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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nnistory Jan 31. 2017

페더러, 백핸드, 멘탈게임 - part 2

빅4 아니 빅3의 출현 

1. 2003년즈음 완성된 페더러의 백핸드와 멘탈게임 

페더러의 원핸드 탑스핀 백핸드는 사실 굉장히 강하고 각도도 날카롭다. 즉, 약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강하다. 그래도 페더러의 백핸드가 약점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것만이 그나마 페더러를 상대로 공략할 지점이라 그렇다. 페더러의 백핸드는 포핸드나 발리 위너를 위한 셋업 도구로 발전했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그림은 상대가 지속적으로 페더러의 백핸드를 공략하다 조금이라도 샷이 코트 가운데에 가까이 오면 페더러의 유려한 풋워크를 통한 런어라운드 포핸드 위너로 - 주로 인사이드 아웃 방향- 페더러는 상대에게 우위를 점했다. 멘탈게임 상으로는 페더러가 백핸드로 수비를 하는 것도 정신적으로 피로하지만, 페더러의 백핸드 쪽으로 지속적으로 공략해야하는 상대 선수도 정신적으로 피로하다. 그렇지만 이런 정신적 피로를 잘 견뎌내는 선수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잘 생각해보면 페더러가 런어라운드 포핸드를 한 순간 페더러의 한쪽 코트는 완전히 비게된다. 즉 그 포핸드 위너샷을 (가능하면 다운더 라인으로) 받아 넘길 수만 있다면 페더러를 이길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그러했지만, 이런 정신력을 지녔고, 그 인사이드아웃 포핸드를 다운더라인으로 받아칠 수 있는 선수는 인간인 이상 존재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페더러의 올코트 어택을 다 받아칠 수 있는 그런 선수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것을 실현한 선수가 나타났다. 그것도 생각보다 빨리. 


2. 2004년 마이애미 마스터즈 - 18살 왼손 천재 나달과의 첫만남  

2004년 호주 오픈 이후 페더러는 무적으로 보였다.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로딕, 휴잇 등은 전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아가시는 전성기라고 하기에는 늙었고 느려졌다. 페더러가 질주할것만 같았던 그때, 세계 30위권으로 진입한 무서운 10대 소년 라파엘 나달이 있었다. 32강전에서 페더러에게 세트스코어 2:0으로 이겨버린 나달은 겨우 18살이었다. 무서운 집념과 속도로 모든 샷을 쫓아다녔고, 페더러의 백핸드쪽으로 공을 무한히 보내기에 유리한 왼손잡이. 더불어 페더러의 인사이드아웃 포핸드를 다운더라인으로 연결할 수 있는 스피드와 왼손 포핸드를 지녔다. 물론 당시 사람들은 페더러가 어쩌다 한경기 졌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나달은 2004년 흙시즌을 부상으로 건너뛰어서 잊혀졌다. 2004년 롤랑가로스에서 우승을 못한 페더러는 그렇게 프랑스 오픈 우승이 어려우리라 이때는 상상도 못했을 것 같다. 


3. 2004년 아테네 올림픽 - 19살 베르디흐와의 첫만남 

페더러는 올림픽에서 당연히 우승할거라 사람들이 생각했다. 그런데 2회전에서 체코의 키큰 10대 소년에게 지고 만다. 엄청난 파워의 포핸드와 백핸드샷을 구사한 그 10대 소년은 베르디흐. 후에 세계 10위안에 자리를 잡게된다. 페더러는 그래도 한번쯤은 올림픽 우승의 기회가 올것이라 생각했겠지만... 자세한 설명은 생략. 


4. 2005년 마이애미 마스터즈 - 다시 만난 왼손 천재 나달 

2005년 페더러는 여전히 세계 1위. 비록 허리가 삐끗하며 사핀에게 호주오픈 우승을 내주긴 했지만, 테니스는 곧 페더러라는 공식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결승까지 승승장구한 페더러에게 작년에 의외의 패배를 안긴 나달이 또 나타났다. 그런데 나달은 2004년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첫 2세트를 따고 3세트에서 타이브뤡까지 가는등 페더러를 거의 3:0으로 이길 뻔했다. 그러나 페더러가 버텨냈고, 나달이 후반에 무너지며 3:2로 페더러가 승리하게 된다. 그러나 이 경기를 통해서 나달은 자신감을 얻게되고, 멘탈은 더욱 강해진다. 


5. 2004년~2007년 - 페더러와 나달 대결에 숨겨진 비밀 

처음 두번은 하드코트에서 만났지만, 이기간동안 페더러와 나달이 붙은 14경기중에 무려 50%에 해당하는 7경기가 흙이었다. 2번의 잔디, 5번의 하드코트. 이 기간동안 나달은 흙코트의 1인자 아니 흙신, 페더러는 인간계의 1인자 였다. 그러나 다른 코트에서는 페더러는 1인자 였으나 나달은 탑8정도로 다른 강자들에게 (예를 들면 로딕, 페르난도 곤잘레스, 날반디안, 다비덴코 등) 지는 경우가 많아 페더러와 만나기가 어려웠다. 이것이 상대 전적이 보여주는 함정이다. 그리고 페더러 팬으로서 안타까운 것은 페더러가 흙에서 나달에게 힘든경기를 자주하면서 나달에 대한 멘붕이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6. 2007년 US오픈 - 체력과 멘탈만이 약점인 조코비치 

흙은 나달이 신이라 어쩔 수 없다해도, 잔디와 하드는 지배했던 페더러. 이때 또 10대의 테니스 천재가 나타났다. US오픈에서 페더러와 결승에서 만난 조코비치. 타이브뤡이란 긴장된 순간 갑자기 실수를 하며 무너지긴 했지만, 페더러를 위협할 수 있는 지속적인 백핸드 공격이 가능했고, 페더러의 인사이드 아웃 포핸드는 백핸드 다운더라인으로 공격이 가능한 선수가 나타난 것이다. 멘탈과 체력 (어쩌면 이 둘은 같은 이야기일 수 도 있다)만 받쳐주면 정말 무서울 것 같은 조코비치가 나타났고, 2008년이 시작되었다. 


7. 2008년 단핵증과 호주오픈 - 조코비치 

페더러는 2008년초 단핵증(?)으로 훈련을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이 여파인지 호주오픈 4강전에서 조코비치에게 패하고 만다. 여전히 하드코트에서는 탑8정도 였던 나달도 쏭가에게 4강에서 패하며, 나달과 페더러의 결승은 이뤄지지 못했다. 조코비치는 페더러를 이긴 기세를 이어가 쏭가도 제압하며 첫 메이저 타이틀을 거머쥔다. 그런데 아무리 단핵증으로 고생을 했다 하더라도 페더러에게 아니 페더러 팬에게 가슴아픈 여름이 올줄은 몰랐다. 그리고 나달이 그리 위대한 선수가 될줄도 몰랐다. 


8. 2008년 롤랑가로스 - 흙신의 무자비함 

여전히 페더러는 인간계의 1위였다. 단핵증으로 고생을 했건 어쨌건 간에. 나달은 4강전에서 호주오픈 우승으로 기세가 좋았던 조코비치를 아주 손쉽게 압도했다. 반면 가엘 몽피스를 상대로 페더러는 꽤나 고생을 하고 결승에 올라왔다. 그러나 100% 컨디션의 페더러도 나달을 상대로 흙에서는 이기기가 쉽지 않은데, 제 컨디션이 아닌 페더러는 나달에게 식은 죽이었다. 흙신은 무자비하게 페더러를 후들겨 팼다. 6-0으로 마지막 세트를 끝냈고, 페더러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졌다. 경기후 인터뷰에서 "3주후 윔블던이 열려서 다행이다. 그때 난 우승할 수 있다."라고까지 말하며 겨우 정신줄을 잡고 있었다. 


9. 2008년 윔블던 - The Greatest match 

이 경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위대한 경기로 아직도 손꼽히고 있다. 훗날 페더러는 이날 허무하게 첫 2세트를 내준것이 3주전 프랑스 오픈 결승의 영향이 있었다고 밝혔다. 첫 2세트를 내주고 정신줄을 잡고 2:2까지 만든후 5세트. 페더러가 분명 이길 수 있는 상황이 있었지만 AD 코트에서 나달의 슬라이스 서브는 언제나 꽂혔고 페더러는 브뤡을 할 수 없었다. (13번의 브뤡포인트에서 1번만 성공). 해가 질때까지 이어졌던 경기는 결국 나달이 승리를 했고 페더러는 간신히 울음을 참았다. 

https://en.wikipedia.org/wiki/2008_Wimbledon_Championships_%E2%80%93_Men's_singles_final

어찌보면 나달은 무섭도록 치밀했다. 페더러와는 페더러에게 이길 경기만(흙코트)을 하면서 치밀하게 멘탈게임의 우위를 몇년간 준비해 온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정도니. 2008년에는 아예 흙에서만 페더러를 3번을 꺽으며 상대 전적을 더욱 벌렸고, 롤랑가로스에서 KO펀치를 날렸다. 회복이 덜된 페더러는 자신이 유리한 윔블던에서마저 나달에게 지며 나달에게는 완전히 멘탈싸움에서 밀리게 된다. 


To be continued. (조코는 어떻게 3인자를 벗어났는가. 나달이 벌이는 자신과의 싸움. 페더러의 황제자리 컴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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