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37년 나를 둘러싸 켜켜이 두껍게 쌓인 알껍질을 깨기 위해 둥 둥 망치질을 한 날.
처음으로 37년 살아온 나의 삶을 바꾸기 위한 행동을 시도한 날.
남들 다들 부러워하는 공무원이고 사무실이 광화문 한 복판에 있어 진짜 '커리어우먼' 같다고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지만 평양감사도 싫으면 그뿐
공직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부속품으로 숨죽이며 사육되어온지 8년
답답한 조직에서 탈출해 내 일을 하고 싶다고 몸부림친 나날들
이 두꺼운 껍질을 깨기 위해 방망이질을 시작한 날이다.
긴장과 흥분으로 가슴이 터져 버릴 것 만 같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과장님과 둘만 있을 기회가 생겼을 때
크게 심호흡하고 누군지 모를 신을 향해 '힘을 주세요, 힘을 주세요'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과장님, 중요하게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저.... 기..... 그........ 일을.. 그만두려고요"
드디어 말했다. 드디어
눈 동그래지시며
"뭐? 공무원을? 왜 무슨 일 있어?"
그때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눈물, 과장님은 무슨 일이 있는지 얘기를 해보라는데 도저히 말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다.
왜 그렇게 순식간에 펑펑 눈물이 쏟아졌을까?
드디어 말했다. 드디어
드디어 내가 나에 대한 의심을 떨쳐냈다. 홀가분함. 안도감.
그동안 차마 말은 못 하였지만 너무너무 답답하고 힘들었고
이제부터라도 다시 시작하겠다는 굳은 결심.
말하는 중간중간 불쑥불쑥 드는 불안함. 후회감.
뭐 이런저런 복잡한 심정들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동료도 아니고 과장님께 사직을 거론하는 것은 어느 정도 공개를 의미하는 것인데,
이 말을 꺼내기까지 머리가 깨질 정도로 고민을 했다.
매일 새벽 통근버스에서 사직을 선언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아무리 생생하게 상상해도 실제 밖으로 뱉어버리고 후회하면 어쩌지? 후회하면?
말 꺼내놓고 후회되면 없던 일로 해달랄 수도 있다. 힘들다고 투정 부린 꼴이 되었으니 나는 가벼운 사람이 되겠지.
직장인중에 힘들어 못 해 먹겠다고 사표 쓰겠다고 하는 사람들, 굉장히 많다.
사표를 무슨 무기처럼 써먹으며 상황을 반전시키는 사람들도 보았다.
직원이 심각하게 사표를 거론하면 화들짝 놀라며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조금만 기다려 봐. 내가 도와줄게.' 이렇게 나오는 경우도 보았다. 내가 그만두겠다는데 왜 남들이 깜짝 놀라며 무언가 해주려 하는 걸까? 공무원들에게는 공직사회가 이 세상의 전부다. 나가면 큰 일 나는 줄 안다. 단 한 번도 공직사회 밖을 나간 적이 없으니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가까운 직원이 이 큰일 날 짓을 하겠다는데 '그래, 그러던지' 하면서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은 없다. 이 나라에서 공직사회는 그런 곳이다. 자발적으로 그만두는 건 상상할 수 없이 좋은 것.
이 좋은 걸 그만하려는 거다.
쿨하게 떠나느냐? 냉혹한 승부사로 남느냐? 갈림길에서 쿨하기 떠나기 위한 첫발을 내딛는데
거기서부터 후회하면 어쩌지? 그런 심정으로 항상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드디어 그렇게 의사표시를 하고 과장님과 한참을 얘기했다.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마라. 휴직하고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인생이 걸린 문제다. 이런 방법은 가장 하수의 방법이다.'
한참 말씀을 듣고 내 자리가 돌아왔다.
그리고는 가만히 내 마음을 살펴본다.
후련함. 가슴속의 무거운 돌을 들어낸 홀가분함. 드디어 시작했다는 희망감.
나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일 텐데 왜 그리 시작도 못했을까? 역시 실행이 답인 것을...
사직을 할지, 휴직할지 아직 결정하진 않았다.
그러나 나는 항상 옳다. 거침없이 나아갈 것이다.
들어오기까지 2년 반걸리고 나가는데 15년 이상이 걸린 공직사회
이제와 그때 글을 다시 읽어보니 당시엔 업무 폭주로 잠시의 짬도 낼 수 없었고 출장을 가서도 예산에 관한 통화를 해야 할 정도로 바쁘고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바쁘긴 남편도 마찬가지여서 우린 시간이 없어서 그만 두지 못한다고 농담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