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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Aug 06. 2022

나이 들면서 재밌어진 남편과의 대화

# 외모지상주의

남편은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쓴다. 비바람이 부는 날도 생활 자외선을 고려해 선크림을 바르는 남편이다. 화장품도 영양크림까지 챙기고, 옷 하나를 살 때도 아웃렛 한 층을 다 둘러본 후에 는 남자다. 털털한 나와는 정반대인.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식단관리, 영양관리도 철저하다. 온 가족이 그의 지휘 아래 살다 보니, 아이들도 날씬하다. 우리 집에서 더 이상 살찌면 안 되는 사람이 '나' 뿐이라 놀린다. 그런 자신에 대한 근자감도 장난이 아니다.


요즘 드는 생각이, 나이 들수록 아내가 신경 쓸 것 없이 자기 관리를 해 주는 남편이 고맙더라. 젊었을 땐 외모지상주의 남편에 불만이 많았는데, 지금은 재밌고,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추억이 있어서 일까? 더욱이 또래보다 확실히 젊어 보인다. 자기 관리의 결과다. 진짜 세상에 공짜는 없다.


주말 남편과의 대화다.


 #1

남편도 오피스 안경을 맞췄다. 오래도록 사각테를 썼는데, 요즘 원형 테가 대세라 동그란 안경으로 맞추었다. 아빠 안경을 처음 본 아들.

"아빠~ 안경이 바뀌셨네요?"

"오~ 아들. 역시 바로 알아보네~"

"근데 예전에 쓰시던 안경이 더 잘 어울리시는 거 같아요."

"아빠 멋있지 않아? 뭘 써도 잘 어울리지~~"

나는 픽 웃음이 났다.


"여보~ ㅋㅋ 누구 닮은 거 같은데... 누구더라?"

"욘사마! 아빠 욘사마 닮았지?"

"아빠~욘사마가 누구예요?"

"응~배용준이라고 있어~"

한참 웃었다. 도라에몽에 나오는 진구 느낌이었는데...


"여보. 아무리 봐도 사각테가 더 어울린다."

"그게 더 샤프해 보이지? 그래도 괜찮아. 그냥 봐도 난 샤프하거든. 카리스마 있어 보이고. 나 카리스마 장난 아니잖아~~~"

"ㅋㅋㅋㅋ "

말을 말아야지. 저 근자감 어떡할 거야~


#2

조금은 무거운 일로 외출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늘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멘털의 소유자인 남편. 평소와 같이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앉아 있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선크림을 바른 빛나는 얼굴에, 한 올 한 올 빗어 넘긴 머리. 3대 7 가르마에 빗살 그대로 가지런히 고정된 까만색 머리였다. 뜨거운 햇살을 고려, 미리 까만 스포츠형 선글라스를 끼고서.


"여보~ ㅋㅋ 뭘 그렇게 꽃단장하고 앉아있어?"

"나? 나 외모에 신경 안 써~"

정말 빵 터졌다.


"여보~  당신은 왜 나이 들수록 재밌어져? 왜 이렇게 웃겨~~?"

"나? 원래부터 그랬는데?? 참~"

"알았어. 알았어. 여하튼 웃게 해 줘서 고마워"

하며, 안아주려 했더니  한마디 한다.


"여보! 알았어. 됐어. 제발 그러지 마~"

ㅋㅋㅋㅋ. 비싼 남편이다.


#3

새로 읽고 있는 책이름이 '미적분의 힘'이었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책을 보더니 한마디 한다.


"너는 저런 책을 읽고 싶어?"

"응~ 되게 재밌어~"

"너는 역시 공대녀가 맞네. 난 문과생이라~나는... 정말 문과를 갔어야 돼. 역사학과. 그래서 지금 붓으로 땅 파고 있어야 되는데. 혹시 알아? 지금 황현필 씨 같은 유명한 한국사 유투버 하고 있을지~"


남편은 공대 나온 걸, 늘 부정한다. 자신은 문과 쪽이라고. 내가 역학을 공부할 때마다 신기해한다. 본인도 역학을 배웠고, 공대를 나왔음에도.


나이 들수록 남편과의 대화에 빠져드는 이유는 의외성이다. 남편의 매 순간 변화하는, 맥락 없는 대화가 날 즐겁게 한다. 자꾸만 굳어져가는 생각들을, 남편이 깨뜨린다. 역설과 반전 ㅋㅋ.


지금, 저녁을 준비하는 남편의 눈총을 받았다. 어서 마무리해야겠다. 진짜 고맙다. 젊게 늙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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