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을 뚫고 온 찹쌀떡

by 고도리작가

2019년 올해 수능 점수가 발표되었다.

매년 나오는 말인데 올해도 수능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느니 불수능이라느니 말들이 많다.

기본적으로 나라의 입시정책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낳은 매년 반복되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입시가 문제가 많다고 했지? 그 봐, 올해도 수능이 이 모양이잖아' 하면서


나는 수능세대이다

사실을 밝히자면 나는 제1회 수능을 치렀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1회 수능은 여름과 겨울 두 번의 시험 중 높은 점수로 학교를 지원할 수 있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8월 한여름, 생전 처음 접하는 긴 지문의 수능 문제를 풀면서 어찌나 졸리던지....

나만 그런 게 아니었는지 당시 우리 반 담당 선생님이 '중요한 시험이니까 정신 차리고 풀도록 하세요'말하던 것도 기억난다. 참 오래된 기억이다.


수능 철이 되면 기성세대들은 본인이 겪었던 대학입시에 대한 추억으로 한바탕 썰을 풀곤 하는데, 나는 학력고사 세대네, 나는 수능세대네, 그럼 내가 더 젊구나 하면서 으스대곤 한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1년 차이로 수능세대가 되어 얼렁뚱땅 조금 더 젊은 세대에 끼었다.



우리 회사는 수능시험 전에 고3 자녀를 둔 직원 명단을 쫙 뿌려 주변 동료들에게 알린다. 그러면 나와 친한 동료에서 찹쌀떡, 초콜릿, 사탕 등을 주며 용기를 주곤 한다.

요즘은 축하나 격려할 일이 생기면 초콜릿 선물하는 게 대세인지 편의점에, 제과점에 각종 찬란한 초콜릿들이 즐비하지만 내가 수능시험을 치르던 시절엔 무조건 찹쌀떡이었다.

가끔은 특별한 선물을 계기로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가 재정립되곤 하는데 기대하던 사람한테서 소식이 없어 서운하기도 하고, 의외의 사람에게서 선물을 받고 놀라기도 한다.

수능시험을 앞두고 부모님과 작은 엄마들, 가까운 분들이 나를 격려해 주었는데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사람으로부터 떡을 받고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수능날 너무 추우면 안 되니까 언제부터인지 11월에 수능을 치르는데 당시엔 두 번째 수능을 12월에 치렀다.

그 해, 수능 하루 전날, 바람이 심하고 굉장히 추웠다. 다음 날 시험을 대비하며 집에서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저녁 9시가 거의 다 되어 밖은 이미 깜깜했고, 진눈깨비까지 날려 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초인종이 울린다. 누구지?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초인종을 누른 사람은 할아버지였다.

낯선 풍경. 항상 집안 따뜻한 상석에 앉아 조용히 식사하시던 분이 눈바람을 뚫고 우리 집 현관 밖에 서 계셨다.

집 찾느라 혼났다. 하시면서. 그랬지. 할아버지는 날씨 좋은 날에도 우리 집에 한번 와 본 적이 없었다.

손에 들려있는 검정 비닐봉지, 그 안에 있던 찹쌀떡.

밖이 너무 추워서 그 속을 뚫고 여기까지 오신 할아버지와 검정 비닐봉지가 한 몸처럼 모락모락 김이 나고 있었다. 내일 시험 차분하게 치르라시며 건네주시던 찹쌀떡

이 불협화음은 뭐지?

낯설다.

그런데 나쁘지 않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찹쌀떡을 주기 위해 진눈깨비를 뚫고 우리 집까지 걸어오셨다.




내가 알던 우리 할아버지는 참 무심한 사람이었다. 주변에 관심도 없고 오직 당신 보신에만 신경 쓰는 사람.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면서도 드센 할머니한테 말 한마디 못했던, 명절에 할머니 목소리가 담장 밖을 넘어가도 한마디 제지 없이 음식이나 하루 종일 드시던 할아버지

나는 할아버지가 조금 한심했다.


한 번은 엄마가 말하기를 할아버지가 다시 태어나면 부인이랑 근사하게 커피 한잔 마시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기에 '에이, 무슨--'하면서 믿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평생 별로 말씀이 없으셨고, 감정표현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분이 십여 명의 손자녀 중 한 명인 나에게 따뜻함을 보여주셨던 딱 한 번의 기억.

할아버지가 그 날 눈바람을 뚫고 들고 오셨던 말랑말랑 찹쌀떡


할아버지는 십수 년 전에 돌아가셨다. 원래 건강하셨던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큰 병 없이 사셨고 다들 호상이라 했다. 어쩌면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 거의 몰랐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우직하지만 따스하고 낭만적인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드센 아내와 평생을 참고 사셨던 할아버지가 겨우 할 수 있는 일이란 잘 웃지도 잘 화내지도 않고 그냥 주는 밥이나 조용히 드시는 일이 다였을 수도 있다.

할아버지는 다음 생에는 참하고 예쁜 아내랑 그윽한 커피 한잔 마시면도 살고 싶다고 하셨단다.

엄마도 그리고 우리 모두 할아버지에 대해 거의 몰랐었을 수도 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참 되어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아직도 가끔 꿈에 나온다.

젊고 건강한 모습으로, 가끔은 웃고 계신다.

내 기억으로 평생 단 한번 십 수명 손자녀 중의 한 명인 나에게 따스함을 보여주셨던 할아버지

그 낯설지만 따스한 느낌이 아직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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