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사직이라는 걸 처음 준비한다.
대학 졸업 직후 대기업 임원실에서 3개월 만에 그만둔 적이 있지만 그건 포함하지 말자.
어떤 고민도 안 했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날 자다가 문득 깼다. 새벽 2시.
갑자기 공포가 훅 밀려왔다.
내가 하려는 게 맞는 걸까?
브런치 작가로 작게 시작해서 평생 작게 가도 괜찮다 생각하지만
이 새벽 브런치 앱을 들어오다가 위클리 매거진에 연재 중인 작가의 프로필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직장생활 11년 차, 워킹맘 2년 차, 2권의 책을 출간했고 위클리 매거진 연재중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어느 것 하나 손에 쥔 것 없이? 이 나이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차근차근 끝까지 할 수 있을까?
후회하지 않고 주변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나 자신만 믿고 갈 수 있을까?
사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불쑥불쑥 치고 들어오던 두려움이 새벽 공기만큼이나 차갑고 선명하게 온 몸을 휘감는다.
이제 사춘기로 들어서려는 딸아이와 잘 지낼 수 있을까?
어쩔 수 없이 아이들과 있는 시간은 많아지고 육아의 절대적인 양도 늘어날 텐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 두려움은 기회 있을 때마다 게릴라 전술을 펼치곤 했는데 그 날 따라 집중포화를 퍼붓는다.
나는 사직서를 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두려움과 사투를 벌이게 된다.
내가 긴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결국 사직이라는 결론에 이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두려울 때면 내가 사직하려는 이유를 찬찬히 정리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하나. 시간이 지나면 나도 과장도 되고, 잘하면 국장도 될 거다.
그런데 싫다. 나다움을 잃고 몸도 마음도 조직에 최적화되는 것이 싫다.
둘. 글 쓰는 것이 좋다. 작은 의미를 발견하여 글로 구체화하고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 좋다.
삶은 그리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평생 크고 작은 의미들을 잡으면서 살고 싶다.
셋. 점점 나이가 들면서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일과 가사 육아, 모두 다 잘할 자신이 없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 나는 선택을 해야 한다.
넷. 이제 누가 시키는 일 따위는 그만하고 싶다.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건가?
그렇지만 꼭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는가?
언론에 비치는 극소수의 슈퍼맘처럼 되어야 하는 건가?
이 사회가 만들어낸 허상이다.
전통적인 엄마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그대로 둔 채 일과 가정의 양립을 강조하면서도 양립이 가능한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이 시대의 워킹맘들은 너무 지친다.
나는 모두 잘할 수없다. 선택을 해야 한다.
결론은 항상 같다.
그런데도 불쑥불쑥 두렵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을까?
사람은 살면서 내가 한 결정이 최선이었는지 끝내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동안 나에 대해 최선을 다해 관찰하고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살면서 중요한 결정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그 대학을 간 것
그 사람과 결혼한 것
공무원이 된 것
다른 부처로 전입한 것
어느 것도 후회한 적이 없다
나는 항상 내 결정이 따라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두렵다.
사람의 한계이고 살아있다는 증거겠지.
힘을 내자. 새로운 길을 가자.
거침없이 나아가자.
새벽동이 트도록 결심을 거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