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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 독자 Apr 26. 2024

고해성사

3월 30일 수요일, 라파즈의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하다.

  나는 지금 고해성사를 하러 왔다. 남자들의 노래방 18번 <임재범의 고해> 말고, <고해성사>, 성당의 신부님께 죄를 말하고 그 죄를 뉘우치는 진짜 고! 해! 성! 사! 그것도 남미의 성당에서.


  사실 나는 내가 죄를 저지른 것조차 몰랐기에 더욱이 고해성사가 필요할 것이라는 건 꿈에도 생각 못했다. 이럴 수가. 내가 고해성사할만한 죄를 짓다니. 그랬던 내가 나도 몰랐던 내 죄를 알게 되어 여기에 왔다. 내가 곧 신부님께 고해성사할 나의 죄목과 죄를 알게 된 계기는 이렇다.


  코차밤바에서 라파즈로 오게 된 나는 우유니에서 고산병에 시달려 온몸으로 고생할 때 '내 등을 두드려 준 낯선 이'이자 이후 내가 '생명의 은인'이라 여기는 석환 오빠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남미 여행자들의 루트는 거기서 거기라서 여행을 하다 보면 이렇게 또 일정이 겹쳐 마주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때마다 더 반갑고!


  그렇게 우리는 석환오빠가 라파즈에 먼저 머물며 알게 된 또 다른 인연인 한국인 언니와 셋이서 함께 다시 만난 기념으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라파즈에서 먹을 수 있는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기로. 바로 라파즈 한식당(韓食堂)의 삼겹살!


  우리는 다시 만나 기뻤고 오랜만에 먹는 한국의 맛에 취해 더 즐거웠다.


  "볼리비아는 정말 입맛에 맞는 것들이 없어!"라는 석환오빠의 말에 언니도 전적으로 공감을 했다. 나 역시 초반엔 그랬지만 바로 직전 도시인 코차밤바에서는 조금 달랐다. 코차밤바는 볼리비아에서도 미식으로 유명한 도시다. 거기에서는 다양한 음식을 매우 많이도 먹었다. 덕분에 내가 먹어본 볼리비아의 추천 메뉴들을 소개해보기도 했다.


  한국의 맛 삼겹살과 더불어 오랜만에 반가운 우리말을 나누다 보니 우리 셋은 수다 보따리가 풀렸다. 지난주가 바로 부활절이었기에 서로가 방문했던 도시에서의 <세마나 산타 퍼레이드>와 <부활절 미사>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석환오빠와 언니는 둘 다 천주교 신자였다.


  "참! 부활절에 성당 구경하면서 미사에 참석했는데 어떤 성당에서는 사람들이 다 줄을 서서 신부님이 주시는 걸 나눠 먹더라고요? 다들 서길래 저도 같이 줄 서서 따라먹어 봤어요."


  나의 부활절 미사 경험담에 언니 오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단아, 너 천주교야?"


  그들의 놀라는 표정에 갑자기 나도 놀라 자신이 없는 대답을 했다.


  "아니요…… 저 종교 없는데……“


  "그럼 그걸 먹으면 안 돼. 너 죄지은 거야. 영성체 시간에 성체를 먹다니. 엄청 큰 죄야."


  그렇다. 이것이 바로 내가 고해성사를 하게 된 이유다.

  

  종교에 무지한 나도 그게 성체라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미사에 참석하면 누구나 먹을 수 있는 것인 줄로 알았다. 성체를 아무나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은 정말 몰랐다. 성당에 미사를 드리는 자들은 자연스럽게 먹을 수 있는 줄 알았기에, 세례 받은 자들만이 먹는다는 것은 더더욱 몰랐다. 성체의 의미가 그렇게 깊고 깊고 또 깊은 것인 줄 알았으면 당연히 먹지 못했을 테다. 예수님이 그냥 배고픈 자들에게 모두 다 나눠준 것이라 여겼던 성체는 알고 보니 세례 받고 믿는 자들에게만 허용하신 것이었다. 먹는다는 표현이 아닌 모신다는 표현을 쓴다는 것도 처음 들었다. 정녕 나는 무지했다. 그래 모르는 게 죄라고, 그게 내 죄가 된 것이다.


  "어쩌죠? 저 진짜 몰랐는데..…. 어쩌면 좋아요?"


  "고해성사하러 가야지~ 얼른 성당 가서 신부님께 고해성사해~ 용서해 주실 거야~"


  언니 오빠는 이내 웃으며 <고해성사>하면 된다는 말을 했지만 그 말은 진지했고, 나는 무척 심각했다.


  그 길로 이렇게 성당에 왔다. 모두가 다 같이 줄을 서길래 그냥 앉아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예의를 차리고자 줄을 선 것이었는데, 그건 전혀 예의가 아니었다. 죄를 몰랐을 때는 그들의 성스러운 행위에 동화된 것 같아 살짝 뿌듯하기까지 한 행동이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이곳의 문화를 느끼며 거기에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싶던 나였다. 하지만 무지에서 비롯된 나의 행동은 큰 죄가 되었다.


  그 순간을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니 내게 성체를 나눠주던 신부님의 눈빛이 조금은 흔들렸던 것도 같다. 신부님은 알고 계셨을지도. 서툰 내 행동에 '아! 이 아이, 뭘 모르고 그냥 왔구나.' 하시면서. 그런 내게도 소중한 성체를 나눠주셨고, 그걸 받은 나는 종교적 죄인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죄를 알게 된 지금, 내 마음은 무척이나 죄스럽다. 그 길로 성당에 온 것이다.


  성당 안에는 나무로 된 고해소가 있었다. 고해소 안은 너무나도 좁고 어두웠는데 없던 죄도 뉘우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한없이 내가 작아지는 공간이었다. 고해소에 들어가 있자 신부님이 들어오셨다. 성당에 오기 전 구글 번역기로 번역한 나의 죄를 달달 외며 서툰 스페인어로 고해성사를 했다.


  신부님은 내가 외국인이라 놀라고, 나의 브로큰 스페니쉬에 또 한 번 놀라신 듯했으나 곧 침착하고 의연하게 나의 고해성사를 들어주셨다. 그리곤 나의 죄에 답해주셨다. 아주 길-고, 길-게. 알아들을 수 있는 문장이 단 한 문장도 없었지만 끝없이 긴 문장으로 대답해 주셨고 그건 분명 나를 용서해 주신다는 좋은 내용이었을 테다.


  이게 내가 남미의 성당에서 난생처음 고해성사를 하게 된 스토리다. 모르면 눈치껏 하라는 말은 누가 만든 것일까. 눈치껏 했더니 큰 죄를 저질러버렸다. 눈치도 정도껏 해야겠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때로는 안 해도 될 행동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행동이 실수를 빚는다.


  무지에서 비롯한 행동은 몰랐기에 용서받을 수 있는 행동일까? 아니면 몰랐다는 그 무지조차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이번 내 행동은 전자였으면 좋겠다. 제발. 정말 몰라서 그랬어요.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Lo siento! por favor, perdó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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