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인 둘째는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다. 그 또래가 많이들 하는 태권도나 축구도 아직 못 해봤다.
그동안 육아 이모님과 함께 지내던 둘째의 스케줄은 평일 내내 유치원 등원-하원-놀이터에서 30분 놀기- 집에 와서 종이접기 - 엄마 오면 조금 더 놀다가 취침 - 아침에 또 유치원 등원-하원
직장인이 따로 없다.
좀 더 많은 경험을 해 주고 싶었으나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기고 있던 터라 한계가 많았다.
나는 요즘 15년간의 공직 생활을 청산하고 두 번째 삶을 준비하고 있다.
나 자신을 위한 준비와 그간 아이들에게 못 해준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하고 있는 중이다.
정확하게 표현은 하지 않지만 아이는 태권도에 관심이 있었다.
아마도 유치원에서 일찍 하원하는 친구들이 태권도장에 간다는 것을 알고 그런 마음이 더 생겼을 거다.
그래서 둘째도 태권도를 하기로 했다.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태권도장을 들여다본 아이는 친구들이 땀 흘리며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품세를 배우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나 보다. 그 자리에서 등록을 한다.
관장님이 도복과 띠를 태권도 가방에 넣어 주신다.
유치원 친구들 중에 이 태권도 가방을 들고 가는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빨간 바탕에 사자 한 마리 포효하는 하얀색의 프린트가 아주 강렬하다.
그때부터 아이는 이 빨간 가방을 어디나 들고 다닌다.
할아버지 생신 때도 가져가고 잘 때도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잔다.
늦게 들어온 누나한테 가방 안 물건들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자랑하느라 난리다.
"누나 이거 봐. 태권도 태권도. 이거 하얀 띤데 다 이걸로 시작해. 이거 줄넘기. 수요일마다 줄넘기도 한대. 누나 줄넘기할 줄 알아?" 아주 신이 났다.
그런 아이를 보니 좀 더 빨리 데리고 갈걸 싶다.
나도 저런 빨간 가방 하나에 아주 신났던 기억이 있는데. 아니다.
신났다는 표현은 적합한 표현이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슬펐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어릴 때 우리 집은 좀 못살았다. 부자는 물론 아니고. 그래 가난한 것 까지는 아닌데 또 그럭저럭 산 정도에는 못 미치는, 우리 집은 좀 못 살았다.
우리 아버지 세대가 거의 그렇듯, 아빠의 지상 최대 목표는 집을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낄 수 있는 모든 것을 줄여야 했다.
그런 이유였는지 난 어릴 때 유치원에 다니지 못했다. 유치원 비용이 비쌌을까? 그래도 동네 친구들은 많이들 유치원에 다녔다. 그때는 왜들 그렇게 노랗게 입고 다녔는지 꼭 병아리 새끼들 마냥 오전이면 노란 옷들이 왔다 갔다 했다. 엄마손을 잡고 노란 옷에 웃기는 갈색 빵모자를 쓰고 유치원에 가는 아이들을 나는 눈 끔뻑끔뻑하며 바라보곤 했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은 다들 그 지역명칭이 들어간 OO유치원에 다녔다. 가끔 그 유치원을 지나칠 때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아이들이 신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무슨 노래인지 가만히 귀 기울여 보았지만 차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나를 포함해서 오전에 집에 남은 몇몇 아이들은 사방치기를 하거나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같은 걸 했다. 나는 공기의 여왕, 고무줄의 여왕이 되어 갔다.
유치원 안 다니는 것이 말도 못 할 만큼 창피한 정도는 아니었다.
유치원이 지금처럼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고-중고등학교-대학교, 마치 정규코스 밟듯 당연히 다니는 곳도 아니었다. 그래도 유치원 다니는 아이가 더 많은 시절이긴 했다.
우리 집이 좀 못살았던 이유로 그리고 아빠의 지상 최대 목표가 집 없는 설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이유로 나는 유치원에 못 다녔다.
오빠도 유치원에 못 다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오빠가 학교를 가게 된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오빠 학교 운동회에 따라다니면서 나의 관심은 유치원에서 학교로 바뀌었다. 학교는 유치원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었다. 어마어마하게 높은 건물에 넓디넓은 운동장. 열 칸도 넘는 스탠드에 동물농장과 식물원까지 갖춘 그곳은 나에게는 학교가 아니라 공원이고 놀이동산이었다.
-우리 학교가 인근 학교에 비해 더 큰 규모이긴 했지만 당시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학생수가 많아 요즘 학교들에 비해 훨씬 컸다.-
하루는 어찌나 학교에 가고 싶던지 아무 일도 없이 무턱대고 오빠를 따라 학교에 갔다.
조용한 복도에서 까치발하고 창문 너머 언니 오빠들이 뭐 하나 엿보았다.
선생님은 아이들 책을 한 번씩 훑어보면서 분단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언니 오빠들은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그때 내가 뭐라고 생각했는지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뭘 저렇게 열심히 쓰는 거지? 누가 뭐 하라고 했나?'
시간이 흘러 여덟 살이 된 나도 드디어 학교에 간다.
누구였을까? 나에게 그 책가방을 선물해 준 사람이? 그 가방을 사준 것으로 판단되는 유력한 사람은 집 사는 게 지상 최대의 목표인 아빠였다.
빨간색 바탕에 공주 그림이 있는 당시 최고 유행하던 스타일의 가방과 신발주머니 세트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둠 속에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애너멜 재질의 빨간 공주 가방
나는 모로 누워 반짝이는 가방을 한참 보다가 슬쩍 다들 자는지 돌아본다.
잠시 동안 규칙적인 숨소리를 확인한 후에 조용히 일어나 아주 조심조심 가방을 맨다.
'다녀오겠습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학교 가는 연습을 한다. 입만 뻥긋하며 연습을 한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계속한다.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그리고 또 조심조심 가방을 벗고 후다닥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 빨간 공주 가방은 어떻게 되었을까? 기억이 없다.
우리는 이사 갈 때마다 점점 더 좋은 집으로 갔고 어느 날 아빠는 집을 샀다. 그 후 쭉 평탄하게 살아온 나는 결혼하고 지금까지 꽤 여유 있게 산다.
이젠 빨간 공주 가방이든 빨간 명품가방이든 마음대로 살 수 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어려움 따위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잘 먹고 잘 살았다. 같은 결말이라면 진부해도 행복했을 텐데.
빨간 가방에 웃음 짓던 어린 소녀는 행복했을까?
아니. 행복하지 않았다. 빨간 가방 매고 학교 다녔는데 이 슬픔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린 시절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많은 것들에 대한 갈망은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워서 빨간 공주 가방으로도 해결하지 못하고 아직 슬픔으로 남아 있다.
노란 병아리옷 입고 엄마 따라 유치원이라는 곳에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기억
아이들이 부르고 있는 노래 제목을 결국 알아내지 못하고 좌절된 호기심
유치원 가는 친구들 뒷모습 끔뻑끔뻑 바라만 보았던 어린아이의 침묵
너무 일찍 집안 사정을 알아버린 어린아이의 성숙함.
무엇이든 때가 있는 법이다. 태권도 다닐 때, 유치원 다닐 때, 학교 다닐 때
어른들에게 집 사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이듯, 남들 다 있는 집 한 칸 없는 설움으로 평생 한탄하며 살 듯.
아이들도 남들 다 다니는 유치원, 태권도 다니지 못하면 평생 알 수 없는 슬픔에 시달린다.
게다가 아이들은 표현을 잘 못한다. 목소리도 작다.
그래서 아이들의 소망은 작겠거니 생각하면 안 된다.
아이들의 소망은 때로 아이들이 감당하기에 너무 버겁고 뜨거워서 그 작은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 갈 수도 있다.
타들어 간지도 모르고 평생 원인 모를 슬픔에 시달릴 수도 있다.
빨간 태권도 가방 들고 신이 난 둘째를 다시 본다.
아빠는 너무 늦은 빨간 공주 가방으로 내 소망을 감당하는데 실패했지만
엄마는 너에게 너무 늦지 않았길, 아이 가슴에 슬픔으로 남기 전에 엄마가 먼저 소망을 채워주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