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의 묘미

by 고도리작가

나는 여차하면 사직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솔직하고 가볍게 조직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공직사회는 일을 할 때 규정과 원칙대로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관련 법령이나 판례들을 자주 검토하게 된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이 법이란 게 참 재밌다.

법에는 상식과 중요한 가치가 녹아있고 판례는 이를 사례로 구체화한다.

나는 법과 판례를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나는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인 심리학과도 일맥상통했다.


내가 복귀해서 처음 한 일을 민원을 처리하는 일이었다. 당시 부서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에 대한 정책을 추진하는 부서였기에 민원도 민감하고 현재 재판이 진행되는 사례에 대해 질문하는 경우가 다수 있었다. 나는 민원인에게 괜한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유사한 판례를 최대한 활용하여 답변서를 작성했다.

오랜만의 복직이라 사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지 확신도 없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으니 일단 지르고 보자는 심정이었다.

직원들이 처음에는 내가 하는 모양을 가만히 보고만 있더니 나중에야 누군가 한마디 해주었다.

'되게 잘한다고. 5년 동안 휴직한 사람 같지 않다고'

평소에 칭찬보다는 질책이 우선인 부서장도 특별히 나쁜 소리는 안 했다.

나는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민원처리를 시작으로 일에 대한 감각을 찾아갔다.



당시 우리 부서는 몇 년 전부터 해결하지 못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위헌 판결 난 법조문을 개정해야 하는데 우리 부처와 법무부의 의견이 달랐다. 각 부처의 상임위를 설득하는 것도 거대한 산이었다. 일은 지지부진했다. 그 사이 부서장도 바뀌었다.

성범죄자들이 아이들 관련 단체에 취업하는 것을 최대 30년까지 제한하려는 우리 부처와 최대 10년 이내로 하려는 법무부와의 이견을 좁히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위헌 판결로 해당 제도가 유명 부실해졌기에 이미 알게 모르게 성범죄자들이 걸러지지 않고 학원 등에 취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연말까지는 법을 개정하고 제도를 재가동해야 한다. 시간이 없었다.

우리 부처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각 부처의 입장과 상임위 의원들 개개인의 판단을 파악해서 전략적으로 밀고 나가야 했다.


우리는 국회일정에 맞춰서 시기별 전략을 짰다.

연말 마지막 임시회에 법률 통과시킨다는 목표로 국민들에게 지금 상황을 알리기 위해 전문가 간담회와 토론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했다. 진행 과정에 다급한 간부들이 토론회 내용을 우리 그림대로 사전에 조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나는 토론회 전날 주말까지 고민하다 결국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토론회 내용이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잘못하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토론회는 성공적이었다. 우리는 언론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국민들로부터 현재 성범죄자들이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 빨리 법을 통과시키라는 여론을 끌어냈고 현재 개정이 시급한 법률 목록에 우리 법을 올렸으며 국회의장이 의원들에게 해당 법률 개정을 빨리 서두르라는 지시를 하기에 이른다.


우리 전략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매년 마지막 날에야 예산안과 시급한 법률들을 통과시키는 우리나라 국회의 전통 아닌 전통에 따라 우리 법은 그 해 12월 31일에 통과한다. 우리는 그렇게 과업을 달성했다.



일의 묘미는 이런데 있다.

중요한 가치를 반영한 정책을 입안하고 관련 부처와 국민들을 설득하고-이 부분이 참 어렵다. 이 단계에서 폐기되는 정책은 부지기수다.-언론과 전문가의 힘을 적절히 활용해서 결국 목표를 달성하는 것.

법률이 개정되던 날. 나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국회에서 자정이 다 되도록 대기하며 의견 조율을 하던 것. 토론회를 개최하기 위해 회사 근처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장소를 알아보던 일. 우리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해외사례와 연구보고서들을 뒤지며 자료를 작성하던 일 등 과연 일이 될까 싶던 시기의 일들이 꿈결처럼 느껴졌다.

일의 묘미는 이런데 있다.



아동청소년들의 성보호 강화는 현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이다.

부서장은 국정과제 수행에 공을 세웠다는 이유를 들어 나를 장관상 후보로 추천했다.

나는 연말 종무식 때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상을 받았다.

직장생활의 묘미란 이런데 있다.

나와 일을 나누고 나를 믿고 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 하는 것.

선량한 사람들과 기분 좋은 관계를 맺으며 함께 성장하는 것.

그리고 가끔은 그 증표로 상도 받는 것.

직장생활의 묘미는 이런데 있다.


복직하고 11개월이 되던 때였다. 역시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

그 무렵 사직하기 위해 2%의 의구심을 떨치기 위해 다시 찾은 직장에서 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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