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굳이 시험을 보고 공무원이 되었을까?

by 고도리작가

나는 2004년 2월 국가직 7급 공무원에 임용되어 구시군 단위의 소속기관에 발령받는다.

그곳은 국장(서기관) 밑에 적게는 6명, 많아야 10명의 공무원이 있는 구멍가게 같은 곳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무원은 모두 나같이 높은 경쟁률을 뚫고 부모님한테 효도한 사람들인 줄 알았다. 말하자면 일반직 공무원인데 내 상식으로 공무원은 모두 같은 공무원이니 일반직이라고 표현할 필요도 없었다.


당시 국가공무원법 제2조(공무원의 구분)는 일반직 공무원을 '기술, 연구 또는 행정 일반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며, 직군, 직렬별로 분류되는 공무원'이라고 정의했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여기 속한다.

기능직 공무원은 '기능적인 업무를 담당하며 그 기능별로 분류되는 공무원'이라고 되어 있었다.

지금은 공무원들이 모두 컴퓨터를 잘 다루지만 공직사회에 컴퓨터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사무보조 기능직 공무원들이 일반직 공무원들을 대신하여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했다.

당시는 공무원이 지금처럼 인기 있는 직업이 아니어서 알음알음 과장, 국장 입김으로 기능직 공무원이 되곤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다 지금은 일반직 공무원들이 다들 수준급의 컴퓨터 활용능력을 보이니 사무보조 기능직 공무원들의 정체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첫 임용기관에도 사무 보조 기능직 공무원이 한 명 있었다. 그런데 참 이 사람 정체를 모르겠다.

나이도 연차도 나보다 많지만 직급은 나보다 한참 낮은데 신기하게 어느 누구의 눈치도 안 본다. 입도 걸고 하고 싶은 말 다 한다. 나를 '신삥이'라고 부르던 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7급 시험에 임용되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사회초년생에게 직급은 아주아주 중요했다. 9급도 아니고 7급 시험 본다고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아니 직급을 떠나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신삥이'라니.

직급이 높다고 직급 낮은 사람을, 나이가 많다고 나이 적은 사람을 막 대해서는 안된다.

어느 누구라도 사람을 그렇게 예의 없이 대해서는 안된다.


반대로 국장님을 비롯하여 나이 지긋한 직원들이 모두 신경 쓰는 눈치다.

점심 메뉴도 기능직 사무원 맘대로 정하고, 회식도 장소도 마음대로 정한다. 직원들이 간식 한번 먹으려 해도 눈치를 본다. 기능직은 승진과도 무관하니 직원들 눈치 볼 필요도 없다. 일 못한다고 성격 더럽다고 승진에서 누락될 일도 없다.

사무실에서 그 사람은 왕이었다.

눈치도 안 보고, 평가도 안 받고, 승진도 신경 안 쓰고, 국장님도 신경 안 썼다.

하고 싶은 말도 다 하고, 하기 싫은 건 안 했다. 그 사람은 왕이었다.

신삥이인 나는 그 사람 밥이었다. 그렇게 시달리다가 나는 2년 후 그 기관의 최고 상급기관(중앙)으로 발령받는다.

중앙에도 사무보조 기능직들이 있으나 아무래도 상급기관의 공무원들은 좀 더 조심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기능직 공무원들이 눈치 보지 않는 것은 어디나 비슷하다.


-이 시점에서 성격 좋고 성실한 기능직 공무원들도 많다는 얘기를 해야겠다. 나는 일반직보다 더 인간적이고 노련한 기능직 공무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마도 기능직 공무원들이 그렇게 자유분방한 이유는 그들 개인의 자질이 아닌 공무원 조직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왜 공무원이 되겠다고 2년 반 동안 그 고생을 했을까? 나도 기능직 공무원 될걸

평가받지 않으니까 눈치도 안 보고, 호봉은 마찬가지로 매년 따박따박 오른다.

나는 대체 왜 그 고생을 했을까? 순진하게 저런 게 있는 것도 모르고. 힘들 때면 이런 생각을 했다.

몇 년 동안 꼬지리하게 학원 다니면서 쌩 고생하고 겨우겨우 합격했을 대부분의 일반직 공무원들 중에 기능직 공무원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일반직 공무원들 중에 퇴근시간 되면 아무 신경도 안 쓰고 '먼저 가겠습니다.' 당당하게 퇴근하는 그들의 뒷모습을 한 번쯤 빤히 바라보지 않은 직원이 있을까? 다들 말은 안 하지만 나 같은 생각들을 했겠지?

그러다가도 '아냐 그렇게 사는 게 뭐가 좋아? 당당하게 들어온 게 좋은 거야'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곤 했다.


그러다 2012년 말 국가공무원법 개정으로 사무보조 기능직 공무원에 대한 정의규정이 삭제된다. 이들은 있기는 한데 법적으로는 확인할 수는 없는 애매한 존재가 된다. 행전안전부에서는 한시적으로 사무보조 기능직 공무원들의 일반직으로의 전환을 추진했다. 일정 시험을 통과하면 일반직으로 전환되었다. 일반직이 되면 그들도 똑같이 승진할 수 있다. 기능직이라는 자격지심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기능직 공무원들은 자기 자리에 대해 다들 불안해했다. 많은 기능직 공무원들이 시험을 보았다.

그러나 막상 시험을 통과하여 일반직이 된 기능직 공무원들에게는 '전환직'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뭐 특별히 좋아지는 것도 없는데 갑자기 업무가 많아졌다고 사기당한 것처럼 말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말하자면 행안부는 법률 개정을 통하여 기능직 공무원들의 공포를 제대로 활용한 셈이다.

그럼 전환하지 않은 기능직 공무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시적 전환제도는 만료되었고 아직까지 소수 기능직 공무원들이 남아있다.

그들은 여전히 존재감을 발휘하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산다. 말하자면 최종 승리자인 셈이다.


공직에 입문할 때 모두 똑같은 경로를 통하지도 않고 모두 같은 잣대로 평가받지도 않고, 그 업무의 총량과 난이도에 맞는 정당한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니다.

가끔 너무 힘들 때, 너무 퇴근하고 싶을 때 누군가가 원망스러울 때 괜히 멀쩡한 기능직 공무원들을 탓한다.

누구 잘못이겠는가? 먼저 알고 들어온 사람이 장땡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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