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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Sep 16. 2022

[서평] 시옷의 세계

# 작가란 무엇일까?

베스트셀러에서 그저 그런 글을 만났던 나에게, 블로그 이웃님이 추천해 주신 책. 시옷의 세계.


이름을 보자마자 난, 피식했다. 기역의 세계! 니은의 세계, 이응의 세계를 한번 써 봐야 되나? 건방진 나의 거만은 보기 좋게 따귀를 맞고, 허우적대고 있다. 글을 쓴다면서도, 문학작품 하나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공대녀의 한계랄까? 작가란 이런 것이구나!


언어를 자유자재로 폈다 접었다 할 수 있는 사람, 지면에 인쇄된 글자로 독자와 밀당을 하는 사람. 한 문장에 담아놓은 문장의 밀도 덕분에 한 페이지를 1톤의 무게로 만든 사람. 낱자 하나하나를 고민하고 창조해 내는 사람. 김소연 시인의 언어의 유희에 헤어 나오지 못하는 중이다. 한 편의 시 같은 에세이집. 문학이라는 장르를 느끼게 해 준 '시옷의 세계' 다.


표현해보지 않았던 것을 표현해보기 위해 나는 문장에 온도를 보태보기도 하고 습도를 보태보기도 했다. 따뜻한 문장도 아니고 축축한 문장도 아닌 채로, 온도와 습도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지 여전히 궁리에 빠져 있다. 이 궁리를 나는 '식물원의 문장'이라 명명해본다.

밀도와 온도와 습도. 이 세 가지가 문장을 측정하는 기준이라 말했다. 문장은 식물을 키우는 것과 같은 걸까?


시인이라면, 말의 본질과 발화된 말 사이에서 더더욱 처참하게 방황할 수밖에 없다. 그 사이를 접착하는 불가능함을 순진하게 욕망한다. 그 불가능한 접착을 모든 인류를 대신해서 욕망하는 자, 그 자가 바로 시인이다.

감히 시를 쓰는 것을, 엄두 내지 못하게 하는 시인의 정의다. 글을 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두려워졌다.


- 소유 : 조금 더 아름답기 위해서 우리는 조금씩 위선을 소유해야 하고, 조금 더 강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조금씩 위악을 소유해야 한다.
- 성공 : 성공하고 싶은 욕망은 복수하고 싶은 욕망을 기초로 한다.

그녀의 표독한 표현이 가슴에 박히더라. 지금의 나, 위선과 위악을 키워가고 있지 않은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성공의 욕망도 그러했다. 가난, 비루함, 결핍, 무능... 그런 나에 대한 복수가 아니었을까? 읽자마자 너무 아팠다.



늘 마음을 먹고사는 내게, 그녀는 말했다.

마음을 먹는다는 말은 어쩐지 마음을 간식 정도로 생각하는 말 같다. 마음은 그렇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마음은 살피는 게  맞다. 마음을 따르고 싶다면  마음을 살피면 된다. 마음을 다스리고 싶다면 보살피면 되듯이.

마음을 먹지 말고, 살펴주어야겠다.



그리고, 나이 듦에 대한 문장이 너무나 공감되어 옮겨본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추억이라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걷는 지친 걸음과 같겠구나, 서늘한 우물 속에 얼굴을 밀어 넣고 생각했다.


따뜻한 문장으로 위로하기란 너무 쉽다. 


생이 어찌하여 아름답고 그리고 살 만한지를 알기 위해 치러야 할 지난한 과정을 보여주지 않고 은폐하려 한다.


수많은 사연과 수많은 굴곡이 흘러들고 흘러 나가는 일을 겪으며 우리 삶은 불완전한 채로 완성되어간다. 상처가 나고 옹이가 맺혀간다. 그 과정 속에서 아프고 고통스럽고 괴롭기도 하지만 우리는 겪은 불행들을 더 잘 이해하면서 더 겸손해지고 더 예민해진다. 그리고 성장하고 늙어간다.


그 과정 자체가 삶이고 삶을 통해서만 우리는 고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고귀한 경험들은 따뜻한 온도의 문장이 아니라 밀도 높은 문장만이 감당할 수 있다.


이렇게나 적절할 수 있을까? 감동이었다.



그녀가 "히말라야의 산등성이에 올라서서, 인도 판과 유라시아 판이 충돌했던 엄청난 굉음을 만나고 있다고 표현해도 좋다."라고 하길래, "나는 매일 공룡이 이끄는 차를 타고 출근을 한다."라고 표현해보고 싶었다. 이 신선한 상상력이란!



글로 소통하고자 했을 때 알게 된 사실 하나!

진심으로 우리에게 소통이 가능하다면, 삶 자체가 비슷해야 한다. 다른 삶을 사는 이는 외국인과 같다. 삶만이 우리를 연결할 수 있다.

비슷한 이들만이 내 글에 공감했던 것. 소통은 비슷한 삶의 결을 가진이들과 가능한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나의 표현은 한 없이 투박하고, 볼품이 없는데. 같은 의미도 그녀의 글에선 있어 보이고,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그녀의 내공에 감탄을 하다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뭔가 문학적인 갈증이 있을 때, 다시 펼치고 싶은 책이다. 다시 읽어도 신선하리라. 갓 잡아 올린 고등어처럼.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도종환, 단풍 드는 날에서-


글을 쓰면 쓸수록 비울 줄 아는 것이 능력이다 싶다. 정제하고 정제된 언어의 농축액이 시다. 버리고 버려 더 이상 버릴 것이 없는 상태. 그런데...


오늘, 어느 사진작가님이 하신 말씀! 시보다 더 농축된 한 컷, 순간으이야기담아내는 것이 '사진'이라고!


앗! 작가의 세계는 너무나 무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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