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100세 시대, 퇴직 준비
파이어족이 되고 싶다
안면도 바다가 보이는 펜션으로 가족여행을 갔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파도, 시원한 바람과 맑은 하늘이 너무도 좋은 날이었다. 한참을 남편과 함께 파도 멍을 때렸다. 거칠게 부서지는 파도 위로 끊임없이 밀려드는 바다를 보며, 달의 조력과 지구의 중력, 쓰나미의 원리를 생각했던 나, 이 순간에도 자연의 위대함을 느낀다.
그날 그림 같은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음악을 틀고, 숯불의 고기를 구워 저녁을 먹었다. 해가 지고 어둑해진 시간까지. 고기를 구우며 즐거운 아이들, 와인 한 잔에 얼큰해진 남편, 라면을 끓이는 나, 이보다 행복한 순간이 있을까? 싶었다. 우리 가족 여기 함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뿐이었다. 인생 별거 있냐며, 이렇게 맛있는 거 먹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기도 하면서, 우리 가족 건강하면 충분하지 않냐고 주절거렸다. 자주 말고 이렇게 가끔. 그래야 더 소중하니까.
그날 이후 파이어족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휘몰아쳤다. 안면도에 조그만 땅을 사 집을 짓고, 텃밭을 일구며 살고 싶었다. 남편과 나, 둘 뿐이라면 소소하게 일을 하면서 충분히 살만할 듯싶다. 남편과 내가 20년 동안 직장 생활하면서 모아 온 지금 자산이면, 둘이서 욕심부리지 않고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씀씀이가 크지도 않고, 이렇게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산다면 그것만으로 족하다 싶은 생각이었다. 얼마나 좋을까? 한참을 남편과 이야기하지만, 결론은 열심히 회사 다녀야지~다. 아이들 대학 졸업할 때까지는. 우리 둘 먹고 살 만하지만 아이들 학비까지는 무리다. 언제까지 살지,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덜컥 겁부터 났다. 두려운 100세 시대다.
요즘 남편과 나의 최대 관심사는 노후준비다. 남편은 곧 50세, 민간기업에서는 퇴직을 준비할 나이다. 나와 남편이 회사 입사할 때만 해도 대기업 에스컬레이터를 잘 올라타기만 하면 노후까지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했다. 퇴직을 하고 나서 오래 살지 않았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퇴직해도 연금이 안 나온다. 퇴직 후엔 인생 절반이 남을 정도로 수명이 길어졌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골골 100년 시대다. 건강도 그렇지만, 제2의 인생으로 뭘 준비해야 하나? 내가 입사할 때만 해도 세상이 이렇게 바뀔 거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고 있어 조금은 불안하다.
남편은 요즘 다시 자격증 공부를 하는 중이다. 이미 자격증이 있지만, 요즘 트렌드에 맞는, 수요가 있는 자격증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준비 중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10년 후 내가 퇴직할 즈음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지, 지금 내가 가진 자격증들이 과연 의미가 있을 것인지, 우려스럽다. 세상이 바뀌어 가는 속도가 빛의 속도로 빨라지고 있다. 가끔 이 속도를 느낄 때면 현기증이 일어난다. 그래도 일단 해본다. 손 놓고 퇴직을 기다리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게 낫다 싶어서. 남편은 빠르면 5년 길어야 7년 남은 직장생활이다.
그러나 혼란스럽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데, 오지도 않는 미래를 위해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어서 말이다. 어느 날은 파이어족도 되고 싶다가, 오지도 않은 미래를 준비하기도 한다. 지금 여기 깨어있고 싶다가도, 저녁 회식 자리에 흥에 겨워 정신을 놓기도 한다. 모든 일에 정답은 없겠지만, 이 방황하는 삶이 인생이겠지 싶어 한번 웃어본다. 행복한 것도, 좋은 것도, 불안한 것도, 두려운 것도 모두 나의 감정이고, 나의 모습임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웃으며 살자 싶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그 변화를 지켜보면서 때때로, 하고 싶은 데로, 마음 가는 데로 살아가야겠다. 그게 인생이겠지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