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음악 활동하겠다고 4학년 2학기를 남기고 자퇴를 한 선배가 있었는데 지금은 유명한 가수가 되었다.
그때 나는 '딱 한 학기 남았는데 아깝게, 음악은 음악이고 졸업은 그냥 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야 이해한다. 그녀에게 졸업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나는 휴직이 길었지만 사직서를 낼 즈음 조만간 승진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들 아깝다고 조금만 더 해 보라고 했지만 그건 나에게 의미 없는 것이었다.
사직하고 싶은 공무원이라면 대부분 그럴 테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치열하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마침내 결론을 내린 후 이 글을 쓴다.
이왕 일하는 거 조금이라도 나라에 보탬이 되고자 공무원이 되었으나 직장인인 공무원이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간부의 입맛에 맞는 보고서의 작성이었고, 그리 차이도 없어 보이는 단어의 수정이었고 정책의 방향 설정만큼이나 오탈자를 중시하는 간부들에게 어떻게든 맞추기였다.
오탈자 한 개 더 잡아내거나 다른 단어로 바꾼다 해도 이 나라가 뭐 그리 달라질 것 같지 않은데 나는 월급 받는 대가로 이렇게 종일 잡혀있는 게 맞는 걸까?
더 심각한 것은 점점 나도 누군가의 자료를 검토할 때 단어의 정비, 문장 나누기, 단락의 순서 바꾸기, 오자 바로잡기를 아주 자연스럽게 하고 있더라는 거다.
인정하기 싫지만 신체의 기능도 조금씩, 하나씩 느려지고 고장 나고 있었다.
가끔 사무실에 하루 종일 앉아 일하다 멍하니 창 밖을 내다보곤 했다.
이렇게 일하다 정년을 채운 날 회색 재가 되어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청년시절엔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았던 꿈에 대해 어느 정도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나서야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치열한 고민 끝에 사표를 제출했다.
나는 2004년 국가직 7급 공무원이 되었고 16년 만에 퇴직했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어렵다는 시험에도 붙어 보았고 나도 나름 공부 쫌 했다는 소리 들을 만큼 공부도 했고, 돈도 벌었고 사람 구실도 했다. 2년 반 공부하고 16년 일했으니 밑지는 장사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늦은 나이에 다시 꿈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아이 적부터 어른들이 '넌 커서 뭐가 되고 싶어?'하고 물어본다.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꿈 찾기 주간'을 갖고 중고생은 '진로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거의 20년 이상 고민해 온 꿈을 정작 실행해야 하는 대학생이 되면 어느덧 꿈은 사라진다.
그땐 돈벌이 즉, '취업'이 '꿈'의 자리를 차지한다. 꿈은 멀리 있다. 당장의 밥벌이가 급하다. 20년 동안 그 꿈이라는 것도 수차례 바뀌고 사실은 내 꿈이 뭔지도 모르겠다.
취직을 하면 어느덧 연봉 인상과 승진이 꿈의 자리를 차지한다.
평생 찾기는 했는데 계속 자기 자리를 못 잡는 이 꿈이란 놈은 대체 무엇일까?
나에게 꿈이란 놈은 반 평생이 지나서야 겨우 모습을 드러냈다.
나에게 꿈이란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고 못 자도 졸리지 않고 바쁜 길에도 불러 세워 끄적이게 하는 것이다. 끝도 없이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고 시간을 빠르게 돌리는 마법도 부린다. 내면을 자부심과 행복으로 꽉 채우고 나의 표정과 인상을 좌우한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그 과정이 즐겁고 생활의 힘이 된다. 나에게 꿈이란 그런 것이다.
퇴직할 때 과 직원들이 Rolling paper에 아쉬움과 애정이 담긴 짧은 문장들을 남겼다.
그중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아쉽기도 하지만 늦은 나이에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떠나는 것이 부러울 뿐입니다'
사람들은 평생 꿈을 찾는다. 그러나 항상 다급한 일처리와 말일이면 빠져나가는 카드값에 꿈은 평생 자리를 찾지 못한다. 나는 운이 좋았다. 나는 내 꿈의 자리를 찾았다.
나는 아침마다 같은 장소에서 글을 쓴다.
글은 뭐 이런 날이 있나 싶을 정도록 잘 써지는 날도 있고, 뭐 이런 날도 있지 싶게 안 써지는 날도 있다.
구독자수 증가는 한 달 내내 지지부진하기도 했고 하루 종일 파죽지세로 증가하기도 했다.
무언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산발적으로 이미지들만 떠오르고 맥락을 잡지 못하다가 다음날 절묘한 연결점을 찾아 씨실과 날실로 엮어 흡족한 문장을 쓰기도 한다.
글을 완성할 때마다 행복하다. 그 힘으로 매일 그렇게 한다.
내가 퇴직할 무렵, 공무원으로 38년을 근무하고 명예퇴직한 직원이 있었다.
많은 공무원들이 그렇게 산다. 그런데 그게 뭐 중요하냐? 다 지 생긴 대로 사는 거다.
이젠 내 자유의지대로 내가 행복한 것들을 하며 살련다.
그럼 이제부터 평범하디 평범한 내가 그 좋다는 공무원이 되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후, 결국 국가라는 거대한 배경을 '뻥' 걷어차고 다른 길로 들어선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