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내가 설계한다는 것

by 고도리작가

공무원의 정년은 60세이다.

최근 정부는 공무원의 정년을 65세로 늘리는 장기과제 검토에 들어갔다.

모든 제도 변화에는 찬반 의견이 있기 마련인데 정년 연장같이 전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막강 파워 제도는 찬반이 팽팽할 게 분명하다. 다만 지금은 검토하는 수준이라 뉴스가 시끄럽지 않은 것 같다.


공무원의 정년, 공무원의 연금, 공무원의 인원

공무원 개인의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들이다.

그러나 국가 입장에서 공무원 정책은 나라의 경제사정과 사회의 상황 변화를 고려하여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책 분야이다. 왜냐면 공무원들의 저항이 비교적 적으니까.

공무원 정년연장은 필수적으로 우리 사회의 정년연장으로 이어진다.

공무원들은 불만이 있어도 국민들 시선이나 조직 내 상황을 고려하여 불만을 토로할 수 없다.

"내 밥그릇 가지고 왜 니들이 난리냐?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자존심 상하지만 공무원들은 오늘도 묵묵히 사무실에 앉아 보고서를 작성한다.


공무원들이 정년 연장을 반길까?

반반일 거다.

반은 늙어서도 더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속으로 웃고

반은 이 짓을 5년을 더 하라는 거냐며 속으로 울고 있다.

평생 20-30년 공직에만 있던 사람들은 바깥세상이 조금 겁난다.

공무원일 때는 국가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다. 사기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구조이다. 게다가 공무원들은 평생 사무실에 앉아 보고서만 썼다. 다른 경험이 별로 없다.

그래서 공무원이 퇴임 후 편의점 하다 퇴직금 모두 날렸다 같은 뉴스를 심심찮게 듣게 되는 거다.

정년을 채운다고 해도 연금법 개정으로 연금수령 전 몇 년간 아무 소득이 없는 기간이 발생한다. 또한 늘어난 수명으로 퇴직 후에도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설상가상 자녀들 나이를 따져보니 그 시기에 돈 엄청 들어가게 생겼다.

그래서 바깥세상은 잘 모르지만 두 번째 직업을 고민해야 한다. 많은 공무원들이 너무 늦기 전에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정년연장이라니 60세에 그나마 뭘 좀 해볼까 했는데 65세라, 정말 무언가 할 수 있긴 하는 걸까?

국가는 공무원들에게 물어보지 않는다.

정치인, 교수, 연구원에게 물어본다. "공무원들 정년을 연장하면 어떨까요?"

진짜 자존심 상한다. 나한테 묻지도 않고 내 문제를 논의하다니...

국가는 가만히 있으란다. 이렇게 좋은 복지제도를 누리고 있으면서 무슨 그런 소리까지 하느냐. 그냥 가만히 있으란다.


국가는 공무원의 정년만 정하는 게 아니다. 인생 전반의 중요한 스케줄은 조직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공무원들은 승진할수록 조직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고참사무관 고참서기관, 과장, 국장들은 회사가 모든 일의 중심에 있다.

과장 이상의 간부급은 대체로 아이들이 대학생 이상의 성인이니 회사에 마지막 열정을 다할 수도 있겠다.

나이 들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운신의 폭은 좁아지기 마련이다.

그동안 받아먹은 게 많은수록 먹튀 할 생각은 못한다.

그러나 한창 일해야 하는 사무관들은 자녀의 학업과 바쁜 회사일 사이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곤 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회사가 우선시 될 수밖에 없다.

비단 이런 현상은 공무원뿐 아니라 모든 조직인들이 겪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회사원들은 여차하면 사직하고 다시 관련 회사에 취업할 수 있지만 공무원은 퇴사하면 완전히 끝이다. 다른 부처의 공무원이 될 수 없다.


이런 현상이 아빠 공무원보다는 엄마 공무원에게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거다. - 공무원뿐 아니라 워킹맘들은 모두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가사와 양육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이 강한 사회이다.

여성의 사회참여와 꿈을 강조하면서도 여전히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운 나라에서 일하는 엄마는 괴롭다. 아이에게 미안하다. 아이가 잘못되면 모두 내 탓인 거 같다.


휴직기간 동안 나는 첫째 아이의 한글부터 영어 수학을 모두 가르쳤다. 아주 섬세하게 아이를 관찰하며 적시적소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여 아이를 호기심을 자극했고 효과도 보았다.

한동안 그 생활에 푹 몰입해서 굉장히 열정적으로 살았다. 그래서 그 기분을 안다.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하는 것이 나를 얼마나 건강하게 하는지. 게다가 아이와 관련된 일이면 그 열정은 배가된다.

지금은 아이가 많이 커서 예전처럼 할 수는 없다. 지금은 아이에게 좀 더 많은 시간을 주고 지켜볼 때이다.

회사에 매여 있으면 아이들의 성장단계에 따른 부모만의 과업을 달성하기 어렵다.

어차피 대한민국에서 살아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입시는 워킹맘의 영역이 아닌 것 같다.

워킹맘 중에도 카페인을 달고 살며 울트라 왕킹 짱 슈퍼우먼처럼 사는 엄마들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럴 자신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타임테이블은

아이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 좀 더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같은 해에 상급학교에 진학해서 타임테이블을 짜기 쉬워졌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진학할 때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좀 더 시간을 할애하고

어느 정도 적응하면 점점 내 일을 늘려간다.

아이들이 클수록 내 일을 더 많이, 좀 더 다양하게 확대한다.

회사와 상관없이 우리 가족과 나를 중심으로 삶의 타임테이블을 짜는 것.

나의 간절한 바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라는 거대한 옷을 벗지 않을 수 없다.

내 인생을 내가 설계하는 것. 사직을 결심한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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