면 이러한 술 문화는 우리나라 직장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접대 문화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렇기 때문에 술을 싫어하는 사람이나 술을 끊은 사람들이 술을 안 마시는 것을 보고 극단적인 애주가들은 “사회생활 포기했냐?”라며 핀잔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장의 회식이나 또는 친구들, 지인들과의 사교 모임을 통해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음주를 결코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인가 관대한 술 문화로 인해 음주의 위험성에 무감각하거나 자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음주가 주는 악영향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술에 대한 관대함으로 인해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잠재적 가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않는지. 음주로 발생하는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참에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수행원이었던 <존 헤이>가 말한 술은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고 사람에 따라서 좋은 혹은 나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비유법으로 멋지게 표현한 명언을 한 번쯤 음미해 보자.
술은 비와 같다. 비가 오면 나쁜 흙은 진창이 되어버리지만 좋은 흙은 꽃을 피운다.
최근 한국교통안전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발생한 음주운전 사고를 분석한 결과 총 52,336건이 발생했고, 이는 하루 평균 50건이 발생한 셈이다. 3년간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928명이며, 부상자는 8만 6,976명으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하루 평균 0.8명이 사망하고 79.4명이 다친 꼴이다. 이러한 통계가 보여주듯 우리 주변의 교통사고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는데, 차량이 주는 편리함을 자꾸 찾다 보니 술을 마셔 판단력이 흐려진 상황에서도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운전대를 잡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도로를 달리고 있는 줄도 모른다.
최근에 특별법이 강화되면서 맥주 한 잔만 마셔도 단속에 걸리게 되었으니 예전과 같이 ‘한두 잔 정도 마셨으니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아예 버려야 할 것이다. 윤창호 법의 시행과 함께 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 관련된 법률이 대폭 강화가 되면서 절대로 술 마시고 핸들을 잡는 습관은 과감히 버릴 수밖에 없다. 그만큼 사회적인 분위기가 술 마시고 차량을 운행하는 행위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하는 쪽으로 인식이 변화되었다. 특히 연예인이나 정치인의 자녀, 재벌가 쪽의 음주 사고도 예전 같았으면 기소유예로 가볍게 끝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적발이 되면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음주운전은 살인 행위’라는 사회적 인식의 확산과 함께 음주운전에 대한 법적 제도 개선을 통해 처벌도 강화해 나가는 것이 상습 음주운전을 예방하는 길이 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지금은 점점 술에 대한 오랜 문화가 조금씩 개선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여전하다. 그것이 완전하게 사라지기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