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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Feb 12. 2020

진흙을 뚫고 연꽃이 핀다

하릴없이 시간이 흐른다.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할 순간순간이 이렇게 계속 흐른다.

고용량 스테로이드 요법을 무려 16일간 진행하고도 열흘이 지난 어제, 세 번째로 방문한 병원에서 검사 결과 오른쪽 청력에 전혀 변화가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앞으로 2주간 3회에 걸쳐 고막 주사 시술을 시행하고 결과를 볼 거라고 한다.

고막 주사라니, 고막에 주사를 놓는다구요? 그렇단다.

보이지도 않는 그 쪼그만 고막에 주사라니, 세상에 그런 것도 있구나, 너무너무 무섭고 섬뜩하다.


"아프겠네요"

"아프죠"

나는 눈을 감아 버렸다. 나쁜 의사다. 꼭 그렇게 말해야 하나?





요즘은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기가 힘들다. 어떤 주제에 몰두할 수가 없다. 머리가 아프다.

이건 핑계일까? 몸이 약해지긴 했는지 최근 일회용 마스크 좀 열심히 썼다고 잔뜩 뒤집힌 나의 피부를 보며 문득 드는 생각이다.

글 쓰기란 건강한 사람에게도 체력과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인데  몸의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져 평소보다 조금만 더 움직여도 몸이 알아차릴 만큼 힘든 상황에서 악착같이 한 개의 글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이것 또한 핑계일까?


되든 안되든 작가들은 매일매일 글을 쓰겠지

그 글이 빛을 보든 아니든 상관없이 매일매일 글을 쓸거야.

오늘도 글을 써야지 하는 생각도 없다. 그냥 당연히 글을 쓸 것이다.

밥을 먹은 후에 양치를 하는 것처럼 오늘도 일어나면 당연히 글을 쓸 것이다.

작가들도 글을 쓸 수 없을 때가 있을까? 너무 아플 때는 쓸 수 없을 텐데? 궁금하다.


요즘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다시 보고 있다.

20대 초반 밤새워 읽었던 그 거대한 책을 20년을 훌쩍 넘긴 지금 다시 본다.

뭔가 대단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릴없이 지나가는 이 시간들을 무언가로 꽉 채우고 싶었다. 그러기에 집에 몇 개의 책장을 채우고 있는 소설'토지'만 한 것이 있을까 싶어 다시 시작했다.


역시 대단한 글, 역시 대단한 작가

쓰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을 작가의 전쟁 같은 인생의 산물 아닌가?

저자가 내 나이쯤 유방암 수술을 받고 2주쯤 지나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계속 썼다는 '토지'

이미 연재 중인 소설이었고 출판사에, 독자에, 걸린 것들이 많은 상황이기도 했겠지만 지금도 무서운 병을 무려 50년 전에 수술을 하고도 계속 글을 썼던 사람의 지독함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궁금하다. 부럽기도 하고. 그 독함이 그 악착같음이.


몇 주 글을 마주하지 못한 채 집 안에서 왔다 갔다 불안한 시간만 보내다 어느 정도 어지럼증이 가라앉은 후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숨통이 트이던 그 느낌이 생생하다. 이제 되었다. 이제 되었어하면서

남편 덕에 일찌감치 퇴직하고 팔자 좋게 글이나 쓴다고들 수군댔지만 니들이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글을 쓸 것이다. 비웃든지 말든지 나는 남편 찬스 이용해서 글을 쓸 것이다 라고 스스로 했던 다짐에 추호의 의심도 없었을까?

아니다. 마음속으로도 말할 수 없었지만 나는 일말의 의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불안했다. 내 다짐이 거짓일까 봐. 내가 나에게 속고 있을까 봐. 그래서 아무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되면 글쓰기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돼버릴까 봐.


그런데 내가 지금 겪는 아픔은 아이러니하게도 글에 대한 갈증을 증폭시키고 마음속 밑바닥 몰래 감춘 곳이 사실은 비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진심으로 글을 쓰고 싶었던 내 마음은 사실이었다. 

이제는 마음속 죄책감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팔자 좋게 살려는 속셈인 주제에 글쓰기를 핑계 삼았다는 죄책감 말이다.

상황이 되면 그렇게 사는 것도 괜찮지, 그게 뭐 죄책감씩이나 가질 일이냐 다들 그러고 산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그러게 말이다. 나도 동감이다.

그런데 나는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다. 무언가 이 세상에, 누군가에 기생하려는 마음은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죄악이라는 말이 아니라 죄악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놀고먹고 소비하며 삶을 허비하고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삶은 나에게 죄악이다. 

읽고 쓰고 생각하고 매일매일 성장하며 보이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차곡차곡 채워야지.

그것이 내 가족을 대함에 부끄럽지 않고 늘 당당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너무 거창하지만 어쩌겠나 내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을. 

그러나 이런 나를 굳이 숨기지 않으려고 한다.

저 사람 별로 사람들과 섞이지도 않고 혼자 잘난 것 같다는 시선을 받곤 한다.

그러나 그런 시선도 굳이 피하지 않겠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고 이런 내가 마음에 든다.


나는 글쓰기를 선택했다.

나에게 글쓰기는 진짜 숨을 쉬는 방법이고 삶의 카타르시스로 가는 통로이다.

연꽃씨는 진흙 속에서도 썩지 않고 싹을 띄워 결국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단다. 

진흙 속에 있는 줄도 몰랐던 작은 씨앗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 아픈 나를 위로한다.





고막 주사가 아프다는데 그래 봐야 잠깐이겠지. 이까짓 거 빨리 떨쳐내야겠다.

오늘도 온갖 것들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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