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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Nov 13. 2021

8. 인생은 비움이다

feat,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

요즘 코로나 덕분에 인생이 재미가 없었다. 회사-집을 반복하며, 여가도 여행도 없이 그저 일-공부-독서뿐이었다. 코로나 블루였을까? 밀려드는 공허함에 인생 참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수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따라가다, 현실을 자각하면 판단 중지!! 를 외치며, 다시 접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밀려들 때면, 생각을 멈추기 위해 책을 보고 공부를 했다. 또 다른 배움으로 밀려드는 생각을 멈추려 한 거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은 노잼, 공허함. 이 공허함은 뭐지? 그런 심리적 복잡함 속에 블로그 이웃인 원제 스님의 글을 읽다가 뒤통수를 친듯한 느낌을 받았다. 인생이 공허할 때 어떻게 해야 되냐고 하니, 비우라고 하셨다. 채우려 하지 말고 비우라고.


올해 2~3월 정신없이 바쁠 땐, 조금 있으면 일 마무리하고 수월해지겠지 했다. 막상 일이 정리되자마자 바쁨 뒤에 밀려오는 공허함. 그동안 나의 공허함을 바쁨으로 채워왔나 보다. 그렇게 일로써 채워왔나 보다. 스님의 말씀이 맞다. 외로움, 공허함. 채우려 한다고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뭘로 채우든 간에 이 또한 붙잡을 수 없을 것이고 그 인연에 맞게 변해갈 것이다. 그때마다 새로운 무언가로 채울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왜 마음이 그러한 지 들여다보고, 알고 비워내야 그 자체로 단단한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요즘 나의 부족함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누군가와의 갈등은 결국 내 부덕의 소치임을 알면서, 자꾸 남 탓하는 마음이 생겼다. 나랑 성향이 맞든 안 맞든, 어쨌든 성숙하지 못한 나의 모습이 불만이었다. 성숙하지 못한 응대로 마음의 찌꺼기를 만든 부덕함에 대한 불만 말이다. 마음 수행을 해온 지 몇 년째인데 아직도 사소한 것들에 출렁거리는 마음, 그 간 무얼 닦았나? 싶었다. 나름 닦아온 마음들에 만족할 때도 있었는데, 또다시 바닥으로 떨어지는 마음에 아직도 멀었다 싶어, 더 우울하고 공허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그런 감정들을 묵혀두고 있었다.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지금, 그때 묵혀둔 나의 감정들이 무한히 날아오른다. 왜 그렇게 부족할까, 왜 이것밖에 안 되나,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 가득이었다.


그 부족함 조차도 내 모습임을 인정하고 털어내면 되는데, 비워내면 되는데, 속 좁게 그게 안 되나 보다. 불편한가 보다. 여행이라도 갈 수 있다면, 회식이라도 하면서 풀 수 있다면 했는데, 코로나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또한 비움의 행동이 아니고 또 다른 채움, 회피였음을 깨닫는다. 결국엔 나를 마주하고 인정하고 비워낼 간이 필요한 건데, 그 간을 미뤄두려고, 회피하려고 한 것이다. 나를 마주하기엔 아직 자신이 없었나 보다.  하지만 이제야 알겠다. 또 망각할 깨우침이지만, 이 순간 내 감정을 마주한 것만은 맞다. 겸손해지자. 자격지심을 버리고. 스스로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어서 그런 거다. 어처구니없다. 겸손해지자. 겸손해지자. 겸손해지자.


인생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이다. 세상에 항상 한 것은 없다. 인연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고, 생겼다 사라진다. 오늘 당장 예쁘기만 한 아이들도, 내일은 짜증 나게 하는 것이 인간사다. 너 없이 살 수 없을 것 같아 한 결혼은 너 때문에 못살겠다고 싸우는 것이 현실이다. 영원할 것처럼, 이 모든 것을 붙잡고, 채우려면 끝이 없다. 모든 것이 실체가 없음을 알고, 비워내야만 인생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이 깨달음도 지천명을 맞이 하면서 변해갈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인생은 비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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