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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Feb 14. 2020

바느질 예찬

나는 바느질을 좋아한다.

바느질이라고 취미 삼아하는 프랑스 자수같이 우아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구멍 난 양말 기우는 바느질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바느질을 많이 하느냐 그것은 아니다.

예전 침모라는 직업이 있던 시절, 매일 바느질을 하던 사람은 바느질을 잘할 수는 있을지언정 좋아하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나는 아주 가끔 이벤트처럼 바느질을 한다.

머리가 복잡할 때 단순작업을 하다 보면 머릿속의 소요가 가라앉곤 하는데 바느질도 다르지 않다. 가만히 앉아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양말에 난 구멍을 꿰매는 나를 본 엄마가 "뭐하냐? 그냥 사지. 요즘 누가 양말을 꼬매?"라고 할 정도로 바느질은 먹고살기 힘든 시절에나 했을 작업이다.

먹고살 만하지만 그래도 나는 가끔 바느질을 한다.

가족들 옷은 꿰매지 않는다. 요즘처럼 옷이 넘쳐나 어디 터질 정도로 한 가지 옷만 입는 것도 아니라 본인이 아니면 뭐가 어디에 터진 건지 알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꿰맨 옷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한몫한다.

그래서 가족들은 양말이든 뭐든 터지면 그냥 안 신고 안 입고 방치한다.  결국 터진 옷들은 나중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다른 집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터라 바느질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자연스럽게 바느질 도구를 파는 곳도 많지 않다.

인터넷에 '반짇고리'라고 치면 고가의 고급스러운 물건들을 검색할 수 있다. 그만큼 이제 바느질 도구는 일상품이 아니라 마음먹고 사야 하는 물건이 되었다.

물론 대형마트에 가면 저렴한 물건이 있긴 한데 온갖 과일이나 야채 고르듯 쉽게 발견하고 바로 집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꼭 직원에게 반짇고리 어디 있냐고 물어보고서야 한쪽 구석진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는 한참 전에 다*소에서 실이 열두 가지나 들어있는 반짇고리를 사서 지금까지도 잘 쓰고 있다.-


그럼 어떤 물건들을 바느질할까?

아끼는 물건이라야 가능하다. 바느질은 일상적인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자꾸 손이 가는 양말, 집에 오면 꼭 찾게 되는 티셔츠

처음에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은 없지만 어느덧 길들여져서 너 아니면 안 되겠더라 하는 물건들.


같은 양말을 한 번도 아니고 두어 번 기운 적이 있다.

내 발에 꼭 맞는 양말, 처음엔 조금 조였는지 모르지만 어느덧 살짝 늘어나 적당히 발목을 감싸면서 흘러내리지도 않는 정도의 쪼임. 신장에 문제가 있는지 오래 앉아 있으면 쉽게 다리가 부어서 회사 다닐 때는 늦은 오후쯤 양말 자국이 선명하게 생기곤 했다. 그런데 이 양말이 그런 내 고민을 어느 정도 해결해 주었다.

게다가 색상도 무난하여 아무 옷에나 잘 어울린다.


런데 구멍이 나고야 말았다.

처음 검정 양말에 선명하게 보이는 하얀 점을 보고 "뭐야? 구멍이야?"

나는 양말을 꿰맸다. 그 모습을 목격한 남편과 딸이 "야 엄마 양말 꼬맨다"고 놀렸다. 엄마도 그렇고 가족들도 그렇고. 그 후론 괜히 청승 떤다는 소리 들을까 봐 남들 앞에선 양말을 꿰매지 않는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양말에 또 구멍이 났다.  "안돼~"

나는 아무래도 같은 양말을 여러 개 사야겠다 싶어 그 양말을 샀던 우리 아파트 앞 양말 전문 가게에 가보았다.

가게 주인에게 이렇게 저렇게 생긴 양말이요. 여기서 샀는데 있나요? 물어보니 지금은 안 나온다면서 요즘 유행은 이런 것들이란다. 발목도 적당하고 색깔도 너무 예쁘지 않냐며 다른 양말들을 권하는데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실망하고 돌아섰다. 나는 꼭 그 양말을 사고 싶었다.

그렇게 두어 번 꿰매 신다가 결국은 수명을 다한 양말이 있었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아끼는 양말이었고 양말도 나를 아끼는 듯했다.

그 정도는 되어야 바느질을 한다.


양말보다 조금 더 넓은 범위를 꿰맨 적도 있다. 다름 아닌 이불.

양말은 청승맞 기분이었는데 이불을 꿰맬 때는 왠지 청렴한 선비의 아내가 된 듯한 착각이 든다. 허난설헌 내지는 신사임당이 된 기분?

-물론 그녀들이 글이나 그림에는 능했을지언정 바느질을 즐겨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여간 이름을 날린 여인들처럼 고고하고 초연 해지는 기분이다.

이런 기분이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닌지 이불을 꿰매고 있는 나에게 딸아이가 한 마디 한다.

"와 엄마 멋있다."


사실 이불장을 좀 비워야 하나 싶을 정도로 계절별로 가족별로 이불이 많다.

그래서 터진 이불 따위 하나 버려도 그만인데 또 이상하게 그 이불에 정이 간다.

놀랍게도 신혼 때부터 함께 했던 이불

그런데 더 놀랍게도 그 세월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여전한 분홍빛을 자랑한다.

여러 번 세탁했음에도 솜도 꺼지도 않은 채 처음의 자태를 지니고 있는 그 이불을 버릴 수는 없었다.

신기하게 남편도 그 이불을 즐겨 덮는다. 거의 1m가 넘게 터진 부분을 바느질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불을 꿰매는 작업은 양말과는 또 다르다. 양말은 범위가 좁고 혹시 남이 볼 수도 있으므로 뒤집어서 같은 색깔의 실로 티 나지 않게 꿰맨다.

그런데 이불은 예술적인 부분까지 생각해야 한다. 이불과 어울리는 진한 분홍색 실로 시각적으로 드러나게 꿰맨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늘땀의 간격이 일정해야 한다. 이게 정말 중요하다.

일정한 간격과 일정한 높이로 반복해서 꿰매다 보면 이게 꽤 볼만하다.

돈 번거 같고 21세기에 신사임당 났구나 싶어 괜히 으쓱해진다.


그 이불이 또 말썽이다. 저번에 기웠던 모서리의 반대쪽이 터지기 시작했다. 처음보다는 좁은 범위이다.

남편 물건은 웬만해선 손대지 않는데 오늘은 하는 김에 남편의 터진 베개솜도 꿰매 줘야겠다.

남편이 베개솜을  몇 개를 사서 목이 편안할 때까지 솜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높이를 맞춘 베개솜 한쪽 모서리가 완전히 터졌는데도 남편은 그 솜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사하면서 가족들 베개와 솜까지 모두 새것으로 바꿨는데 남편은 처음 며칠 베더니 목이 불편하다며 다시 옛날 것을 꺼내 베고 잔다. 아무래도 남편에게 그 베개솜은 나에게 그 양말과 같은 존재임이 분명하다.

오늘은 바느질 솜씨 발휘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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