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떠날 수 없으니 당신들이 나를 떠나면 좋겠다고
동거인과 이웃이 쥐고 흔드는 삶의 질
집이라는 공간에서 같이 사는 사람의 행동은 삶의 질을 형성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행동을 하느냐보다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느냐'가 매우 중요한데 이건 동거인뿐 아니라 윗집, 옆집, 아랫집까지 사방의 이웃들도 마찬가지다.
집 구조 빼고 모두 달랐던 이웃
옆집 이웃은 집 구조 빼고 나와 많이 달랐다. 옆집 가족 정확히 말하면 옆집 부부는 로또였다. 맞지 않았다. 집안에서 목소리를 낼 일이 없던 혼자 사는 호젓한 나와 달리 고성이 기본이고, 대화의 절반이 다툼이었다. 야근이 일상인 내가 몸져누운 새벽 한 시부터 부부는 게임 스타트 버튼을 누른 것처럼 싸움을 시작했다. TV 정규 프로그램이 끝나면 옆집 부부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이 시작했다. 벽 하나를 두고, 끌 수 없는 라디오처럼 밤새 쌩라이브로 들어야 하는 옆집 '부부의 세계'는 난폭했다. '문명의 충돌'은 광고로만 보고 싶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나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싶지만 이 새벽에 누군가에게 내 스트레스 나누어주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고통의 양과 비슷해서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지치지 않는 아이들의 층간 소음만큼이나 에너지 넘치는 두 부부가 만들어 내는 측면 소음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새벽에 한 번, 아침에 두 번
저들도 분명 낯 간지럽고 유치하고 사랑스러운 말들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시간이 있었을 텐데.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것보다는 이별이라는 정류장이 더 가까워 보였다. 경제적 여유와 거주지의 선택권이 없는 한낱 임차인인 내가 쉽게 이곳을 떠날 수 없으니 당신들이 나를 떠나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렇게 살 바에는 헤어지면 좋겠다고. 옆집 부부의 이별을 잠들 수 없는 밤에 한 번, 5분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자고 싶은 아침에 두 번 성실하고 진실되게 기도했다. 피로한 무교론자는 어느 누구보다 간절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옆집에서 싸움 소리와 함께 섞인 박스에 테이프를 붙이는 소리를 들었다. 빨간 단체티를 입고 학습한 그 말, 꿈은 이루어진다. 분명 이삿짐을 싸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다음날 싱그러운 아침 떠났다. 아파트 복도에서 이삿짐센터의 인부들의 분주하고 활력 넘치는 목소리가 어느 산골의 새소리보다 싱그러웠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제 나를 떠난 이웃 부부의 사랑을 바라야 할까, 아니면 이별을 바라야 할까. 결국 그들에게 아무 말도 전하지 못했지만 사랑을 바란다고 소리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이불을 얼굴 끝까지 끌어올리고 다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