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회 이슈인 갑질. 갑질에 대한 사례는 뉴스를 통해 종종 들려온다. 회사 내에선 갑질이 더 만연하다. 승진과 고과, 업무, 인사, 조직생활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인 것 마냥, 어쩔 수 없다. 그런 상명하복의 조직문화 속에서 살아오면서 요즘처럼 격세지감을 느끼는 것은 처음이다.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그리고 바뀌고 있다.
몇 해 전, 갑질로 유명한 부장과 1년을 함께한 적이 있었다. 신입시절 이후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다시 울었던 게 그때였다. 직장 생활 15년 만에. 그 부장은 본인 기분에 따라 업무처리를 했다. 인격모독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직원 생각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물론 업무지시 외 대화도 없었다. 본인의 안위와 업무실적, 그리고 부장의 권위 외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부장이 갑질로 잘렸다. 그 소식을 듣고 한참을 멍하니 움직일 수 없었다. 미안하게도 세상에 그런 부장들은 너무나 많았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냥 사회가 원래부터 그러려니 하며 살아왔다. 견뎌왔다. 그런 삶이 직장 생활이라 여겼었다.
그런데 그 부장이 갑질로 회사에서 잘렸다. 모든 일이 인과응보라지만, 이렇게 빨리? 좀 당황스러웠다. 세상이 바뀌고 있지만, 정말 빨리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부장은 90년대 분당, 일산 1기 신도시 세대다. 우리나라가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며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루기 시작할 때, 200만 호 주택 공급계획에 빛나는 건설업 호황기의 세대. 취업도 잘 되고, 사업물량 증가에 따라 승진도 잘 되던 시절의 세대. 그 시절은 건설업의 황금기였다. 그런 시절엔 권한도 많고, 무서울 것도 없고, 그저 행복한 시절이다. 그런 시간을 살아온 부장은 변함이 없었고, 그때는 ‘성격이 좀 그래’라고 넘어갔던 일들이 지금은 갑질이 되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꼰대 부장, 갑질 부장 만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고, 눈치 보면서 참았다. 내년에는 다른 부서로 옮겨야지, 그렇게 도망갈 궁리를 하면서. 그게 아래 직원의 미덕이었다. 아니 어쩔 수가 없었다. 부장이 퇴근 안 하면, 퇴근하실 때까지 기다렸다. 회식도 부장 입맛에 따라 메뉴가 바뀌었다. 부장이 시키면 시킨 대로 해야 했다. 부장이 뭐라 하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참았다. 오랜 시간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세상이 바뀌었다. 갑자기 이상한 사람이 된 기분이다. 아니, 나이 든 사람이 된 것 같다.
지금은 어느 회사든 상담전화를 하면 ‘전화받는 직원이 우리의 가족 일 수도 있으나, 폭언을 삼가 해 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법에 의해 처벌될 수 있다는 음성 안내가 나온다. 갑질은 어느 한 조직의 문제가 아닌, 초고속 성장을 한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 깔린 어둠이었다. 돈이나 지위를 가졌다고 사람을 도구처럼 함부로 다루는 갑질! 우리 회사도 이런 사회 변화에 빨리 대응하고, 조직문화를 바꾸고 있다. 당연하지만, 대단하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대처하는 것이. 그 사회변화 속도와 방향에 맞추어 빠르게 적응해야겠다. 이 흐름에 적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 음과 양이 있듯, 갑질의 이면도 있다. 진짜 갑질인지 갑질의 탈을 쓴 사건인지 조금은 헷갈리는 일들 말이다. 세대차이로 인한 오해, 소통방식의 변화, 조직문화의 수용성 등 요즘 세대와 구 세대 간의 민감함은 또 다루기 어려운 문제이다. 가끔 안타까운 일들을 접하면, 이게 진짜 갑질인 건지 오해는 아닌지, 낀 세대 이 차장이 보기엔 가치관이 혼란스러운 순간이 있다. 이를 합리화할 수는 없지만, 조금은 포용적으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모두가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본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