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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라 Mar 06. 2020

애착: 불안형, 관계중독

-고통과 불안은 사랑이 아니다.



그에게서는 연락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기다린다. 

울고 있는 것도 같다. 왜? 


미친듯이 전화를 건다. 받지 않는다. 

카톡을 남긴다. 어디야. 왜 답이 없어. … 카톡의 1은 지워지지 않는다. 왜?


갑자기 만나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래도 만나기로 한 곳에서 기다리겠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눈이 오기 시작한다. 

머리, 어깨 위로 눈이 소복하게 쌓이기 시작한다. 

다섯 시간이 지났다. 

그는 오지 않았다. 왜?


두 번 다시 누구도 사랑하지 못할 거야. 

저 사람같은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까. 

그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죽겠다고 협박하면 돌아볼까?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힘들다고 하면 돌아봐줄까? 


그가 돌아왔다. 내가 겪었던 만큼, 너도 똑같이 겪어봤으면 좋겠다.

카톡이 왔다. 반가웠지만 한참을 카톡을 읽지 않았다. 

전화가 왔다. 주변에 다른 남자가 있는 듯 이야기를 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질투하겠지?

기분이 나빠 보인다. 왜? 나한테도 그렇게 했잖아. 난 받은 대로 돌려줬을 뿐인데.


나를 봐. 나를 두고 어디 가는 거야. 나한테 왜 그랬어!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 나를 떠날 거야?






우주를 단 하나의 사람으로 줄이고,
그 사람을 신에게 이르기까지 확대하는 것.

그것이 곧 연애이다.
   - 빅토르 위고 




지독한 불안애착이다. 


말 자체는 낭만적이고 좋다. 동시에 불안애착의 끝판왕이다. 한 사람이 내게 신과 같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하는 것. 불안애착의 행동 밑에 깔린 생각이 무엇인지, 왜 생겨나는지를 알아보면 이를 이해할 수 있다. 


애착은 애정에 대한 신호를 주고받는 방식이라고 설명했었다. 

안정애착이란, 비유하자면 잘 작동하는 자판기같은 신호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음료수가 나올 것이고, 나온 음료를 마시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굳이 미리 버튼을 누르면서 음료를 왕창 뽑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당장 손에 마실 것을 들고 있지 않아도 자판기는 저기 있고, 원할 때 가서 뽑아 마시면 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안정애착과 다르게 불안애착은 끊임없이 버튼을 누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캔이 굴러나오는 장면을 봐야지만 자판기가 작동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기에 캔이 나올 때까지 누른다. 간혹가다 자판기가 고장나거나, 아니면 버튼을 너무 많이 눌러 인식이 제대로 안 되는 상황에서 음료가 안 나오면 패닉한다. 목이 말라 죽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며 앞뒤 상황을 다 무시하고 버튼을 미친듯이 더 누르기 시작한다. 








불안애착이 애타게 찾는 것은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어린 아이에게는 까꿍을 하면, 실제로 사람이 없어졌다가 나타났다고 생각하고 놀라워하며 웃는다. 조금 자라나게 되면 손 뒤에 사람이 여전히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람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잠시 가려진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불안애착은 까꿍 할 때 매번 놀라는 어린아이와도 같다. 대상과 닿아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관계가 없어진 위험한 상황이라고 받아들인다. 


연결, 필요하다. 

관계가 지속되려면 두 사람에게 적절한 정도의 연락도 연결된 느낌도 있어야 한다. 상대방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고, 친밀해지고 싶은 불안애착의 욕구는 절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연인 관계와 같은 가까운 사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어떤 사람과 항상 닿아있기란 불가능해서 문제가 생긴다. 자신의 삶을 내팽개치고 24시간 서로에게 달라붙어 있을 게 아니라면, 누구나 잠시 연락이 안 되는 때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불안애착은 이를 견디지 못한다. 누군가에게는 견뎌야 할 것조차 아닌 그냥 자연스러운 삶인데, 불안애착에게는 위험이고, 고쳐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불안애착이 그렇게 매달리고, 집착하고, 과도한 친밀감을 요구하는 사람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내가 힘들었던 만큼 당해 보라며 일부러 질투를 유발하거나, 연락을 안 하는 식의 수동적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항의하는 것이다.


이렇게 불안애착은 관계 유지에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멀어지려는 상대를 붙잡으려 하고, 언제 또 멀어지려 할 지 모르니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위험신호를 찾아내야 한다. 에너지가 많이 들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만날 때 중요한 건 관계와 사람이다. 그게 아니라 당장 어떤 대상과 연결이 되어있는지가 중심이 되면 상대방의 행동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그리고 성급하게 반응하게 된다. 나의 기분, 행동, 삶이 상대방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빅토르 위고의 표현처럼 그 사람은 내게 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내게 주는 불안은 내가 사랑에 빠져 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래서 불안애착은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는 회피애착에게 매력을 느낀다.  

실제로 불안애착과 회피애착은 서로 끌린다. 관계가 고통스럽고 자신에게 상처를 남기는데도 그렇다. 중독과도 같다. 불안애착이 볼 때 회피애착은 자꾸 도망가면서 붙잡고 싶고, 연결되고 싶고, 나를 흔드는 도박이나 마약과도 같은 사람이다. 그 때 느끼는 고통, 불안, 저 사람이 옆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간절한 마음과 애타는 감정의 곡선이 사랑으로 인식된다. 


오히려 평온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안정애착은 지루하다고 여겨진다. 안정애착과 맺을 수 있는 관계는 훨씬 흔들림이 적으니까. 사랑한다면 나는 상대방의 존재에 따라 행복과 고통을 오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안정애착은 없어지지 않으니 고통스러울 일도 없다. 



많은 불안애착들이 실제로 질문을 한다. 어떻게 사랑이 아니고, 어떻게 해야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냐고. 개인의 상황, 성격, 관계의 양상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관계의 대부분이 고통이나 불안이라면, 사랑이 아니다. 



관계라는 이름의 마약은 정말 달콤하다. 너무나도 달콤해서, 삶에 있어 너무나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잡아먹고 동시에 절망, 분노, 슬픔을 남겨두고 떠나는데 그만두지를 못한다. 이러한 악순환의 굴레를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불안애착들도 안정애착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화라








하는 것은 아는 것과 다릅니다. 

불안애착에 대한 이야기와 불안애착인 내가 느끼는 감정은 또 다르고요. 

회피애착에 대한 이야기와 회피애착인 내가 하는 행동도 또 다를 수 있습니다.


애착에 대한 글을 읽어도 막막하고, 

안다고 생각했지만 변하지 못하고,

좌절감과 실망을 반복하셨던 느꼈던 분들을 위한


애착 클래스를 개설했습니다. 

그동안 문의해주셨던 분들은 하단 링크 혹은 메일로 문의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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