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외로운 자리
feat, 낭만 닥터 김 사부
온 가족 열광하는 드라마가 있었다. 낭만 닥터 김 사부. 금권과 물질에 매몰되어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시대. 사람 냄새가 그리운 우리들에게 너무도 인간적인 특히 사명감과 희생정신을 갖춘 낭만 닥터라는 캐릭터가 더욱 가슴에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가슴을 울리는 대사가 있었다.
"닥터 부용주라는 이름을 버리니까, 성공을 버리니까 너무 자유롭게 되었다"
드라마에서 닥터 부용주라는 인물은 트리블 보드를 취득한 전설의 외과의다. (트리블 보드 : 일반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천재의사였고 성공을 위해 달려왔던, 그는 드라마 속 도원장이라는 인물이 파 놓은 함정에 빠져 대리 수술이라는 불명예가 씌워지고, 주류 의사계를 떠나게 된다. 이름과 성공을 버리고, 시골의사이지만 진짜 행복과 자유의 의미를 알게 된, 그의 멘트는 큰 울림을 주었다. 인간이란 존재가 욕망을 버릴 수 있을까? 이름과 성공을 다 버리고 살 수 있을까?
만약 직장에서의 성공을 승진이란 단어와 동일하다 가정한다면, 회사원은 누구나 승진을 하고 싶어 할 것이다. 성공도 성공이지만, 승진은 직장 내에서 존재의 인정을 의미하는 거니까. 나도 승진은 하고 싶다. 그런데 우리 회사의 특성상 승진을 할수록 매년 자리 이동을 해야 한다. 전국에 브랜치가 있다 보니,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가족이냐? 회사냐? 요즘 같은 워라벨 시대에 이런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물론 승진을 시켜줄 분들은 관심도 없지만, 김칫국 먼저 마시며 고민해본다.
가끔 높으신 자리에 계신 처장님들을 보면, 참 외로운 자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높으신 분들의 삶엔 당신이 없고, 회사에서 주어진 역할만이 가득하다. 며칠 전 우리 본부를 방문한 사장님의 피곤에 찌든 얼굴과 직원들을 향한 영혼 없는 격려의 말에 더욱 느껴졌다. 조직의 수장으로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당신의 삶과 생각은 어디에 두고 있으신지. 안쓰러웠다. 또, 높으신 분들 주변엔 여러 목적을 가진 사람들만 있다. 진심인 마음으로 진솔한 말을 나눌 사람이 몇이나 될까? 주말도 예외가 아니다.
인사이동이 잦아 가족과 함께 하기도 어렵다. 늘 혼자서 움직이신다. 숙소를 들어가면 혼자다. 가족들과 관계도 걱정이 된다. 그 높은 자리에서 해야 되는 정치들은 항상 몸을 상하게 하는 술을 동반한다. 거짓 미소를 지어야 하고, 진정성 있는 말보다 달콤한 말들이 내뱉어져야 한다. 진실된 자아가 없다. 그런 자리는 그래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당신 위에 또 다른 갑은 항상 존재한다. 한 줄로 요약하면, 그 자리엔 당신이 없다. 당신의 껍데기만 있는 거다. 나라면 외로울 것 같다.
도대체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방향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단 말인가? 몇 해 전만 해도 그냥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지금은 좀 커버린 느낌이다. 지금 무엇을 하면서 사는지,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 고민한다. 내 삶에 대해 고민한다. 가족을 돌아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한다. 사치스러운 고민일까? 평범한 삶을 살지만, 나란 존재를 기억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좋겠다. 작고 소소한 성공에 성취감을 느낀다면 행복할 것 같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래도 끝은 살짝궁 아름답고 싶은 인간이다. 자꾸 묻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승진을 하려고 애쓰면서 성공을 쫓아봐야 하는 걸까? 아니면 지금에 만족하며, 존재의 진정성을 보존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들을 하며 주말을 보내다가도, 월요일 출근해서 자리에 앉으면 바로 리셋된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자. 으샤 으샤.
그래도 한 번쯤 뒤돌아 보자. 잘 살고 있는지. 외로운 자리보다 비좁은 아랫자리가 어쩜 행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