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에 대규모 쇼핑몰이 들어섰다. 전국의 온갖 맛집 체인점들이 잔뜩 들어섰다. 주말에 외식 걱정은 한동안 없겠다. 맛집들 중에는 지방 소도시의 유명 빵집인 이성당도 있다. 나는 가족들이 알아주는 빵순이다. 다이어트를 계획할 때는 매번 '빵 끊기'가 첫 번째 규칙이 될 정도로 소문난 빵순이다. 둘째 출산 후 친척이 방문했을 때 빵을 한 가득 사들고 왔을 정도로 집안에서도 알아주는 빵순이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빵집들이 의례 그렇듯 이성당도 단팥빵이나 곰보빵 등 전통적인 빵이 유명했다.
단팥빵 2개를 샀다. 둥그런 단팥빵 가운데를 잘라보고 그 빵집이 유명한 이유를 바로 알았다.
조금 과장하자면 만두피보다 조금 두꺼운 빵 안에 팥이 잔뜩이다. 지방 소도시의 인심이 여기까지 느껴질 지경이다.
나는 언제부터 빵을 좋아했을까? 모르겠다.
그런데 이 좋아하는 빵을 싫어하던 때가 있었다.
학교 도시락으로 빵을 싸가야 했던 때
나 어릴 때는 학교에서 급식을 먹지 않았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가야 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도시락 싸가는 요일이 많아졌는데 초등 저학년 때도 일주일에 한두 번 도시락을 쌌다. 학교에서 도시락 먹는 날 아이들은 마치 소풍 온 것처럼 신이 난다. 점심시간 종이 치면 아이들은 책상 고리에 걸어둔 도시락 가방을 무심히 들어 올려 밥과 반찬을 꺼낸다. 봄 여름에는 일반 도시락통에, 가을 겨울에는 보온 도시락통에 싸온다. 엄마가 새벽부터 밥을 해서 갓 지어진 밥을 보온 밥그릇에 넣고 따뜻하게 먹으라고 바로 뚜껑을 닫으면 그 안에 김이 꽉 차 있다가 밥통 뚜껑이 열리고서야 '뻥'소리와 함께 뜨거운 김을 내뿜는다.
그 장면이 참 부러웠다.
나는 가끔 도시락을 싸가지 못했다. 대신에 가방에서 주섬주섬 빵과 우유를 꺼냈다.
내가 열 살 무렵 아빠가 엄마와 재혼하기 전까지 그랬다.
도시락 한번, 빵 한번, 도시락 한번, 빵 두 번 이런 식이었다.
그 날 갓 구운 부드러운 이성당 단팥빵이었으면 그나마 위로가 되었을까?
가게를 하고 가게방에서 우리 남매까지 돌봐야 했던 아빠에게 매번 따뜻한 도시락까지 챙겨주길 바라는 건 욕심이었을까? 팍팍한 살림살이의 우리 처지를 너무 일찍 알아버린 나는 빵과 우유를 가방에 넣어주며 멋쩍게 웃는 아빠를 향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뻑뻑한 슈퍼마켓 빵을 우유와 함께 삼켰다.
물색없이 나를 부러워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야 너 빵 맛있겠다. 나는 정말 밥 지겹다. 나랑 바꿔 먹을래?'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바꿔 먹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철없는 남자애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절대 바꾸지 않았다.
나는 정말 빵이 맛있는 척, 빵을 좋아하는 척, 네 밥이랑 바꿀 마음이 전혀 없는 척했다.
점심시간은 몇 분 정도였을까? 짧았으면 좋았겠다.
나는 도시락 먹는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도시락이라고 싸온 빵에 대해 생각하느라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생긴 후에야 나도 도시락으로 밥을 싸갔다.
야들야들 분홍 소시지, 포근포근 감자조림-엄마의 감자조림은 정말 별미였다.- 바삭바삭 멸치볶음, 부드러운 계란 프라이. 그나마 추운 날 다들 가져오는 보온 도시락을 산 것도 한참 후였다.
내 어릴 적 삶은 참 녹록지 않았다.
나는 아무리 맛난 집이라도 줄까지 서가며 사 먹진 않는다.
새로 생긴 이성당에서 빵을 사려면 주말에는 30분, 평일에도 10분은 줄을 서야 겨우 계산을 하고 그 부드러운 빵을 맛볼 수 있다.
오늘은 이성당 빵집에 줄을 서서라도 단팥빵을 사서 친정에 가져다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