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을 대신할 무기

by 고도리작가

고등학생 때 나는 문학반이었다.

문학반 담당 선생님은 사회적 문제의식이 투철한 젊은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의 영향이었겠지? 나는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글을 자주 썼다. 분명히 어설펐을 거다.


기억이 나는 장면이 있다.

시화전을 위해 반원들이 모두 작품을 낸 직후였다.

문학반 친구 H가 이런 얘기를 한다.

"선생님이 네 글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알아?"

"몰라, 뭐라 하셨는데?" 나는 눈을 반짝였다.

"... 말 안 해줄래. 자존심 상해서"

친구를 졸라봤지만 결국 나는 듣지 못했다.

선생님이 내 글을 칭찬하셨구나. 평생 그렇게 믿고 있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위한 무기로 글쓰기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무 막연했다.

누군가 그래 그 정도면 괜찮다. 한마디 해주었으면 싶었다.

매일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내가 가능성이 있는지도 알고 싶었다.

무슨 신춘문예에 출품해서 데뷔할 자신은 없었다.

그러다 잘 안되면 작가의 꿈이 완전히 날아갈 것도 같았다.

요즘은 세상이 참 다양해졌다. 작가가 될 수 있는 경로는 많다.

나는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기로 한다.


첫 번째 도전. 그때는 뭐랄까?...... 일단 한번 던져 보는 기분

브런치 작가를 뽑는 브런치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알아보자 하는 정도

일주일 내내 늦은 시간에 부지런히 글을 썼다.

몇 번의 퇴고를 거친 후 글을 읽어보니 우습게도 꽤 괜찮은 것 같다.

작가 지원을 하고 3일 후에 메일을 확인했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뭐 큰 기대를 안 했으니까.


두 번째 도전은 좀 더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첫 번째 도전 때 심사 대상인 글을 다시 읽어보니 뭔가 좀 밋밋하고 뒷심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주제를 좀 더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야 할 것 같은 느낌.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다시 심사를 의뢰했다.


두 번째 도전도 실패


이때의 기분은 뭐랄까? 좀 실망했다. 나름 실패의 원인 분석 후 정성 들여 작성해서 제출했는데 또 실패라니

작가 소개가 너무 건방졌나? 뽑아줄 때까지 계속 신청할 거라는 말을 괜히 했다.

기대를 많이 한만큼 하루에도 세 번, 네 번 결과를 확인하고 몸이 아주 안달이 났다.


약간 힘이 빠지기도 했고, 그 후에 제주도로 일주일간 휴가를 가기도 했고

첫 번째, 두 번째 브런치 작가 도전을 일주일 간격으로 한 것에 비하면 세 번째 도전 때는 좀 늘어져 있었다.

그 사이에 좀 마음이 비워진 것 같기도 하다.


두 번째 실패 후 2주 후에 세 번째 도전을 했다.

좀 더 마음을 비우고 남에게 날 어떻게 보이겠다는 마음 없이 그냥 썼고, 그냥 냈다.

그러니까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기 위해서 글을 쓰고 신청서를 낸 것이 아니라

그냥 글을 썼고, 브런치 신청서를 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수시로 확인하지 않았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세 번째 도전 후 합격 메시지를 보았을 때의 느낌은 담담함.

자격도 없는 나에게 이런 영광을 주다니 하는 격한 고마움 같은 것은 없었다.

살다 보면 이런 경험을 꽤 자주 경험한다.

죽어라 할 때는 안되더니, 에라 모르겠다. 언젠가 되겠지 포기하고 있을 때쯤 날아오는 희소식

이제 본격적으로 하는 거야

브런치를 발판으로 부지런히 쓰다 보면 내가 원하는 인생으로 이어질 거다.

그러니 너무 기고만장하지도 말고 너무 실망하지도 말고 그냥 하는 거다. 그냥.

그렇게 다소 화력은 떨어지지만 무기를 확보하고 화력 증강을 위한 훈련을 계속한다.

그렇게 시작된 거다. 나의 사직을 향한 도발이.



아침부터 핸드폰 알림이 온다.

'드리잉 드리잉'

누군가 내 브런치를 구독한다는 알림음이다.

작은 울림 하나에 배시시 미소가 지어진다.


이럴 때면 앞으로 인생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행복해진다.

주변 공기가 아련한 핑크빛으로 물드는 느낌이랄까?

분주한 월요일 아침, 아직도 매인 몸이지만 출근하면서도 부자가 된 느낌

크게 구애받지 않을 현재 직장과 앞으로 매진할 새로운 일과 그리고 내 글을 공유하는 사람들


최인철 교수의 '굿 라이프'에는

행복에 관한 유명한 가설들을 실험을 통하여 증명하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중 하나,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자신이 그 일을 잘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건 아니건 자신이 잘하는지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또 다른 가설 하나

현재의 나와 되어야 하는 나와의 거리가 먼 사람보다

현재의 나와 되고자 하는 나와의 거리가 가까운 사람이 더 행복하다.


두 가지를 통합하자면

잘하건 못하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내가 되고자 하는 나에 다가갈수록 행복하다.


지난달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 도전하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히 다르다.

조직인보다는 자유인,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알아가고 있었고

내가 꿈꾸는 새로운 인생에 한 발 더 다가갔다.

브런치 작가 도전은 삶의 터닝 포인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가늘지만 또렷한 한줄기 빛을 느낀다.


이런 날, 자신감 충만한 날이 계속 이어지다가

그게 일상이 되어 자신감과 무관하게 그냥 그 일을 하다 하다

어느 날 삶이 바뀌는 날을 위해 나는 오늘도 뒤돌아 보지 않기로 한다.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는 어른스러운 조언이 들려올 때 늘 잘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도 없다는 주문을 외워야 한다. -최인철 '굿 라이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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