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7. 2월 복직한다.
복직 하루 전날, 단 1분을 못 잤다. 머리가 깨지도록 아팠다.
5년 만의 복직,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3시간의 출퇴근 시간
'과장님은 어떤 사람일까? 직원들은 친절할까? 왜 복직 하루 전날 오후 늦게야 발령 부서를 알려주었을까?'
온갖 불길한 생각이 든다.
복직 3주 전 인사과에 복직하겠다고 말한 후
보고서 잘 쓰기, 새로워진 한글 연습 등 실무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공부했다. 그리고 필요한 자료들은 미리 메일로 보내 두었다.
간부들마다 선호하는 보고서 양식이 다르니 부서가 바뀌면 가장 먼저 그 부서에서 가장 잘 작성된 보고서를 연구하라는 조언에 따라 업무망에 접속하자마자 먼저 보고서들을 훑어보았다.
복직 날, 다시 찾은 회사의 새로운 부서에 들어섰을 때의 어색함. 하루 종일 눈과 코를 마르게 하는 사무실 특유의 건조함.
결국 돌아왔구나. 싶었고, 이 느낌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과장님도 이 부서에 오신지 얼마 되지 않으셨고 연말 법 개정이 한창이던 때였다.
과장님은 내가 5년 만에 복귀했다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셨는지 내가 회사에 적응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로 배려해 주셨다.
다행히 부서에 내가 아는 직원들이 몇 명 있었다.
나는 작정하고 부서원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뭐든지 칭찬했다. 최대한 직원들과 빨리 친해지는 것이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5년이 지났는데도 어쩜 그렇게 그대로냐며 직원들을 마구마구 칭찬하며 내 편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중 한 명은 부처에서 꽤나 목소리 큰 사람이었기에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렇게 나의 복직은 시작되었다.
적극적으로 일하기, 두려워하지 않기
여차하면 사표 쓰겠단 생각으로 마음 놓고 솔직하기
당시 카드지갑에 조그맣게 써 다니던 문구다
내 맘대로 살겠다는 게 아니라 숨통 터지기 전에 하고 싶은 말, 부당한 상황, 무리한 상황, 예의 없는 사람에게 할 말은 하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오가는 지하철에서 보고 또 보면서 다시 돌아가지만 마음은 자유로워지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것 만으로도 한결 편해졌다.
휴직할 때와 복직한 후의 나를 비교하자면
1. 기싸움에서 주눅 들지 않는다.
광화문에 위치한 정부 서울청사는 20층이라는 높이에서부터 벌써 사람을 주눅 들게 한다. 민원실에서 신분확인을 하고 막상 건물로 들어서도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고 사진 인증으로 신분확인을 하고서야 겨우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
그 과정을 거친다는 것 자체가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과정일 밖에 없다. 물론 나는 직원이니 중간중간 과정이 생략되거나 간략하게 검사받을 수 있다. 사무실에 들어오기까지 이것저것 태클을 거는 보안요원들도 많다. 좀 과하다 싶기도 하다. 그 직원들은 그게 하는 일이라 딱 보면 직원인지, 방문자인지 안다. 기싸움이 시작된다. 그러나 주눅 들 필요 없다. 그 사람들이 거는 태클이 모두 합리적인 것도 아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불합리적인 경우를 접하게 된다.
뭐든지 처음이 중요하다. 한 번만 내가 만만한 사람이 아님을 보여주면 그다음부터는 쉬워진다.
나는 원래 조용하고 소극적인 사람이었다. 웬만하면 나서거나 맞서지 않고 집에 와서야 바보 같은 나 자신을 한탄하는 스타일이었다.
복직 후 나는 몇 번 기싸움에 맞서고 내가 이전과 다른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어차피 덤으로 하는 회사생활, 나는 그렇게 씩씩하게 잘하고 있었다.
2. 적극적으로 일하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기싸움에서 일단 기세를 잡으니 내가 하는 모든 업무에 자신이 붙었다. 모든 것이 처음 하는 일이었지만 관련 규정 등을 모두 찾아보고 이전 문서를 참고해서 최선의 방안을 내놓는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싶으면 부서장에게 보고한다. 최선을 다하고 자신감을 가지면 대부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보고 과정에서 더 좋은 방안이 나오기도 한다.
예전엔 과장님이 혹시 물으면 뭐라고 말하지 걱정되어 보고를 차일피일 미루곤 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나이에 걸맞는 자신감이 생긴 것도 하나의 요인이 아닌가 싶다.
이미 난 휴직 전의 내가 아니었다. 그리고 ‘사표 쓰겠다는 마음으로’는 진심이었다.
어차피 덤으로 하는 직장생활이지 않은가? 계속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다.
-그렇지만 오해는 하지 마라. 마음이 가볍다는 뜻이지 대충 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내 맡은 역할에 충실했고 실적도 있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복직한 해에 장관 표창까지 수상했다.-
오랜 휴직기간, 집에 있으면서도 괜찮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여러 상황을 접하면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것을 온 마음으로 체험했다.
그래서 이것 아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다만, 앞서 말했듯 그 알 수 없는 2%를 확인하고 떨치기 위해 다시 왔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어른 세계를 다시 맛보니 그것 또한 좋았다.
복직하고 좋았던 것은
1. 회사 식당에서 해주는 밥 먹는 것
가벼운 이야기지만 사실이다. 전업주부들이 나이 들어 동창들과 해외여행 가면서 '밥 안 하니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해주는 밥 먹고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라고 말하면 공감의 표시로 다들 깔깔깔깔 웃곤 한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이넌센스 문제의 답은 '남이 해주는 밥'이다. 나 또한 회사 식당에서 먹는 몇 천 원짜리 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밥이고 반찬이고 다 맛있다고 좋아하는 나를 직원들은 신기해했다.
2. 어른들과 어른 주제로 대화 나눌 수 있는 것
아이들과는 할 수 있는 대화거리가 마땅치 않고, 동네에서 만나는 엄마들은 거의 아이들 공부, 학원, 육아이야기가 대화의 전부이다. 사람이 처해있는 사회적 맥락은 대화의 주제를 한정하니 새로운 분야의 주제는 낯간지러워서 못한다. 회사에서는 어른들 이야기를 자주 할 수 있어 좋았다. 어른들과 어른 주제로 대화 나누는 것. 이 얼마나 행복한가?
3. 돈 들어오는 것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기본이다. 일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 남편이 생활비를 주고 있었지만 내 통장으로 들어오는 월급은 또 다른 의미였다. 존재에 무게를 부여하는 것. 사회에서 한 사람이 벌어들이는 돈은 그 존재 가치에 무게를 부여한다. 육아와 가사가 가치롭지만 주부들이 항상 알 수 없는 허탈감에 시달리는 것은 자신의 가치에 무게가 부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이 모여 공통주제인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달래는 거다.
휴직 동안 봉급표도 매년 조금씩 따박따박 올라 세후 월급의 백만 원 단위가 달려져 있었다.
나는 이 기간 동안 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말라. 꼭 공무원일 필요는 없다. 뭐라도 일을 하면 된다.
그렇게 또 부지런히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