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요즘 회식, 그리고 술

술의 효능에 대하여

by 이프로

회사에서 회식은 동료들끼리 모여서 밥이라도 먹으며,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섭섭한, 속상했던 감정들을 서로 나누며 마음의 앙금을 해소하는 자리다. 그리고 회식의 클리셰는 삼겹살과 소주다. 직장인의 회식이란 그런 애환과 진심이 묻어나는 자리다. 그런데 어느 순간 회식을 부담스러워하는 후배들을 본다. 우리도 그들이 어렵다.


누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나? 라떼는 회식도 직장생활의 일부였고, 회식자리에서 얻는 인간애도 있었는데, 이젠 왜 그렇게 어려운 자리가 되었나? 아무래도 세대차이가 큰 듯하다. 부장님 주도적 회식에 1차 소주부터 3차 노래방까지 밤늦은 시간까지 으샤 으샤 하는 게 회식이었던 시기를 살아온, 내가 느끼기에 말이다. 지금은 119인데. 1가지 술로 1차만 9시까지. 이 얼마나 민주적 회식이란 말인가? 서로의 경험의 차이가 이렇게나 간격이 크다. 그냥 편하게, 가끔 하는 그런 자리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기회를 만든다 생각하고 부담스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내 맘 같지 않다.


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술. 불교 수행자가 지켜야 할 오계 중 다섯 번째가 '술을 먹고 취하지 말라'이다. 불교 수업을 듣다 난감해진 것이, 어떻게 취하려 먹는 술을 먹고 취하지 말라는 것인지. 수행자의 길을 멀고도 험하구나 싶었다.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하는 나에게 큰 고행 길이 열렸다.


술은 정말 묘한 녀석이다. 녀석은 나의 자기 검열 센서를 먹통으로 만들어, 기분 좋아지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나의 기분과 텐션을 한 없이 끌어올리고, 어느 순간 그날의 기억들을 지워버리기도 하는 신묘한 능력을 발휘한다. 무한 즐거움으로 끝없이 주절거리고, 부끄러움도 앗아가 술만 취하면 하지도 못하는 영어를 지껄인다. 부끄러워 말하지 못한 영어를 꼭, 술만 먹으면 말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술 먹고 취하지 말라고 하신 거다. 이렇게 남들에게 주정 부리는 것도 타인을 괴롭히는 행동이니까. 회식을 함께한 분들은 말씀으로는 항상 즐거웠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하시지만, 여러 번 겪으시면 얼마나 괴로우시겠는가?


며칠 전에도 숙취로 아침 출근길이 무거워진 날 보며, 더 이상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벌써 술과 동고동락한지도 20년, 이제 건강도 그렇고 마음수행도 그렇고 헤어질 때가 되었다 싶었다. 술 덕분에 내 머릿속 단어들이 빛의 속도로 사라지는 경험도 하고 있다.


한편, 회식을 영화나 공연을 보는 문화생활 혹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깔끔하게 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이미 올드한 탓인지 난 삼겹살에 소주가 좋다. 진정 회사 생활의 애환을 나누며, 각자의 인생의 고락을 들어주며, 서로를 좀 더 이해하게 되는 그런 인간적인 자리 말이다. 나와 함께 근무하는 대리들과 종종 치맥을 먹는다. 대리님들의 솔직한 이야기,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그 자리가 정말 좋다.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도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자리가 말이다. 우리에겐 그런 자리가 필요하다. 사무실에서 업무적으로만 이야기하면 결코 그들의 진심과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너무 올드한 에티튜드?


혹자가 회사에서 만난 사람과 꼭 그런 서로의 이해가 필요하냐, 과한 간섭 아니냐 묻는 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회사는 제2의 가정이라고. 회사가 노동의 대가를 받는 사회적 장소일 뿐이라면, 얼마나 생활이 재미없고 팍팍하겠는가? 회사는 사회적 동물인 내가 또 다른 인간과의 관계를 맺으며, 그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장소이다. 그 관계 속에서 만난 나의 친구 같은 동료들, 나보다 더 좋은 사람들, 배울 점 많은 훌륭한 사람들. 회사가 아니었다면 만날 수 없었을 그 멋진 사람들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이 자리에 있음을 감사히 생각한다. 물론 꼰대들과는 싫다. 그건 나도 싫다.


세상사는 거 별거 없다는 생각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많이 든다. 이렇게 누군가와 만나고, 이야기하고, 알아가고, 헤어지고 그런 것이 삶이 아닐까? 회사에서 하는 회식도 그런 과정 중의 하나이고, 그 자리의 자기 검열 센서를 망가뜨리는 술이 아주 좋은 윤활유 역할을 하고.


요즈음 코로나 덕분에 회식자리가 정말 많이 줄었다. 그래서 아쉽게라도 만원에 4캔 맥주를 냉장고에 채워두고 주말에 오는 남편과 꼭 함께 마신다. 혈중에 적정 알코올 농도가 유지된다는 것은 나의 흥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리고 남편과 함께 마시는 술은 항상 즐겁고 행복하다.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공감이 샘솟으며, 속이 시원해진다. 그저 맥주를 부딪혀 마시기만 했을 뿐인데 말이다.


이런 나의 생각에 절대 공감할 수 없는 비주류 세력과 회식 반대론자들이 있을 수 있지만, 어떤 일이든 다 마음먹기에 달린 것. 오계를 지키는 수행을 하느라 금주중인 나,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나만의 개똥철학을 이야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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