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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라 Oct 21. 2019

밀당: 밀면 당길 게 없어진다.

-밀당을 하려다 연애를 못했던 과거의 나에게.


우리는 누구나 빼앗기기 싫어하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관계에서도 이 두려움은 나타난다. 친구나 가족에게보다는, 연인 관계에서 특히 이런 두려움이 두드러진다. 내가 쉽게 보이지 않을까, 저 사람이 나한테서 어떠한 형태로든 이득을 취하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일까.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쉬운, 만만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즉, 밀당을 하려고 한다.


연애를 시작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 또한 밀당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시도도 여러 번 해봤다. 그 시도가 잘 먹혔다면 이 글의 제목은 <밀당: 미는 것의 중요성>이나 <밀당: 연애 초반에 가장 중요한 것>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밀당이라는 단어와 '쉬워보이면 안 된다'는 걱정에 사로잡혀서, 좋은 인연이 되었을 지 모르는 사람들을 스스로 밀어내고 밤에 이불을 차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밀당의 목적은 단순하다.

상대방을 밀어냄으로써 관계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좀 더 우위에 두고, 더 높은 가치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동시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관계에 대해 투자와 노력을 좀 더 하게 하는 것.


그러나 결과는 대부분 기대와는 다르게 상대방이 나와 관계를 동시에 포기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관계에서 상대방이 나를 위해 무언가 해주기를 바라는 건 당연하다. 나도 연애할 때 기대하는 부분이 있다. 받고 싶은 선물이 있고, 차 문을 먼저 열어줬으면 좋겠고, 의자를 빼줬으면 좋겠고, 먼저 카톡을 해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것들은 내가 스스로 난 이만큼 가치있으니 대우해 달라는 암묵적인 시위를 할 때보다,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투자와 노력을 했을 때 돌아왔다. 기대를 가지려면 최소한 기대를 가질 수 있을만 한 상황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내준 것이 없는데 받기를 기대하는 건, 관계 지속을 운에 맡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처음부터 간이든 심장이든 통장 잔고든 모든 것을 빼서 먼저 주라는 뜻은 아니다. 그걸 덥석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 땐 애정을 돌려받는 게 아니라 사기당할 걸 기대해야 한다. 좋든 싫든 관계 유지를 위해서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고, 무리해서 시간을 내고, 주방이 불에 타든 회사에 일이 있든 전화를 받기 위해 뛰쳐나가지는 말아라. 단지 내가 줄 수 있는 것들임에도 밀당을 위해서 감추지는 말자는 거다. 서로 손아귀에 쥔 걸 아무것도 놓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소모적인 알력싸움만 계속될 뿐이다. 



내가 뺏기기 두려운 만큼, 상대방도 뺏기는 걸 두려워하고 있다.


두려움의 고리를 먼저 끊는다는 것은 쉬운 사람이 된다든가 관계에 있어서 약자가 된다는 것이 아니다. 

밀당이 없어서 내가 쉽게 보이는 건 아닌가 하는 기대는 잘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려도 좋다. 또한 두려움보다 관계 초반에 상대방이 관계에 더 투자해 주길 바라서 밀당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관계의 가치를 높이는 건 나를 얼마나 만나기 어려운지가 아니다.



내가 당신에게 있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며, 서로 관계를 유지함에 있어 얼마나 긍정적인 경험을 하는지이다. ‘내가 상대방을 미는지 당기는지’ 보다는 ‘우리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즐거운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 무엇을 상대방에게 줄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받을 것을 생각하는 건 그 다음 이야기다. 상대방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것과 내 욕심과 기대를 구분해야 한다. 



인간관계는 등가교환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10을 받았으니 10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기만 한다면 관계가 깊어질 수 없다. 이는 '내가 당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테니 각자 할 일 합시다.' 하는 독서실 옆 사람과의 관계에 그칠 것이다. 하물며 누군가에게 10을 주고 100을 내놓으라고 요구해서야, 관계가 성립하기 힘들다. 우리가 100의 관계를 만들고 싶다면 내가 10을 주고, 그 사람이 20을 되돌려 주고, 내가 그걸 30으로 되돌려주듯 차근차근 쌓아올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주고, 받고, 주고 받는 과정이 반복될 때 비로소 관계는 진척된다. 



이를 시작하려면 먼저 내미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니 일단 당기고, 상대방에게도 당길 용기를 주자.

밀어내면, 나중에 당기려고 할 때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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