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여왕이기에 당신 또한 왕이 되는 그 순간.
오늘 뜯어볼 매력은 도도함이다.
‘도도하다’의 사전적인 정의는 ‘잘난체 하여 주제넘게 거만하다’라고 한다.
언뜻 듣기에도 긍정적으로는 안 들리는 해석인데도, 우리는 별다른 어색함 없이 도도함을 매력으로 받아들인다. 심지어 도도한 여자가 이상형이라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그 사람들은 잘난 척 하고, 주제 넘고, 거만한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 세상에 다양한 취향이 있다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도도한 사람이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에 대해 정의내릴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도도한 사람을 이상형으로 꼽는 사람들조차 어떤 느낌이 좋은지 말해줄 수 있을 뿐, 어디서 그런 매력이 나오는지 콕 집어 알려주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모르는 채 흔히들 도도하다고 여겨지는 행동들을 따라하다가는 매력적인 게 아니라 재수없는 인간으로 보인다.
분명 도도함이란 표현에는 냉기가 포함되어 있다. 어떤 연예인이 도도한 매력을 뽐냈다고 하는 사진이나 기사에서, 활짝 웃는 얼굴과 생동감 넘치는 자세는 드물다. 날카로운 눈매, 똑바른 시선, 무표정. 차도남, 차도녀라는 단어가 포함하는 느낌이다. ‘차가운 도시’가 지닌 뉘앙스가 도도함에도 묻어있다. 그렇다면 도도함이란 곧 쌀쌀맞고, 재수 없고, 차가운 것을 뜻하는 걸까?
쌀쌀맞은 것은 그냥 쌀쌀맞은 것이다.
싹퉁바가지 없는 것은 싹퉁바가지 없는 거고,
재수없는 것은 재수가 없는 것이다.
차가운 것도 마찬가지다.
그냥 차가운 거다.
차도남 뒤에는 꼭 한 마디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내 여자에게는 따뜻하겠지. 상대방에게 차갑게 대하는 게 차도남의 포인트였다면 내 여자에게 따뜻할 필요도 없다.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맞서서 싫어하고,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에게는 너그러워진다. 그렇다면 도도한 매력은 어디서 나오고, 왜 차가운 느낌을 품고 있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도함의 매력은 확신에서부터 비롯된다.
자신의 기준이 뚜렷하게 정해져 있고, 그에 따른 나의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도도함이란 매력을 만들어내는 요소다. 때문에 도도함은 놀랍게도 따뜻함, 배려, 귀여움, 자상함과 공존할 수 있다. 다만 도도한 사람은 언제나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눌리지 않는 사람일 뿐이다.
차가움이 도도함과 혼동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냥 까칠한 태도와, 관계에 절절매지 않고 필요하다면 잠시 차가워질 수 있는 능력을 헷갈렸기 때문에. 매사에 반대하고 불만을 표시하며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보며 도도한 매력이 있다고 하지는 않는다. 재수없다고 하지. 그렇다고 네, 네, 하며 모든 것에 동조하는 사람도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예스맨이나 노맨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존중이 있는 사람에게 끌린다.
거만함 역시 도도함과 묶이기 쉬운 특성이다. 도도하다는 표현이 욕으로 쓰일 때면 콧대 높다, 잘난체 한다는 말들이 같이 나온다.
도도하다는 것이 위에 서는 사람의 태도를 의미하는 것은 맞다. 내가 원하는 것을 고르고 싫어하는 것을 드러내는 당당함은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서 찾기는 힘들다. 스스로를 약자로, 상황과 상대방에 순응해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싫다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 부장님한테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순대국을 먹으러 가지 않나.
그러나 내가 권력자의 태도를 취한다는 것과 상대방을 아랫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도도함이 매력이 될 때는 내가 여왕이기 때문에 네가 왕이 되는 순간이다.
우리는 존경할 점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기쁘게 만들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건 하인 취급을 받고 싶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좋아하는 남자에게 사랑스러운 사람이고 싶다. 사랑스럽고, 존중받는 사람.
도도해지고 싶은 사람도, 도도한 게 좋다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다. 과하게 착한 사람이 될 필요도, 과하게 나쁜 사람이 될 필요도 없다.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내가 되면 그만이다.
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