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을 읽다가 건져낸, 나의 모토와 같은 문장이다.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로마 공동묘지 입구에 쓰인 문구라고 한다. 늘 욕망하며 아등바등 살지만, 죽음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것들 말이다. 그렇게 죽음을 생각하며 산다는 것은 이 순간의 삶에 감사할 수 있는 깨우침을 준다.삶의 끝,죽음 앞에서는 진짜만 남게 된다.
삶의 뒷면이 죽음인데, 우린 앞면만 보고 산다. 영원히 살 것처럼. 돌이켜보니 삶에 대한 글만 썼더라. 죽음을 생각해보는 글도 좋을 텐데. 죽음이란 단어가 주는 불편함을 피하려 한 것일까?
내가 좋아하는 스피치 중에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이 있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 스티브 잡스,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에서.
매일 죽음을 생각한다면, 언젠가는 맞을 거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에서 이야기한 3가지 중 마지막이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물었다고 했다. 오늘이 만약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하려는 일을 할 것인지를.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자신의 선택에 큰 영향을 주었다며, 당부했다. 죽음을 기억하는 건 본인이 잃을 게 있다는 착각을 벗어나게 해 준다고, 이미 우린 잃을 게 없다고,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마음이 시킨 대로 하라고.
멋지더라. 정말 멋진 연설이었다.
늘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편이다. 생과 사가 동전의 앞뒷면이기에, 준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산다. 그 마음을 가지면 사는 것이 자유로워진다. 단, 허무주의가 되면 안 된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는 후회 없이.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주말, 남편과의 대화다.
"여보, 뭐할 거야?"
"응, 공부해야지. 할게 많아~ 이제 한 달도 안 남았어."
"여보, 오늘만 당신의 하루를 내게 양보하면 안 돼? 내일 당장 우리가 어떻게 될지, 어떻게 알아?"
남편의 한마디.
"20년째 그 소리야?"
그렇게 투덜투덜 대면서 마트도 함께 가주고, 설거지도 함께 했다. 그거면 되었다. 먹고사는 게 다 아니던가?
문득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상상해본다. 우선,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 츤데레 남편도 있고, 씩씩한 두 아이도 있다.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못 해서 아쉬운 것도, 해야 할 것도 딱히 없다. 그냥 눈 뜬 하루하루 잘 살고 싶은 것 외에는.
출근길에 만난 분주한 개미군단
출근길에 마주친 한 없이 늘어진 개미군단을 보다가 더 그런 맘이 들었다. 뭘 위해 저리 바삐 가는 걸까? 한 녀석을 잡아도 저 대오는 흐트러짐이 없는데. 우리 사는 모습과 똑같아 보였다.
오늘 하루도 감사한 마음으로 잘 살아야지. 그래도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아쉬울 것 없이 살아서. 가끔은 이렇게 죽음이란 단어를 통해 삶을 반추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