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전공이 같으면 좋은 이유
# 토쟁이가 토쟁이를 만났을 때
나는 토목기술자다. 솔직히 civil engineer라 말하고 싶다. 왠지 근사해 보인다. 남편도 그렇다. 우린 H건설 입사동기였다. 우물 안 개구리였다고나 할까? 세상은 넓고 남자, 여자도 많은데 굳이 얼마 안 되는 동기 중 한 명을 선택했다. 그땐 정말 순수했다. 풋. 결혼 후 남편의 권유로 공기업으로 이직했고, 남편은 여전히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회사를 다니고 있다.
전공이 같은 남편과 살다 보니, 장점이 많더라. 특히, 건설업은 남성 지배적인 산업이다. 남편이 나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고, 나 또한 남편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포인트가 가장 큰 장점이다. 전혀 다른 분야의 배우자를 만났다면, 갈등이 많았을 것 같은데,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좋은 점 1번, 대화거리가 많다.
전공이 같다 보니 대화거리가 많다. 전공에 대한 이야기, 현장에 대한 이야기, 노후준비, 건설산업의 변화, 조직의 뒷담화도 된다. 같은 회사에 있었고, 남편은 우리 회사가 발주한 공사에 참여하기도 해 서로의 조직을 잘 아니까. 시댁이나 친정을 방문하는 도로 위를 달릴 땐, 주변 구조물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각종 구조물의 유지관리에 대해 논의하기도 한다. 터널을 지날 때도 관련 에피소드가 나온다. 특히 공사 중인 현장을 지나면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오류를 지적한다. 지금도 그렇다. 직업병이다.
좋은 점 2번, 서로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시너지 효과가 있다.
회사 입사 후, 기술사에 도전했다. 남편은 현장에 대해 뭘 아느냐며, 나의 기술사 공부를 우습게 생각했다. 그때 2살, 3살 두 아이를 키우던 때였다. 힘들었지만 다행히 기술사에 합격했다. 설마 하던 남편은 당황했다. 그렇게 2008년 첫 시험에 내가, 세 번째 시험에 남편이 시공기술사에 합격해, 부부 기술사가 되었다. 전공이 같으니 그런 자존심이 있을 수밖에 없나 보다. 이런 긍정의 시너지라니.
그 이후, 함께 시작한 토질 기술사는 우여곡절 끝에 나는 성취했고, 남편은 초기에 접었다. 건설업에 있다 보니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없었다. 난 포기하지 않았기에, 10년 만에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또 함께 시작한 세 번째 기술사. 남편은 바로 합격했고, 나는 아직도 수험생 신세다. 하지만 꼭 결과를 얻을 거다.
늘 함께 공부를 하면서, 서로에게 피드백이 되었다. 경쟁 아닌 경쟁으로 서로에게 자극이 되었고, 긍정의 시너지를 일으켰다. 요즘도 남편과 나는 함께 같은 공부를 한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남편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있다. 자신의 공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없다. 같이 공부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 그 동기가 배우자라면, 이보다 편할 수는 없을 거다.
좋은 점 3번, 이해와 배려가 남다르다.
같은 산업에 있다 보니 야근도, 늦은 회식도, 각종 모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늦다고 싸울 일도, 술 먹는다 다툴 일도 없다. 서로 아니까. 때로는 모임도 같이 한다. 서로의 인연이 엮여있다 보니.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둘이 먹는 술이 제일 편하고, 맛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하는 이유도 이해하고, 고생하는 것도 누구보다 더 잘 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면 갈등이 줄어든다.
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마쳤다. 여느 남편 같으면, 투덜거리고 이해하지 못했을 텐데, 남편은 허락해주었다. 그 시간 아이들 저녁을 챙기기도 했고, 논문을 쓰는 나를 독려했고 배려했다. 물론, 투덜거림과 잔소리까지 멈췄다면 좋았겠지만. 그렇기에 현실 남편이지. 더 남편답다.
이제 퇴직 후 함께 할 노후를 의논하는 중이다. 같은 영역의 자격을 갖고 있기에, 서로 도움이 된다. 물론 자격이 결과까지 책임지지 않겠지만, 같은 고민을 할 수 있어 좋다. 함께 일하다 보면 부딪힐 일도 있겠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현명하게 분업을 해야지. 뭐라 해도, 민감한 고민을 함께할 동료이자 친구 같은 동기가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요즘이다. 그 사람이 남편이어서 더 고맙다. 나이 들수록 더 그렇더라.
전공이 같은 우리 부부는 한 곳을 바라보고, 손 잡고 걸어가는 중이다. 친구이자, 동료이자, 전우이자, 배우자로. 추천해주고 싶다. 같은 전공의 배우자를 만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