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고무신

by 고도리작가

10여 년 전 결혼한 해, 시댁에서 처음으로 자던 날

오랜만에 신어본 앞이 막힌 옛날 고무신에 대한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나 코 흘리게 어릴 적에나 겨우 있었을까 싶은 그런 고무신.

기억도 가물가물한 나 어릴 적, 그땐 여성들이 결혼하면 아기 낳고 당연히 집에 들어앉았고 당연한 듯 뽀글이 파마를 하고 이른바'아줌마가' 되었다.

신나게 웃고 떠들다가 아이들 올 때가 되면 고무신 꾸역꾸역 구겨 신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요즘처럼 대형마트에 예쁘고 저렴한 욕실 슬리퍼가 널리고 널린 시절에 아직도 그런 고무신이 있는 게 놀라웠다.

신발 바닥에 물 때 끼어 바닥 청소하기 귀찮거나 지겨워질 때 면 기분전환도 할 겸 바꿀 만도 한데 시골 5일장에서나 볼 수 있는 고무신이라니..

원래 색깔도 분홍색인지 보라색인지 알 수 없게 참 애매한 색을 띠고 있었다.

그렇게 처음 접한 고무신은 아직도 시댁 안방 욕실에 자리하고 있다.

그 오랜 시간 고무신 바닥에 한 번쯤 때가 끼었을 법도 한데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와 시댁에서 처음 하룻밤 자던 날 다른 대안이 없어 어쩔 수 없 그 고무신을 신기는 했으나 막혀서 보이지 않는 그 안쪽에 때라도 끼어있을 것 같아 신경 쓰였다.

그래서 발을 깊이 넣지 않고 이 끄트머리만 살짝 밟고 까치발 하듯 불편하게 신었었다.

지금은 10년 넘게 시댁에 갈 때마다 항상 같은 자리에 있는 그 고무신을 내 신발일 양 편하게 신을 수 있다


매번 손님처럼 왔다가는 새침한 며느리 신으라고 그 고무신을 한 번씩 씻으셨을 어머님.

태생이 그리 부유하지도, 부유한 남자와 결혼하지도 않은 어머님은 평생 물건 하나를 살 때마다 고민하고 또 한 번 사면 10년 되도록 버리질 못하신다.

'써보니 생각과 다르더라' 하던 물건도 차마 버리지 못하고 계속 쓰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져 '쓰다 보니 좋더라'가 될 지경이다



10년 동안 똑같은 욕실 고무신

10년 동안 똑같은 냄비와 나무주걱

10년 동안 한결같은 어머님의 옷

10년 동안 한결같은 어머님의 목소리, 어머님의 성격


10여 년 넘도록 어머님은 도통 나에게 불편한 소리나 소용도 없는 조언을 하시지 않는다.

살면서 무언가 맘에 안 들어도 그냥 조용히 받아들이셨을 지난 70년 세월이 모두 미루어 짐작된다.

남편이 자수성가할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님이 항상 한결같이 믿어 주셨기 때문일 거다


명절이든 생일이든 항상 직전에 손님처럼 와서 불편하게 있다 가는 새침한 며느리 깨끗하게 신으라고 고무신 씻으셨을 어머님.

그 고무신은 그냥 뭐라도 해주고 싶으신 어머님 마음의 징표이다.


결혼하여 처음 맞닥뜨린 시댁 문화에 한 말씀드리고 싶어도 난처해할 남편 생각해서 참곤 했는데 이제는

10년 세월이 지나 시댁에서 다소 무심해진 남편이 얄미워도 한결같으신 어머님 생각하면서 그럭저럭 참는다.

저 무심한 듯 한결같이 같은 자리에 있는 고무신을 그럭저럭 편하게 신게 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