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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Nov 13. 2021

7. 죽음

feat, 숨결이 바람 될 때

가끔 사치스러운 일상을 보내고 사치스러운 고민을 할 때가 있다. 그런 사치스러운 고민에 괴로워하고, 마음 울적해하고 누군가에게 섭섭해하고 말이다. 여기서 사치스러운 고민이란. 남편에 대한 섭섭함, 아이들에 관한 고민, 회사 일에 대한 고민과 같은 그런 일상적인 감정들이랄까? 가을이 되면 쌀쌀해진 날씨만큼 가슴 한편 알 수 없는 스산한 바람이 분다. 문득 외롭다는 생각도 들고, 고독해지기도 한다. 한 부서에 근무했던 선배님의 본인상 소식, 친한 직장 선배님의 간암 3기 소식을 들었다. 함께 근무하며, 교육받으며 울고 웃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갑자기 나의 일상적 감정들이 얼마나 사치스러웠는지 깨닫는다. 이렇게 누군가의 죽음을 목도하게 되면, 그런 사치스러운 생각들이 부끄러워진다.


죽음이란 두 글자, 이보다 더 인간이란 존재를 압도하는 단어가 또 있을까? 이 글자는 세상의 모든 고민들에게 위안을 선물한다. 이보다 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든 단어는 없을 테니. 사회가 너무 현대화되다 보니 죽음이 우리의 삶과 굉장히 유리된 체로 살아간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 생로병사는 벗어날 수 없는 삶의 순환과정인데, 마치 우리 삶에 죽음은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 장례절차라는 것, 임종이라는 것 자체도 의료시스템 안에서 서비스화되어 있어서, 평범한 삶 속에서 죽음을 목도하기도 어렵고, 뉴스에나 나오는 어떤 먼 사건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주변 가까운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죽음이란 단어가 생생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제야 한 번쯤 생각해 본다. 죽음에 대해.


난 죽음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영혼들의 여행도 생각하고,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고통이 어떨지 상상하면 두려운 마음도 들지만, 죽음 이후의 것들이 궁금하기도 하다. 오컬트를 즐기는 이들에게 유명한 '티벳사자의 서'에 나오는 죽음 이후의 순간들에 어떻게 대처할지 상상하기도 하면서,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삶을 꿈꾸기도 한다. 생과 사, 모두 인간이 받아들여야 할 삶의 과정이고 현실이다. 아이들에게도 엄마, 아빠가 항상 너희 곁에 있지는 않다고, 너희 삶은 너의 몫이라고 말해준다. 그것이 인간의 삶이니까.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하루 나의 일상을 유지하며, 열심히 살아갈 거다. 후회하지 않도록. 죽음의 순간 나에게 그동안 수고했다고 토닥거려 줄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책이 있다. 폴 칼라니티라는 젊은 의사가 자신의 마지막 삶의 순간을 기록한 책이다. 삶의 의미가 현실과 괴리되어 있어, 진짜 삶과 죽음에 현장에 서고자 의사가 된 사람. 레지던트 과정 속에서 수많은 삶과 죽음을 목도하면서, 삶의 의미를 깨닫는 젊은 의사는 쉴 새 없이 달려온 어느 순간, 자신이 폐암 말기임을 알게 된다. 의사로서의 지켜보는 죽음과 환자로서 맞이하는 죽음은 너무도 달랐고, 그 혼란스러운 감정과 생각들이 기록된 책이다.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담담히 36세라는 나이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폴, 그때 태어난 폴의 딸. 이 책에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죽음이 주는 많은 의미들이 담겨있다. 누구보다 자신의 상태를 잘 알았던 의사이기에, 자신의 과정을 한 발짝 한 발짝 진솔하게 그려내는 그의 마지막이 더 울컥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울다 덮었다, 울다 덮었다 했더랬다.


삶이 재미없다고, 뭐 화끈한 거 없는지 하이에나처럼 삶의 말초적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잠시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태어나는 데는 순서가 있지만, 저 세상 어디로 가는 것엔 순서가 없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이 삶을 어떻게 보람 있고, 의미 있게 살아야 할까? 한번쯤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한다. 삶과 죽음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인생이란 종이의 앞뒷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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