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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Nov 28. 2022

[서평]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난 그저, 분화된 의식

이 책을 통해 만난 이어령 선생님은 한마디로 언어의 마술사였다. 그의 충만한 지성을 넘치도록 느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평범한 언어와 비유로써 풀어내는 이야기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눈물 한 방울이 모나리자의 미소 같은 거야. 머금은 거잖아.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인간을 그릇으로 비유할 때부터. 육체는 컵으로, 영혼은 빈 공간, 컵에 담긴 물은 마음으로. 이 내용은 스타니슬라프 그로프가 초월 의식에서 말한 바와 같은 맥락이다. 절대 의식에서 분화된 의식이 물질적인 육체에 담겨 삶을 통해 성장해가는 구조.


이 책의 모티브인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어떤 파도가 우리는 늘 이렇게 부서져 사라져 버린다고 불평을 하자, 대답한다.


우리는 그냥 파도가 아냐. 우리는 바다의 일부라고.


우린 그저 개별적 객체가 아니라 절대 의식이라는 바다에서 분화된 파도와 같은 존재인 거다. 부서져 사라지는 게 아니라, 바다로 다시 돌아가는 거다. 요즘 거울 명상을 통해 나의 텅 빈 마음을 바라보는 중인지라 직관적으로 느꼈다. 어쩌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성을 갖춘 이들이 죽음 앞에서 바라본 삶의 기원이 결국 같은 것임을. 삶의 의미를 더욱 단단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 담긴 담론들은 결코 작지 않고, 내용도 많다. 핵심은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유독 나도 어떻게 명확히 표현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언어로써 활자화시켜 주신 부분이 많았다.

공감하며 읽고, 감동하며 읽었다.



#1.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내 육체가 사라져도 내 말과  생각이 남아있다면 나는 그만큼 더 오래 사는 셈이지 않겠나?


어느 날 문득, 글을 쓰고 싶다고 몸부림쳤던 이유다. 나중에 누군가 를 기억할 수 있는 도구가 글이 아닐까?



#2. 명리


미래예측에는 자기 투영이라는  핫한 테마가 숨어 있다네... 결정된  운이 7이면 내 몫의 3이 있다네. 그 3이 바로 자유의지야...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수만 가지 희비극을 다 겪어야  만족하는 존재라네.


운명론을 믿지만, 자유의지를 신봉하는 나. 명리와 주역을 읽고 깨달은 나의 핵심과도 같아 옮겨본다.



#3. 삶의 동력


작더라도 바람개비처럼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자기만의 동력을 가지도록 하게... 생각이  곧 동력이라네... 생각하는 자는 지속적으로 중력을 거슬러야 해. 가벼워지면서 떠올라야 하지. 떠오르면 시야가 넓어져.


늘 생각한다. 생각을 넓히기 위해 공부하고,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유별난 사람인가? 오히려 위축되려던 나에게 선생님이 주신 말씀. 드론을 띄워 세상을 보는 거라고 다독여주신 말씀이다.



#4. 자기답게 살아있기


공자가 그러지 않나.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에는 식사를 잊어버린다고. 자는 걸 잊고 먹는 걸 잊어... 그게 진선미의 세계고, 인간이 추구하는 자기다움의 세계야.

살아있는 것은 물결을 타고  흘러가지 않고 물결을 거슬러 올라간다네... 떠내려간다면 사는 게 아니야... 잊지 말게나. 우리가 죽은 물고기가 아니란 걸 말이야.


좋아서 하는 배움이다. 앎이 좋다. 안다면 더 넓게도 볼 수 있고, 자기답게 볼 수 있다. 타인의 관점에 무신경하게 휩쓸리는 게 아니라,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다. 난 살아있는 물고기이고 싶다.



#5. 책을 읽는 이유


책 읽는 이유가 두 가지라고 생각하네. 내가 모르는 걸 발견하려고 읽는 사람이 있고, 내가 아는 걸 확인하려고 읽는 사람이 있어. 대부분은 확인하려고 읽는 거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난 모르는 걸 발견하려고 읽는 쪽이다. 그럼에도 선생님의 말씀에 부정하긴 어렵다. 둘 다이다.



#6. 인간이란?


인간은 고난을 통해서만  자기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궁극적으로 인간은 타인에 의해 바뀔 수 없다네.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만족할 수밖에  없어.


분화된 우리가 생을 통해 얻고자 하는 궁극의 목적이 성숙이라는 깨달음. 고난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생의 값진 결과물이 아닐까. 살수록 공감된다.



#7. 생의 절정이 죽음


인간은 죽는 것의 의미를 아는 동물이야.

존재의 정상이잖아. 뭐든지 절정은 슬픈 거야... 정오가 그런 거야... 상승과 하락의 숨 막히는 리미트지... 생의 절정이 죽음이라는 걸. 그게 대낮이라는 걸.


생의 절정이 죽음이라고, 그래서 대낮. 정오에 죽음을 비유했을 때 반감이 들었다. 오히려 노을빛 그윽한 평화로움이 죽음의 시간이 아닐까 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비유가 너무 멋져, 죽음이 정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무척 마음에 든다. 정오!



그리고,


늙으면 한 방울 이상의 눈물을 흘릴 수 없다네. 노인은 점점 가벼워져서 많은 것을 담을 수 없어... 엉엉 소리 내 울고 피눈물을 흘리는 것도 행복이라네.


나이 들면서  자꾸만 많은 것들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선생님이 엉엉 소리 내 울고 피눈물을 흘리는 것도 행복이라는 말씀이 너무 와닿았다. 아이들이 화낼 때, 그 뜨거운 심장이 부럽다. 젊음의 상징 같아서. 더 이상 타오르지 않은 장작이 돼버린 내 가슴에 정확히 꽂힌, 마음에 드는 구절이다.



하나 더, 연기적 사고로 타자를 수용하는 시선.


그 엉망진창이 어마어마한 힘이라네... 그게 상처의 에너지야... 우리가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그것까지도 끌어안는 것... 타자와 내가 하나 될 수 있는 거라고.


아직도 풀지 못하는 나의 분별심. 늘 그 분별심을 바라보지만, 아직 남아있는 열기와 삶의 애착에 쉽지 않다. 매 순간 올라오는 그 마음을 상처의 에너지라고, 서로 다름을 다투는 상처가 바로 에너지라고 하신다. 이 무슨 명언이란 말인가? 풋.


버려두는 것. 버리는 것과 두는 것의 중간. 그 흐름대로 그냥 두면, 발효가 되고 숭늉이 된다고 하는 그의 언어를 더 즐기고 싶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을 그저 끄덕이며 읽었다.

최근에 읽은 책 중 가장 만족을 주는, 깊이감 있는 책이다. 그의 표현을 빌려 이렇게 마무리하고 싶다.


일(배움)이 나한테는 노는 거였어. 나는 워커홀릭이 아니라 재미에 빠진 인간이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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