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실내화 빨기

by 고도리작가

명절, 5일간의 연휴

연휴가 길면 아이들 학교 준비물 중에 꼭 무언가 하나씩 빠뜨리게 된다.


5일간의 긴 휴가를 마친 첫 날

다시 출근하고 애들 챙기기 위해 이른 아침 기상했는데

빨래통 위에 버젓이 놓여 있는 둘째 아이 실내화

헉! 안 빨았다.

급하게 맹물로 바득바득 닦는다

혹시나 세제를 사용했다가 너무 푹 젖으면 안 될 거 같아 보이는 부분 위주로 닦는다.


다행히 아직 어린 녀석이라 실내화 험하게 신을 일 없어 비교적 깨끗하다.

게다가 요즘 실내화는 천이 아니고 고무 재질이라 그냥 물티슈로도 잘 닦인다


우선 물로 씻고, 수건으로 닦아 잘 보이지 않는 내부나 찍찍이가 잘 마르도록

다시 한번 드라이어로 말려준다.

한 20분 걸렸나?






참 편한 세상이다.

물티슈로 닦았어도 아무도 모를거다.

요즘은 실내화가 쉽게 더러워지지 않아서 그런지

유치원에서는 실내화를 한달에 한번 꼴로 집으로 보낸다.


이렇게 쉬운 걸 나 어릴 때 어른들은 참 고생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당시에는 국민학교라고 했다.-

교실에 사물함도 없어 우리는 책가방과 실내화주머니를 항상 들고 다녔다. 학교 오며가며 실내화주머니로 친구들 등을 때리며 장난치면 어느새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실내화가 저기 하수구 근처까지 날아가 나뒹굴곤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면 새까매지는 실내화

선생님은 매주 토요일마다 실내화 깨끗이 빨아오라 했고 굳이 그런 말씀이 없어도 당시 때가 잘타는 면으로 된 실내화는 일주일에 한번씩 빨지 않을 수 없게 쉽게 더러워졌다.


나 어릴 때 아빠는 동네에서 금은방을 하셨는데 한동안 가게에 딸린 방에서 생활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토요일에도 학교를 갔으므로 실내화를 빨 시간은 토요일밖에 없었다.

아빠는 매주 토요일 오빠와 내 실내화를 물에 푹 담갔다가 칫솔에 빨래비누를 묻혀 박박 문질러 빨곤 했다.

쉽게 지워지지 않는 두꺼운 면 재질의 운동화는 한번 비누칠로는 택도 없어

두번, 세번 솔로 문지르고 헹구는 과정을 반복해야 겨우 깨끗해졌다.


때를 빼는 것도 힘들지만 그 푹 젖은 실내화를 말리는 것도 녹록지 않았다.

당시 가게 안은 지금 아파트처럼 전체적으로 비슷하게 훈훈하지 않고 여기 저기 온도와 습도가 달랐다.

아빠는 가게에서 가장 햇빛 잘 비치는 곳에 네짝 실내화를 비스듬히 세워 말리셨다.

일요일 저녁쯤에 실내화가 잘 말랐는지 확인하고 어느 구석 조금이라도 축축하다 싶으면 그 땐 비장의 무기를 꺼내신다.

아빠는 시계수리하는 책상근처에 작은 난로들 두고 가죽 시계줄을 자르거나 본드질을 할 때 불을 사용하곤 하셨다.

난로불에 신발이 누렇게 타지 않도록 적당한 높이에서 실내화를 이리저리 뒤집어 가며 말리셨다.

혹시나 발가락 닿는 부분이 덜 말라 양말 구석이 축축해 지지 않도록 한참을 쪼르려 앉아 말리셨다.

완벽하게 말랐다 싶으면 우리들에게 햐얘진 실내화를 보여주며 웃으셨다.


그렇게 깨끗해진 실내화를 월요일에 신으려고 학교 현관에 '툭' 꺼내면 빳빳해진 운동화 소리가 그렇게 경쾌할 수가 없다. '나도 실내화 빨았다'고 외치고 싶은 아이의 뿌듯함이 얼굴에 그대로 보인다.

그 운동화가 일주일 후면 또 흐물흐물 해지는데 그렇게 실내화가 작아져서 못 신을 때까지 매주 반복이다.

아빠는 아이들에게 눈부시게 하얀 실내화를 신겨주기 위해서 매주 이틀의 시간을 투자하셨다.

내가 20분만에 끝낸 그 효과를 내기 위해서...


혹시나 더러운 실내화를 신고 갔다가 아이들에게 엄마없는 애라고 놀림당할까봐

혹시나 더러운 실내화 신고갔다가 엄마 없어서 그런다는 소리 들을까봐

아빠의 실내화 전쟁은 매주 계속되었다.

매주 그렇게 정성을 들여 깨끗해진 실내화를 애들 신발주머니에 다시 넣어줄 때 흐뭇한 표정이 아련하게 보이는 듯하다.






아빠에게 하얀 실내화는

그 와중에도 아빠가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이었고

우리 애들 친구들에게 놀림거리 되지 않을 거라는 위안이었고 기대였다





우리 아빠나이 이제 75세이다.

내 나이 44세

아빠가 우리 실내화 빠득빠득 빨던 때가 지금 내 나이쯤 되었을 거다.

지금 내가 당시 아빠 나이가 되어 내 아이 운동화를 빤다.

세월이 좋아져 그렇게 긴 시간 공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그런 노력을 들여야 한다면 자주 실내화를 사면 된다.

세상 좋아져 아빠가 내 나이에 들였던 정성을 들일 필요는 없다.


나이 들어가면서 아빠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일이 계속 생기는 것 같아 기쁘다.

오늘은 아무 일 없이 아빠한테 전화 한통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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