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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Jul 17. 2022

여름이잖아요.

# 아들의 느낌적인 느낌

#1. 여름이잖아요.


아침 등굣길.

"아들~ 뭐 재밌는 이야기 없어?"

"별일 없는데요. 근데 요새 피부에 자꾸 뭐가 나요. 특히 팔에, 이것 좀 보세요."

"여름이잖아. 습해서 그런가 보네. 여름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오~ 여름이잖아요. 바로 그거죠. 엄마 혹시 '여름이잖아요' 아세요?"

"그게 뭔데?"

"말 끝에 '여름이잖아요'를 붙이면, 무슨 말이든 느낌이 있어 보여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오늘 학교 가기 싫어요. 여름이잖아요' 이런 느낌! 실은 이게 유명한 밈이에요. 무슨 말이든 뒤에 '여름이잖아요'를 붙이시면 돼요."

"어... 엄마는 진짜 여름이어서 피부에 트러블 생긴다고 말한 건데. ㅋㅋ"


아이들의 세계는 정말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여름이잖아요가 왜 느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놀이인가? 나는 저 나이 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생각들을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엄마와 이런 이야기를 늘 소통하지는 않았다는 것. 녀석 덕분에 요즘 트렌드를 종종 알게 된다. 중고등학생 아이가 있다면, 말 끝에 한 번씩 붙여보시길. '여름이잖아.' 트렌디한 부모가 될 수 있다.



#2. 호랑이로 태어날 거예요


아들은 늘 핸드폰으로 음악을 튼다. 플레이 리스트 취향이 나와 찰떡궁합이다. 즐겨 듣는 팝송도 '도대체 어디서 들은 거야?' 싶은 비주류 곡들이다. 목소리와 단조로운 리듬이 주된 음악이다. 나름 취향이 고상하다며, 엄마랑 음악 취향이 같다고 추켜 세워준다. 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아들이지만.


요즘 기타리스트 적재의 '별 보러 가자'과 잔나비의 '가을밤에 든 생각'을 자주 듣는다. 적재의 노래를 켠 순간, 아들 녀석에게 했다.

"아들~ 엄마가 다시 태어난다면, 피아니스트나 뮤지션이 되고 싶어."

"왜요?"

"응. 엄마는 음악을 들으면 이루지 못한, 뭔가 가슴 한편에 그리움이 남아 있어. 아마도 음악과 엄마 사이에 뭔가 있는 거 같아."

"저는 호랑이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뭐어~하하하하하."

"산 하나를 호령하는 호랑이요. 적어도 5m 이상되는."

"아들! 지금 넌 세상을 호령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데, 충분한 시간이 있어! 굳이 산 하나여야 해?"

"엄마. 전 그 정도가 좋아요. 산 하나를 앞마당처럼 쓰는 호랑이요. 너무 넓으면 부담돼요."


도대체 호랑이에 언제부터 빠진 건지 모르겠다. 몇 주전 호랑이 사주는 여자랑 결혼한대서 농담으로 들었었는데. 녀석에게 물었다.

"아들~ 근데 호랑이가 왜 좋아?"

"멋있잖아요. 와우~"

"아들아, 사자도 있잖아. 사자는 어때?"

"사자는 갈기 빼면 고양이죠. 호랑이는 오우~ 멋있죠! 느낌 있잖아요."

"언제부터 호랑이를 좋아하게 됐어? 호랑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지 않니?"

"음. 고등학교 들어오면서부터요. 중3 때부터 관심이 생기긴 했는데. 호랑이를 접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가 많답니다. 호랑이 관련 웹툰도 있어요"

"뭐어~ 하하."

"근데 엄마 지금 뭐하세요?"

"응, 니 이야기 쓰고 있는데?"

"왠지 그러신 거 같아서 물어봤어요. ㅋㅋ"


호랑이가 되고 싶은 아이. 산 하나만 호령하고 싶은 아이. 복잡한 생각을 하고 싶진 않지만, 녀석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이것도 추억이 되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분명 미소 지을 거라 확신한다.


아들~ 백두대간을 활주 하는 호랑이가 되길 바라!!



#3. 아들의 여름휴가


오후 바쁜 사무실, 아들의 전화다. 오후 5시 언저리. 냄새가 나는데!

"엄마~ 다음 주면 방학이잖아요. 저 방학 때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할 테니까 오늘부터 이번 주 토요일까지 여름휴가 좀 쓰면 안 될까요? 기말 끝나고 집중도 안되는데, 학원가서도 책만 보고 의미 없거든요. 시원하게 쉬고 담주부터 집중해서 열심히 할게요!"

"(잠시 버퍼링) 각서부터 써~"


아들은 늘 쉴 수 있는 시간은 쉬고 난 후, 나머지 시간에 하고 싶은 공부만 하는 아이다.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이다. 공부만 잘한다고, 좋은 학교가 미래를 담보하는 것이 아닌 세상이다. 아이와의 관계, 가족의 온기가 더 중요하다. 특히, 여름휴가도 제대로 다녀올 수 없는 상황에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더 컸다. 허락을 구하는 마음 자체가 고맙고, 착하다 생각했다.


주말 아침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했다.

"벌써 여름휴가 다 끝났네."

"아~ 이럴 거면 월요일까지 쉬겠다고 말씀드릴걸 그랬어요. 지금 말씀드리면 허락 안 해 주실 거잖아요. 생각이 짧았어."

그러다가, 녀석이 문득 한 마디 한다.

"22년도 벌써 절반이 넘었어요. 곧 지나가요.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엄마도 그때 그런 생각 많이 했던 거 같아. 근데 어른이 되면, 스스로 인생을 해결해야 돼. 그 어른이라는 책임감이 훨씬 더 힘들지도 몰라. 돌이켜보면, 니 나이 때가 가장 행복했는데 그땐 그걸 잘 몰랐어."

"저는 빨리 60대 어른이 되고 싶어요. 자식도 키워놓고, 퇴직하고 돈도 좀 있고, 자기 삶을 즐기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녀석이 지금 삶의 무게를 많이 느끼고 있다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딸아이도, 아들 녀석처럼 하지 않는 아이도 모두가 미래에 대한 고민은 깊다. 그게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다. 힘든 시기를 혼자 끙끙거리지 않고, 마음 열어줘 항상 감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아~ 세상에 공짜는 없다!
20대부터 50대를 살아내야 60대가 오는 거야~ 그냥 나이 먹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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