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직을 준비하면서도 끝까지 내 맡은 바 최선을 다하고 절차와 규정을 지키고 너무 바쁘지 않은 적절한 타이밍에 사직을 공론화하여 퇴사 후에 사실과 다른 이상한 소문이 남지 않도록 신경 썼다.
그래서 괜찮은 뒷모습을 남기고 싶었다.
특히 부서장 때문에 힘들어서, 누구 때문에 힘들어서 그만둔다더라. 같은 소문을 가장 경계했다.
사실도 아니거니와 타인 때문에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건 있을 수 없지.
복도에서 직원들 서넛이 모여 복도 통신을 유통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한다.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할 수도 없거니와 소문은 여러 사람의 입을 거치는 과정에서 말하는 사람이 하고 싶은 말, 믿고 싶은 말을 조금씩 덧붙이기 때문에 점점 사실과 다른 이야기로 가공된다.
내가 떠난 후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에 대한 잘못된 소문이 나지 않도록 나는 최대한 신중을 기했다.
이직이 빈번한 회사라면 또 누가 두었나 보다 하겠지만 아무도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곳을 떠난다면 어떤 말이라도 나오기 마련이다.
'그 사람, 왜 그만뒀대?'
'그냥 조직생활 그만하고 싶었대.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나 봐'
이 정도로 기억하길 바랐다. 사실이기도 하고 그 정도가 담백하니까.
나는 내 나름대로 정해놓은 절차들을 진행하며 슬슬 사직을 향한 시동을 걸었다.
그 첫 번째 관문, 같은 팀 동료에게 말하기
무엇이든지 처음은 어렵고 그때까지만 해도 사직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에 나는 본격적으로 사직의 포문을 열기 전에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사직 계획을 말해보고 혹시나 미묘하게라도 후회하는 마음이 드는지 체크해 보고 싶었다. 사직을 무슨 한번 말해보나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만큼 후회할까 봐 수년 동안 입도 벙긋 못했기 때문에 부서장에게 말하기 앞서 중간지대를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2018년 7월 어느 날. 나는 우리 팀 동료에게 사직할 거라고 말했다. 그러니 현재 추진하고 있는 일을 빨리 마무리하자고, 사람이 바뀔 수 있으니 미리 대비하라고 했다. 놀라는 눈치였다.
통상 공무원은 공직사회에서 발을 뺀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승진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대다수라 팀 동료가 사직을 생각한다는 것을 알면 부서장이 알아채기 전에 더 강하게 뜯어말리기도 한다.
물론 국가직이냐, 지방직이냐, 어느 부처냐에 따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이 곳은 자유롭고 쿨한 곳이다.
팀 동료는 담담하게 반응했다. 내 입장에서는 다행이었다.
사직을 공식화하는 첫 번째 단계를 시작했다. 팀 동료에게 말하는 것
나는 잠시 내 심리 변화를 가늠하는 시간을 갖는다.
혹시나 뱉어 놓고 후회하거나 마음이 돌아 서 지 않는지, 혹은 '이제 시작이다' 더 굳건해지는지
결론은? 다행히 내 마음은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팀 동료에게 말했던 문장 하나하나, 눈빛 하나하나, 쉼표 하나하나가 모두 내가 하려는 게 맞다고 더 강한 확신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 후 한 열흘 정도 지난 후에 나는 드디어 부서장 면담을 신청한다.
이 과정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기, 인생선배에게 상의하는 형식으로 말하기'였다.
그래서 부서장이 누구도 쉽게 내뱉지 못하는 '사직하겠다'는 선언을 직원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래서 배신감 들지 않게 하는 것. 당황하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내가 빠졌을 때의 경우를 미리 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주변 시선이 많아 괜한 말 나올 수 있어 시간이나 장소도 신중하게 선택하고 뜬금없이 면담을 신청하는 것도 이상하니까 자연스러운 계기가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
'과장님, 오전에 아이 병원에 들렀는데 좀 시간이 빠듯해서요
오전에 1시간만 외출 쓸게요.
그리고요. 중요하게 상의드릴 얘기가 있는데
아무 때나 좋으니 잠깐 시간 좀 내주셨으면 해요'
2011. 8월 당시 과장님에게 그만두고 싶다고 처음 사직을 폭로한 날, 폭풍 눈물 흘리며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격한 심정이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담담했고, 후련했다.
그 사이 긴 시간을 들여 치열하게 고민하고 좀 더 많이 경험해서 그랬을까?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자신감이 생겼을까?
과장님은 한 시간이 넘도록 정성 들여 상담을 해 주셨다.
무조건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가 아니고
주변의 여러 가지 사연들, 사례들, 본인의 경험들
그러니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판단하라고...
과장님은 나를 힘들어서 사직해야겠다고 말하던 많은 직원들 중 하나쯤으로 여기시는 것 같았다.
나중 일이지만 실제 사직일이 결정되고 부서가 바뀐 과장님에게 말씀드리니 사실이냐며 깜짝 놀라게 된다.
그렇게 또 한 번, 내 마음을 살피는 시간을 갖는다.
잘했어했다가, 조금 기다릴걸 했다가
역시 조직은 나한테 아니야 했다가 그래도 역시 공직만 한 게 없는데 했다가
일하면서 글을 쓸까 했다가 아니야 지금 아니면 안 돼 했다.
수년을 그렇게 고민하면서
한걸음, 한 걸음 마음은 사직을 향해 가고 있었다.
달라진 게 뭐냐고? 달라진 건 없었다.
난 사직의 첫 관문을 통과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