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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라 Feb 21. 2020

애착: 관계의 정석

-누구나 할 수 있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연애



사랑은 성장이 멈출때만 죽는다.     - 펄 벅.




누군가와 만나서 함께하는 일은 늘 불확실성을 동반한다. 

정답이 없다는 건 매혹적이지만 위협적이기도 해서, 우리는 그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노력한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심리학자들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애와 관계를 설명하려 시도해 왔고, 그렇게 쌓인 지식 중 몇몇은 이제 우리에게도 흔히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애착(attachment)이다. 

연애에 대한 심리학 지식을 찾아본 사람이라면 쉽게 애착이론과 애착 유형에 대한 이야기를 접해봤을 것이다. 안정애착, 불안애착, 회피애착으로 유형을 나누고 자신과 상대방이 어디에 속하는지 가늠해보는 테스트는 이제 낯설지 않다. 검증되지 않은 채 떠돌아다니는 테스트가 아니라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연구해온 심리학 지식이 알려지고, 이를 실생활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늘어난 것은 전공자로서도 반가운 일이다. 


다만 애착 유형이라는 단어가 널리 퍼지면서 애착이라는 하나의 깊은 연구 주제가 단편적인 정보로만 떠돌아 다니게 된 것은 안타깝고, 어떻게 보면 약간 위험한 일이 아닐까 싶다. 애착이 어떻게 형성되고 지속되는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해보기에 앞서 우리는 애착이라는 단어와 세 가지 유형을 먼저 접하게 된다. 복잡한 지식보다는 단순한 분류법이 훨씬 간편하고 당장 쓸모있어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유형에 먼저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안정애착: 사랑할 수 있다, 연애 해도 좋다라는 일종의 자격증?

불안애착: 상대방에게 매달리고 집착하는 모습

회피애착: 상대방이 나를 좋아해주면 애정이 식는 나쁜 남자, 나쁜 여자의 모습 



현재 애착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는 안정애착인 사람은 관계에 능숙하고, 불안애착과 회피애착은 연애할 때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라고 암시한다. 이렇게 양분된 세상에서 우리는 애착 유형 테스트 결과가 안정애착으로 나오면 사랑할 능력이 충분하다는 검증을 받은 것처럼 뿌듯하고, 다른 유형으로 나오면 연애를 망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거나 테스트 자체를 외면하게 된다. 그렇다면 안정애착이 아닌 사람들은 평생 깊은 관계를 맺지 않은 채 살아가야 하는 걸까? 일생을 피로와 권태로 점철된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는 걸까? 


애착은 그렇게 단순한 인간관계의 사형선고로 보기에는 훨씬 더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이야기이다. 애착을 공부할 때 유형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맞고, 유형에 따라 관계 양상이 달라지는 것도 맞다. 그러나 단순히 검사 결과로 안심하거나 좌절하기에 앞서, 우리는 우리가 사용할 지식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애착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왜 필요한가?

전공서나 교양 서적을 통해서가 아니라면, 애착이란 단어를 접하게 된 이유는 관계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찾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애착 이론과 유형에 대해 아는 것이 관계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심리학자, 연애 전문가, 과학으로 사랑을 이해하겠다는 많은 사람들이 애착 유형에 대해 설명하고 알아보라고 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적어도 연애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쫓아내기 위해서 그 오랜 시간동안 애착을 연구해온 것은 아닐 것이다. 




애착은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위해 필요하다. 


현재 연애 중이라면 나와 상대방을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라면 적합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사랑을 할 때 애착에 대해 이해하고 애착 유형을 판단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애착이란 한 사람이 특별한 정서적 관계에 있는 대상에게 형성하는 유대감, 깊은 감정적 친밀감을 일컫는다. 달리 말하면 애착은 친밀한 대상에게 가지고 있는 애정이다. 누군가에게 애착을 형성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을 가깝게 여기고 있으며 그 사람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애착 유형은 가지고 있는 애착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물론 누군가 가지고 있는 특정한 형태의 애정이 옳다 그르다 재단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함께 할 때 보다 수월하게 안정적인 사랑을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존재한다. 


연애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한다는 점에서는 조모임이나 팀 프로젝트와 비슷해서, 방식이 맞는 사람들이 함께할 때 서로 더 편하고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반대로 우리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명백하게 잘못한 사람이 없다고 할지라도 조모임과 팀플은 한 순간에, 정말이지 매우 쉽게 힘들어진다. 그렇기에 내가 어떤 식으로, 왜 이렇게 상대방과 상호작용을 하는지 이해한다면 마냥 감정에 휘둘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것을 내줄 수 있고, 어떤 것을 받고싶어 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애착 유형은 이 때 비로소 쓸모를 가진다. 

많은 사례들을 통해 내 행동의 기저와 감정의 행방을 추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아를 대상으로 한 애착 이론과 실험의 내용들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더 자세하게 다루지는 않겠다. (Bowlby, Harlow, Ainsworth etc.)


불안애착과 회피애착 모두 뿌리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불안과 회피애착 모두 불안한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나름대로 선택했던 대응 방식 중 하나인 것이다. 불안애착의 불안은 애정이나 돌봄을 잃을 것에 대한 공포 반응에서 기인하기에 지속적인 친밀감과 접촉을 요구하며, 회피애착의 회피는 깊은 관계와 애정으로 인해 자신이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부터 유발되었다. 이런 방식을 배운 것은 그들의 선택이 아니며, 절대 그들이 애정을 주지 못하거나,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단지 관계에 있어 취해야 할 태도와 사랑을 표현하는 행동이 환경으로 인해 어긋났을 뿐이다. 그렇기에 불안애착과 회피애착은 자신의 방식이 누군가에게, 결과적으로는 자기 자신까지도 힘들게 하거나 상처입힐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를 피해가도록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애착은 영유아기 시기 주 양육자와의 관계에 따라 일차적으로 형성되는 매우 강력한 상호작용 방식이다. 태어나마자마 보는 세상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생애 첫 관계는 이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이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하고만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세계는 성장하면서 점점 넓어진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부모, 친구, 스승, 연인과 주고받는 애정은 종류도 다르고, 사람과 상황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각각의 과정에서 처음 애착 관계를 형성할 때와 같이 우리는 경험에 의해 수많은 형태로 변화한다. 실제로 애착 연구 중 몇몇은 성인기 애착이 많이 변한다는 결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니 단순하게 지금 나의 애착 테스트 결과가 안정 애착이라는 사실만으로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이 옳고 관계에 갈등이 전혀 없을 거라 주장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회피애착이거나 불안애착으로 나왔기 때문에 나의 연애가 잘못될 거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너무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 자신이 보이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매달리는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고, 불안해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고, 어제는 좋았는데 갑자기 상대방이 오늘따라 귀찮아지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내가 모자란 사람이거나 타고나길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애정을 올바르게 해석할 방법을 배우고 안정적인 관계에 대한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는 것 뿐이다.


애착 유형은 연애 불치병 선고가 아니다.


당신이 기관지가 약합니다, 혹은 소화기가 약하네요 하는 현상 파악 정도에 가깝다. 기관지가 약하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호흡을 멈추거나 가지고 있는 기관지를 잘라내고 새 기관지를 이식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담배는 멀리 해야겠구나, 도라지 차를 챙겨 마셔볼까, 목감기가 유행이라던데 조심해야겠다 등을 생각하며 나름대로 일상에서 예방책과 해결방법을 찾을 뿐이다. 우리가 연애를 대하는 태도도 그래야 한다. 


내가 무슨 유형에 속해있다는 건, 관계를 멈추거나 나를 탓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반응하는지,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를 알고 미리 대처하도록 도와주는 도구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한다는 것은 나와 상대방, 그리고 관계에 대해 조금 더 배우고 이해하며 성장하는 것이다.(이번만큼은 꼭 사랑이나 연애가 아니어도 좋다. 누군가와 깊은 감정적 관계를 맺고 애착을 형성하는 것.) 그 과정 안에서 당신의 애착 역시도 눈부시게 자라날 수 있다.



이 시리즈가 끝날 때 즈음에는 보다 더 행복한 당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애착 시리즈, 이제 시작합니다. 




화라








References


Attachment in Psychotherapy, David J. Wallin

Attachment and Psychoanalysis, Morris N. Eagle

Attachment, John Bowlby

그들이 그렇게 연애하는 까닭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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