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곧 크리스마스가 오겠구나. 이번 성탄은 또 어떻게 지낼까? 고민하는 것이 즐겁다. 나이가 들어도 크리스마스는 늘 기대된다. 어린 둘째를 생각하면 한 동안 성탄절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매년 겨울만 되면 마트에서 한 두 개씩 사 모은 장식품이 어느덧 한가득이다. 내 키보다 큰 트리에 잔뜩 장식을 하고 거실 베란다에 보란 듯이 놓아둔다. 아직 산타의 존재를 믿는 둘째를 위해 선물 숨기기 작전을 펼치느라 잠이 늦어져도 좋다. 아이들이 성탄 아침에 깨자마자 잠결에 선물을 바로 발견하지 못하고 몇 초라도 실망할까 봐 깨자마자 볼 수 있는 위치에 선물을 둔다.
크리스마스에는 어느 방송국이든 꼭 한 번은 영화 '크리스마스 캐럴'을 방영한다. 다양한 버전의 영화가 있는데 가장 최근에 본 것은 배우 짐 캐리가 스쿠르지역을 맡은 영화이다. 디즈니 영화사 제작에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작품답게 화려한 3D 애니메이션을 자랑한다. 그런데 나는 어릴 때 봤던 만화버전이 참 그립다. 화면이 매끄럽지 않고 최근의 화려한 영상과는 비교할 수 없게 조악하지만 나는 그 만화가 좋았다. 지금은 찾아볼 수 도 없는 그 영화를 매년 성탄절에 티브이를 통해 보았던 것 같다. 애들을 싫어하고 욕심 많은 스쿠르지 영감이 자신의 과거, 현재 그리고 쓸쓸한 미래를 보고 깨달은 바가 있어 착한 사람이 된다는 참 고전적인 결말이 억지스럽지 않을 만큼 영화는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요즘은 유치원생만 되어도 산타를 믿지 않는다는데 나는 언제까지 산타의 존재를 믿었을까?
어렴풋이 산타의 비밀을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모른 척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추운 날에도 창문을 열고 산타의 썰매가 은빛 가루를 뿌리며 밤하늘을 날아오르길 간절히 기대했다.
그 시절 나에게 산타는 행복이었고 녹록지 않은 현실을 잠시라도 잊고 환상 속에 빠지게 하는 희망이었다. 나에게 성탄 선물을 가져다 줄 산타가 거짓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반드시 산타는 존재해야 했다.
그날도 나는 산타를 기다리다 졸음을 못 이기고 잠이 들었나 보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 깬다. 아직 새벽인지 어둡다.
'잠들었네? 선물은?'
급하게 머리맡을 살핀다.
무언가 있다.
방바닥에 언뜻 거무스름한 형체가 보인다. 나는 급하게 그것을 잡는다.
그리고 희미한 빛으로 그 실체를 본다.
오징어 다리, 몸통, 그리고 안주용 김.
이게 뭐지?
옆에 아직 자고 있는 오빠 머리맡에도 비슷한 것이 있다.
사실을 부정하던 산타의 존재에 대한 강한 믿음은 더 강한 어퍼컷 펀치를 맞고 깨져버린다.
그래. 산타는 이상하게 유독 우리에게 인색했다. 뭐 그리 나쁜 아이도 아니었는데 우리에게 인색했어.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은 산타에 대한 환상을 깨는 시간을 앞당겼다.
혼자 우리를 키우던 아빠는 어디 문구점이라도 가서 작은 선물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을 못했나 보다. 그래도 술 마시는 와중에 선물 기다릴 우리가 떠올랐나 보네.
이런 웃픈 일이 또 있을까?
남은 술안주를 주섬주섬 챙겨 왔을 아빠의 흔들리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하루 종일 장사하고 늦은 시간에는 애들 챙기느라 성탄 같은 건 사치였을 아빠를 이해하기에 나는 어렸다.
철없이 친구들과 성탄선물을 비교하면서 자랑이나 해야 할 나이에 오징어 다리라니.
나는 그 시절을 보상받으려는 듯 매년 성탄을 며칠 전부터 준비한다.
크리스마스트리 꼭대기에 커다란 종을 꽂고 어느 한 곳 빠짐없이 빽빽하게 장식한다.
4단 변신을 하는 전구를 360도 둘러친다.
거실의 불을 크고 가까이 앉아 전구가 변하는 모양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조용히 행복이 차오른다.
아이들이 맑은 목소리로 부르는 캐럴은 무한 반복해도 지겹지 않다.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이 무엇인지 스무고개 넘듯이 알아내는 시간이 즐겁다.
그렇게 준비한 선물을 차 트렁크에 넣어 두고 성탄 이브 밤에 살금살금 꺼내 와 아이들 침대에 놓아두는 이벤트가 신난다.
가끔은 친구, 친척, 부모님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한다.
의외의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나까지 흐뭇하다.
그렇게 위로를 받는다.
오징어 다리에 대한 웃픈 기억은 이제 코믹한 추억이 되었다.
아빠에게 그 사건을 얘기하며 '어떻게 그랬냐고' 핀잔을 주어도 아빠는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이다.
아빠가 기억도 못하는 사건을 두고 원망을 하면 뭐하나? 코믹한 추억 하나 있다 치자.
이번 성탄에는 연말이면 더 쓸쓸해하는 부모님과 함께 식사라도 해야겠다.
이번 성탄은 또 어떤 행복한 일을 만들까? 날씨가 추워질수록 기대는 더 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