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by 고도리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는 매우 예민한 후각을 타고났으나 정작 자신의 몸에서는 어떠한 사람의 냄새도 나지 않는 주인공이 자신의 향기를 갖기 위해 아름다운 소녀들을 살인하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 그녀들의 체취를 향수로 만드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적나라한 살인 현장이 들통난 주인공은 끝까지 소녀들의 향기를 숨기고 있다가 마지막 사형장에 그 향기를 뿌리고 나타나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모두 도취시키고 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어릴 때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가 기억난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창문으로 강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현관에 들어선 순간 코 속으로 훅 들어오던 냄새.

나무와 각종 나무 열매를 프레스로 꾹 눌러 진한 에센스만 추출한 듯한 무거운 느낌의 향기가 집안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었다. 이 집의 행복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견고한 요세라고 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강렬했던지 나는 지금도 그 냄새를 구별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이나 현실에서나 향기는 이렇게 강하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향기가 있다.

사람의 향은 짧은 시간에 엘리베이터를 채우거나 온 집안을 지배할 정도로 매우 강하다.

사람의 향기는 그 사람의 생활을 말해 준다.

시골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나는 나뭇잎 타는 냄새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과일 냄새, 생선 냄새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냄새가 다르고

보살핌을 잘 받은 아이들과 아닌 아이들의 냄새가 다르다.

평온하고 안락한 사람에게서는 따뜻한 냄새가 나고 지친 사람에게서는 차가운 냄새가 난다.

사람의 향기는 삶의 무게를 말해 주기도 한다.

피곤에 절어 퇴근하는 회사원들이 지하철에 우르르 타면 여지없이 쇠 냄새가 난다.

평생 환경미화원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한 아버지가 아무리 씻어도 사라지지 않던 쓰레기 냄새가 싫었다고 나중에 철이 들어서야 아버지 삶의 무게를 깨달았다는 아들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아버지가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수당을 받아 그 돈으로 가족들이 뭐라도 더 하게 될수록 아버지의 냄새는 더 심해졌다. 가까이 오지 않으려는 어린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나에게서는 어떤 향기가 날까? 궁금하다.

자주 부대끼는 아이들이 엄마한테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하니 다행이다 싶다.

"어떻게 좋은데?" 궁금해서 물으면 대답은 항상 이렇다.

"음... 뭐 엄마만의 독특한 냄새가 있어"

둘째가 가끔 밤에 졸음에 겨워 내 옷을 뒤집어쓰고 침대에서 뒹글 뒹글 하는 것도 거기서 내 냄새가 나기 때문인가 보다.


어느 날 첫째를 안아 주다가 이런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엄마한테서 밥 냄새난다."

"엄마한테서?"

아이들 저녁시간에 맞춰 밥을 안치고 증기가 배출될 때 부엌 창문을 여는 습관이 그대로 내 옷에 배었나 보다.

갓 지은 밥의 구수한 냄새. 어떤 화려한 향기도 휘감을 강한 생활의 냄새

나도 어느덧 생활의 냄새가 나는 나이가 되었구나.


엄마가 되기 전에는 상상이나 했는가?

소고기 피를 빼고 불고기를 하거나 눈 퍼렇게 뜬 생선을 굽는다.

한 번은 남편 회사에서 보낸 삼계탕 재료를 손질한다고 닭의 껍질을 모두 벗기고 닭다리를 잡고 꽁지 사이로 온갖 재료를 넣어본 적도 있다.

생닭의 느낌이 너무 무서워서 '으으으'하면서 손질을 했는데 '맛있다. 맛있다.' 연발하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했다.

혼자라면 뭐든지 간단하게 먹었을 내가 엄마 노릇도 십 수년 하니 어느덧 밥 냄새가 나는가 보다.



어릴 때 엄마를 안으면 은은한 화장품 냄새 사이로 구수한 밥 냄새와 포근한 털실 냄새가 났었다.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밥을 해 먹여야 하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득문득 밥 냄새가 스치듯 난다.

또 내가 어릴 때는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 목도리나 조끼, 스웨터를 직접 뜨개질했기 때문에 포근한 털실 냄새가 났었다. 지금은 맡기 힘든 냄새이다.

요즘 우리 엄마한테서는 가끔 마늘 냄새가 난다. 한국음식의 특성상 마늘 쓸 일이 많으니 마늘을 까서 그 많은 걸 다 찧고 작은 얼음 트레이에 얼려 둔다. 그중 일부는 나를 위한 것이다.

세상의 변화에 따라 엄마의 냄새도 바뀐다. 자기 역할에 충실할수록 그 냄새는 더 강해진다.


언젠가 나에게서 지금 엄마의 마늘냄새가 나는 때가 올 지도 모르겠다.

가족들이 '아 맛있다. 아 좋다.' 하는 소리를 많이 할수록 나의 생활의 냄새도 더 강해지겠지.

사실 가끔은 서글퍼진다. 향수 모으기가 취미여서 유통기한을 넘긴 향수병도 버리지 않고 장식품으로 진열하곤 했던 나에게서 어느덧 생활의 냄새가 다나니.


그러나 생활의 냄새는 내가 내 시간을 좋은 의미들로 메우고 있다는 증거이다.

타인의 향기를 훔쳐 자신의 냄새로 만들고 싶었던 소설 속 주인공의 가짜 향기보다 긴 시간 공들여 만들어진 내 삶의 향기가 더 아름답고 값지지 않은가?

과거 또는 미래의 어느 날

아이들 친구들이 우리 집에 들어섰을 때 집에서 진한 행복의 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부지런히 일상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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