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어른들과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다 마치고 나오면 나는 허리를 잔뜩 웅크릴 정도로 추운데 어른들은 허리 꼿꼿이 세우고 다니는 게 참 신기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어른들은 부럽고도 신기한 능력이 있었다. 어쩜 그렇게 청아한 소리가 나도록 손가락을 잘 튕기는지 또는 한방에 콜라병을 딸 수 있는지 놀라웠다.
지금 내 아이들도 똑같이 신기해한다. 말하는 모양새까지 똑같다.
두 개의 손가락을 부딪치며 " 엄마 '딱'소리 낼 수 있어?"
나이가 든다.
'서른'
서른은 무척 매력적인 나이로 다가온다. 신체는 아직도 아름다운 청년인데 정신적으로도 꽤 성숙한 것 같다.
실상은 어떨까? 서른은 사회적으로 성인이라는 타이틀을 부여받은 지 10년이 된 때이다.
그 10년 중 거의 반은 대학생이랍시고 화려한 백수생활을 했고 나머지 반은 취업준비를 하거나 조금 빠른 사람은 사회초년생일 거다. 결론적으로 서른은 이뤄 놓은 게 거의 없다.
사실 정신적으로도 아직 미숙하다. 최근의 추세로 보아 아직 미혼일 가능성이 높고 가정에서 남편이나 아내로 또 부모로 살아보지 않아 진짜 어른도 아니다. 물론 모두 내 기준이다.
앞으로 취업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고, 아이도 낳아야 하고 살면서 거치는 어려운 관문을 수능 이후로 거의 치르지 않았으니 서른 이후는 미지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두려울 수밖에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선배들을 보면 가정도 이루고 그럴듯한 직장에서 자리도 잡고 어쩜 그렇게 잘들 사는지 부럽기도 하고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저 정도는 되어 있을까? 불안하다.
나도 서른은 불안과 혼란의 시기였다.
나는 몇 년의 수험기간을 거쳐 딱 서른에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래서 처음 해보는 힘겨운 사회생활에 인생이 원래 이렇게 빡빡한 거냐며 한탄했던 때이므로 남들과 거의 엇비슷한 서른을 보내고 있었다.
서른 즈음에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를 읽고 어찌나 공감을 했던지. 구체적으로 기억나진 않지만 서른을 앞두고 앞으로 펼쳐질 삶에 대한 불안은 열심히 사는 당신에게 당연한 심리상태이니 걱정하지 말고 거침없이 나아가라는 내용이었으리라.
'그러니 당신은 항상 옳다. 거침없이 나아가라' 이 구절은 서른뿐 아니라 두고두고 내 삶을 관통하는 모토이다.
'마흔'
그렇게 서른을 지내고 또 한 번의 10년 세월을 통과하여 마흔을 맞이했다.
성인으로 두 번째 10년은 진짜 어른이 되는 각종 통과의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규정하는 새로운 서류들(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 증명서, 혼인증명서 등등)이 생겼고 누구의 아내, 부모, 며느리 등 법적 관계도 복잡해졌다.
결혼이란 걸 하고 소꿉놀이 같은 신혼기간을 거쳐 부모가 되었다. 부모라는 세계는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편하게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해 주는 엄청난 경험이었다. 자신밖에 모르던 이기적인 내가 사랑한다는 것, 책임을 다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다. 부모 경험으로 인한 마인드의 변화는 가정 내에 그치지 않고 사회로까지 뻗어 나간다.
세상 모든 아이들은 당연히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는 인류애 비슷한 마음이 생긴다. 그때부터 아동범죄를 다룬 뉴스는 시청할 수가 없었고 아동보호단체에 기부를 하기 시작했다.
내 부모가 삶의 풍파를 겪던 바로 그 시기를 통과하며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조금씩 알아간다. 그렇게 조금씩 자유로워진다.
마흔은 직장에서도 점점 자리를 잡고 그에 비례하여 능력도 책임도 커지는 시기이다. 어느 순간 그 자리에 맞는 사람으로 변하고 자기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된다. 간부들은 나이도 50이 훌쩍 넘고 신체적인 능력도 떨어질 텐데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 아이디어만 번뜩이고 막판에 잠수를 타거나 도망쳐 버리기도 하는 젊은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묵직함이 있다. 멋진 일이다.
경험이 쌓이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진다. 미워했던, 원망했던, 이해할 수 없었던, 무시했던 사람들을 어느 순간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싶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나를 옭아매던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렇게 성장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파릇파릇한 스무 살 때 오십 대의 엄마가 이 나이 되니까 좋다고 했을 때 정말 이상했다. 늙어가는데 뭐가 좋은 걸까? 좋은 거라고는 팔팔한 몸뚱어리 밖에 없는 스무 살이었다.
나는 올해 45세이다. 40세가 막 되었을 때는 미국나이로는 아직 38세라고 꼭 사족을 붙이곤 했는데 지금은 미국나이로 해도 43세, 40대이다. 이젠 미국나이 어쩌고 사족을 붙이는 것도 의미가 없어졌다.
회사에서 49세 생일을 맞은 어떤 직원이 40대의 마지막 생일이라며 아주 특별하게 지내야겠다고 말하던 것이 기억난다. 40대를 떠나보내는 것이 아쉬웠을 것이다.
나는 서류상으로는 나이 들어도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더 깊고 찬란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해 꼭 지키려는 몇 가지 삶의 수칙도 있다.
1. 이젠 용서하자.
내가 다섯 살 때 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셨다. 그 전의 기억은 거의 남은 것이 없고 그 이후 초등 저학년까지 나는 내 인생에서 겪을 쓴 맛의 거의 절반을 맛보게 된다. 제대로 된 보호자가 없는 아이에게는 마수의 손길이 뻗기 일수였고 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삶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인 줄 알았다. 내 주위에 나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따뜻한 방법으로 어루만져주는 어른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나는 그 시절의 트라우마를 좀 더 빨리 풀고 좀 더 아이답게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 주변의 어른들은 다들 저 살기 바쁘고 서로를 원망하기 바빴다. 그런 분위기에서 나는 소리를 줄이고 그저 조용히 지냈다. 부족한 부모를 탓하면서 내 삶을 한탄하면서 살았다. 시간이 지나면 나도 그들이 그 시절에 겪었던 비슷한 경험을 한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그들의 삶도 녹록지 않았음을. 그렇게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을 용서했다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다. 이제 겨우 인생의 중반을 산 나는 앞으로 살아갈 날 만큼 좀 더 그들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자유로워질 것이다.
2. 기생충은 되지 말자.
영화 '기생충을 아주 재미있게 봤다. 어쩜 그렇게 내가 싫어하는 인간군을 정확하게 표현했는지 감독이 거장은 거장이다 싶다. 자신이 제공한 노동의 대가로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누군가에 빌붙어 사는 사람, 어딘가에 이름만 올리고 불로소득하는 사람. 내가 가장 경멸하는 부류의 인간군이다. 꼭 돈을 벌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역할에 충실하는 것. 집안을 정갈하게 유지하고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고, 지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자기 밥값을 하는 거다.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기생충이 되는 날 내 인생도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렇게도 바쁘게 살았다.
3. 자신만의 소신을 갖자.
소신이라고도 하고 줏대라고도 한다.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것, 팔랑귀가 되지 않는 것
상대의 거짓말이나 과장에 겁먹고 불안해하지 않는 것
자신만의 가치를 세우고 그 가치를 지키는 것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 남들이 나쁘다고 하는 것도 자신만이 기준으로 다시 한번 판단해 보는 것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주변에 난무하는 온갖 정보들 속에서 끝까지 소신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쉽지 않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마흔, 불혹(不惑)의 나이라고 했다. 사실 완전한 불혹이란 불가능할 거다. 다만 살면서 더 단단해지고 싶다.
4.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자. 꼭 하고 싶은 것이라면 망설이지 말자. 그리고 일단 결정한 것은 뒤돌아 보지 않고 나아갈 거다. 남들이 하는 거라면 나도 다 할 수 있다.
엄마는 지금도 좋다고 한다.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인생이 살만하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인가?
나이 들며 축복받은 경험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기억을 더듬어 감사하고 감동적인 순간들을 몇 가지 추려보았다.
아직 가보지 못한 미래의 더 멋진 세계로 거침없이 나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