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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May 15. 2022

[서평] 어린왕자

feat, 길들여진다는 것

아주 우연히 어린 왕자를 다시 읽었다. 어느 동료와  대화 중에 '왜 엄마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느냐'는 그녀 아이의 말에서 어린 왕자가 떠올랐다. 그 말이 너무도 가슴에 와닿아, 갑자기 다시 읽고 싶었다.


책을 읽고, 어린 왕자는 '어른이 돼서 다시 읽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내가 읽었던 어린 왕자가 맞는지 싶을 정도로 새롭게 읽혔다.


첫 번째. 장미.

장미는 마치 연인을 상징하는 것 같다. 첫사랑이 떠오른다. 아직 서로에게 표현하는 바가 서툴 때, 보이지 않은 진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그 순간이 말이다. 첫사랑이 깨지기 쉬운 이유도, 렇게 서툴기 때문이다. 결국 어린 왕자는 지구에 와서 깨닫는다. 5천 송이 장미 중에 나의 장미가 특별한 건 나에게 길들여진, 나의 장미이기 때문이라는 것. 결별 후에야 알게 되는 것이다. 그(그녀)가 소중했던 이유. 서로에게 길들여져 버린 시간들이 깨우쳐 주는 거다. 남편이 나에게 특별한 건 오래 서로 길들여진 것임을 깨닫는다.


두 번째. 양 그림

어린 왕자가 양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한다. 그려줄 때마다 병들었고, 염소 같고, 늙었다며 불평하는 어린 왕자에게 상자 하나를 그려준다. 네가 원하는 양이 이 상자 안에 있다고. 만족해하는 어린 왕자. 세상은 각자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잣대가 아니라, 나만의 시선으로 보라는 것이다. 어른들의 세계를 가득 채운 기준에 대해 어린 왕자가 던진 명쾌한 해답이 아닐까 싶었다.


세 번째. 행성 여행

여행 속에서 삶의 가치를 잃어버린, 의미와 방향을 잃어버린 어른들을 만난다. 왕, 허영 쟁이, 술꾼, 장사꾼, 가로등 켜는 사람, 지리학자. 작은 행성 안에서 홀로 외로워하고 있는 어른들. 어린 왕자는 계속 말한다.  '어른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이상해'


지금도 똑같지 않은가? 왜?라는 질문을 잃어버린 어른들. 목적을, 방향을 잃고서, 그냥 한다. 해야 한다고 믿는다. 각자의 작은 경계 안에서 외로워하면서도 머문다. 두려우니까. 자신이 만들어온 세계가 깨지는 것이. 권력, 부, 명예 지금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돌이켜보면 좋겠다. 진정 원하는 건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린 왕자가 의미 있는 이유다.


네 번째. 여우

어린 왕자 속 핵심인물은 여우다. 어린 왕자는 여우에게 깨우침을 얻는다. 길들여진다는 것에 대해, 눈에 보이지 않은 중요함에 대해.


여우가 길들여진다는 것의 의미를 설명한다.

"그래. 지금 너는 나에게 수많은 아이와 다름없는 작은 소년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되는 거야. 나한테 너라는 존재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거고, 너한테 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되는 거니까"

바로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것.


그러면, 스쳐 지나는 샴푸 향기에도 너를 떠올릴 수 있는 상징을 갖게 된다.

"아름다운 황금빛 머리카락을 지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밀밭은 내게 아주 근사한 광경으로 보일 거야. 밀밭이 황금물결을 이룰 때 네가 기억날 테니까. 그러면 나는 밀밭을 스쳐 지나는 바람 소리마저도 사랑하게 될 거야"

아름답다. 밀밭을 스치는 바람까지 사랑한다는 것.


길들여지는 방법에 대해서는 수줍게 말한다.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살짝 떨어진 거리에서 곁눈질해 달라고.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 때마다 넌 내게 조금씩 다가오게 될 거야."

"매일 같은 시각에 오는 게 좋을 거야. 만일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그러면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돼."

남편이 오는 금요일 저녁은 늘 설렌다. 주말부부를 하지 않았다면, 그 행복의 소중함을 몰랐을 거다.


서로에게 길들여진 여우가 어린 왕자와 헤어짐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눈물을 짓는다. 속상해하는 어린 왕자에게 여우가 말한다.

"아니야 그래도 좋은 게 있어. 밀밭의 황금빛을 사랑하게 되었잖아."


난 이 길들여짐이 왠지 사랑에 대한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헤어짐에 대하는 자세도. 상대를 탓하며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니 덕분에 밀밭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감사히 헤어지는 방법에 대해서 말이다. 뉴스에 나오는 요즘의 헤어짐과 너무나 비교가 된다.


그리고 말해준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안녕, 잘 가."


부모에 대한 마음도, 부부간의 사랑도, 자식에 대한 사랑도 같다. 그 깊은 마음을 솔직하게 보여줄 순 없지만, 그 뜨거운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은 심장 가운데 있다. 우린 그것을 다르게 표현하고 행동함으로써 오해를 빚는다. 서로에 대한 기대로, 바람으로, 상대의 진심을 보지 못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 같다. 순수한 자아? 이런 해설 잘 모르겠다. 내게는 너무나 심플하고도 명확한 인간관계와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다섯째, 어린 왕자의 귀환

화자도 어린 왕자와 대화하며, 이미 어른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그런 자신을 내려놓고, 어린 왕자와 우물을 찾아간다. 결국 우물을 찾아 물을 마시고, 지구에 온 지 1년이 되는 다음날. 어린 왕자는 헤어질 때가 되었음을 밝힌다. 그리고 여우에게서 배운 대로 말한다. 헤어짐에 대해.


어린 왕자의 웃음을 사랑하게 된 화자에게, 웃음 짓는 별 하나를 갖게 될 거라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별을 바라보지만, 모두에게 같은 의미는 아니에요..... 아저씨는 누구도 갖지 못한 별을 갖게 될 거예요.... 그 별 중 하나에서 웃고 있을 테니 아저씨는 모든 별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일 거예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슬픔은 무뎌지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아저씨도 언젠가 슬픔이 지나가면 나를 알게 된 것이 기쁨이 되겠지요."

뭉클하다.


흐린 기억 속에 어린 왕자가 작가의 순수한 자아였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해설이 생각난다. 그땐 이해하지 못했고,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내용과도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 소설은 어른이 돼서 읽어야 한다. 어른이용이다. 어른이 되면서 잊어버린 들을 일깨워 준다. 특히 관계에 대해서. 사랑하는 것, 길들여진다는 것. 헤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책을 덮으며, 남편이 가장 떠올랐다. 첫 만남과 그 이후의 시간들, 지금 이미 길들여진 우리에 대해. 나중에 길들여진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도, 그를 알게 된 것 만으로 슬픔보다 기쁨이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  많은 생각들을 던져주면서도, 맑고 깨끗한 이 동화가 잊어버렸던 나의 스무 살을 떠올리게 했다.


정말 어린 왕자는 행성으로 돌아갔을까? 장미를 만났을까? 혹시 별로 돌아간다는 것이 어떤 죽음의 상징은 아닐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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